[경기 여주 이포초 하호분교장 노복연 교사_"일기의 힘을 믿어요"]
아들 마루의 예전 일기를 들춰보았습니다. 마루의 일기장은 일년에 대여섯 권씩 있습니다. 1학년 때 실내화 가방을 들고 놀던 이야기, 2학년 봄에 가족끼리 들꽃기행 갔던 이야기, 4학년 때 전학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 등, 아기자기하지만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5학년부터 그 이야기가 끊겨 있습니다. 마루의 역사가 기록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야기야 더 많았을 테지만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는 끊겨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저학년은 일기를 쓰게 했으나 고학년이 되면 일기 쓰기를 강요하지 않았고, 쓴다 해도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교감 선생님이 일기장을 걷어서 도장을 찍어 주고, 상을 준다고 할 때는 더욱 더 그랬지요. 인권위에서 일기검사에 대한 권고가 있을 때도 그건 당연히 그래야 하고,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작년에 일기를 참 열심히 썼습니다. 블로그를 만들고, 사진을 찍어 올리고, 아이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교단일기 형태로 쓰고 하면서 ‘일기의 힘’을 새롭게 느꼈습니다. 내 삶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제가 있는 분교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블로그를 알려주었으니까요. 제 글과 사진은 저만의 역사가 되지 않고, 우리 분교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우리 분교 아이들의 삶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이 ‘일기의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아이들에게 일기 쓸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내가 일기를 통해 얻은 힘을 이야기했고, 일기의 제목도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했습니다. 또 그 글을 발표도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월요일 아침마다 ‘주말 보낸 이야기’를 하는데, 가볍게 이야기로 하던 것을 이제는 지난주 자신의 글 중에서 하나를 뽑아 읽게 합니다. 발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글이 자세하게 써지고, 생각이 다듬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 주는 아이가 송규입니다. 송규의 일기에는 특히 농사일을 도와주는 글이 많은데 마치 농사일지를 보는 듯하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던 송규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만 쓰라고 했는데도 거의 날마다 일기를 씁니다. 송규에게 일기쓰는 것이 재미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일기장 앞장에 ‘글을 생생하게 쓰는 두 가지 방법’이라고 해서 대화체를 인용하는 방법과 자세히 묘사하는 방법을 붙여 주었더니 송규의 일기에 대화글이 늘어가면서 더욱 생생해졌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일기 쓰는 것이 좋다고는 얘기합니다. “1학년 때 쓴 일기를 보면 그때가 생각나고 즐거워져요”라도 하고,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이래야 되겠다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라고도 합니다.
저학년의 경우에는 일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학년에서 일기를 처음 시작한다거나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이 아이가 말로 쓰는 일기를 대신 받아 적거나, 부모님이 받아 적은 것을 다시 아이가 보고 그대로 옮겨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일기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되어야지 글 쓰는 방법을 익힌다거나, 맞춤법을 일일이 고쳐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맞춤법이 틀리는 경우에는 미리 약속을 해서 자신이 잘 모르는 글자에는 동그라미를 해서 소리나는 대로 적어 오라고 하면 고쳐 주는 정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일기 쓰기의 힘을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