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암
한창 여드름이 피었다간 지고 조금씩 여기저기 나타났다. 시나브로 숙지막해지더니 사라져간다. 당시 이발소에서 면도하다가 하나씩 짜줘 시원함을 느꼈다. 볼펜으로 꼭꼭 눌러 굳어진 알을 꺼내주기도 했다. 얼굴에 덕지덕지 났을 땐 손톱으로 짰다. 툭툭 터지기도 하고 피도 찔끔 났다.
안면에 났는데 뒤늦게 난데없이 등과 가슴팍에도 생겼다. 꽤 굵어 꺼낸 자리에 구멍이 보인다. 그 자리에 얼마 뒤 또 생겨난다. 낯에도 코 주위에 하나씩 숨어있다가 들켜서 이끌려 나온다. 젊은 볼에 흔적이 많아 얼룩덜룩 흉하게 보였는데 수십 년 지나니 언제 그랬냐 말끔히 없어져 깨끗하다.
숨어서 하나씩 맺힌다. 코와 귀 뒤, 가슴, 아랫배, 등에 생긴다. 아내와 아들딸이 찾아 빼 주는데 가무잡잡한 게 좁쌀 크기인데도 그런다. 그게 나오는 구멍에서만 계속 나타난다. 표가 나지 않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다. 딸이 잘 찾아냈는데 서울 쪽으로 간 뒤 그냥 내버려 둔 채 지났다.
콧등이 가끔 근질거려 허물 같은 것이 떨어져 나온다. 그러려니 했다. 머리가 가려워 감을 때 막 손톱으로 긁었다. 얼마나 시원한지 쾌감을 느낀다. 비듬이 생겨서 그런 거겠지 했다. 조그만 검버섯이 좌측 얼굴 구석에 생겨서 나이 드니 저승꽃도 피는구나 여겼다. 또 목에 고드름이 거꾸로 솟아오르듯 사마귀가 잔잔하게 생겨난다.
만지면 언틀먼틀하다. 잡아당기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오므려 든다. 별난 것들이 다 생기는구나. 작아서 남들은 안 보여도 나는 싫증이 나고 귀찮다. 삭은 나뭇등걸이나 비 내린 뒤 축축한 땅에 쑥쑥 벌레 죽은 버섯이 생기듯 성긋성긋하고 얼기설기하다. 얼마나 차지고 끈덕진지 힘껏 당겨도 떨어지질 않는다.
손을 스치면 우수수하고 꺼칠꺼칠하다. 목덜미에 뭐 이런 개 나나. 내가 고슴도치인가. 까끄라기 밤송이인가. 별난 개 다 덤벼 스산하게 만든다. 뒷덜미는 없고 앞만 그렇다. 털이어야지 살점이 머리카락처럼 올라오나 별스럽다. 물사마귀라니 그런 것도 있었나. 못 먹을 어릴 때 손등과 발등에 볼록 군더더기 굳은 살점이 생겼는데 벌써 없어진 지 오래다.
아들이 작은 가위를 갖고 냉큼냉큼 끊어버리자 따끔거리고 핏기가 어렸다. 또 기어오를 줄 알았는데 잦아지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선명한 검버섯이 점점 굵어져 작은 동전 크기와 같다. 주위에 옅은 것도 있어서 더하면 얼굴이 험상궂어질까 걱정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아기가 ‘할아버지 까만 점이 있다.’ 하자 얼싸안은 아버지가 ‘얼굴 점은 복점이란다.’
피부 의원을 찾아 뺐다. 연필 같은 레이저에 불꽃이 나오는가 지지는 소리가 찌직 거리고 살 타는 냄새가 난다. 아리고 따가웠다. 임 원장이 온 얼굴의 점과 어루러기를 다 빼줬다. 주름지고 거뭇하던 얼굴이 해맑게 말끔히 씻어내 졌다. 약을 바른 데가 수십 군데이니 그리 많았나. 지저분했나 보다 개운하다. 그런데 몇 해 지나니 그 자리에 같은 것이 조금씩 또 올라와 생기고 전보다 더 넓고 굵어졌다.
눈 밑에도 없었던 까만 게 보인다. 콧잔등에도 모기 날개 같은 게 계속 만져지는데 당기면 뜨끔거리고 떨어져나오면서 아프다. 처방받은 머리 비듬약을 바르면서 선전하며 좋다는 샴푸를 곁들여 사용한다. 심하던 게 조금 덜하다. 건조한 겨울철에 생긴다. 박박 긁었더니 피멍이 곳곳에 생겼다. 얼얼하다. 오랜 세월 그랬다.
머리에도 만져지는 게 있다. 뭘까 왜 이런 게 거기도 생길까. 딱지 같은 게 더덜더덜 커 간다. 막 다뤄서 그런가. 겁먹고 조심한다.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며 미안하다 미안해 어루만져서 사과했다. 여기저기 올라왔다. 시위라도 하는 건가. 어떤 건 꽤 굵다. 툭 도드라진 것이 만져진다.
또 갔다. 얼굴 피부 반점은 쉬 생긴다며 햇볕 탓이란다. 머리에 난 여러 개 멍울이 비듬 덩어린가 했는데 모두 사마귀란다. 불안하게 한참 헤쳐보더니 그렇단다. 그게 왜 꼭대기 정수리 머리털 속에도 나는가. 초파린지 모기 날갠지 작은 깃털이 꾸역꾸역 코에 올라와 뜯고 잡아당겨 없앴다 이번에 지져서 혼쭐을 내주겠다 맘먹었다.
여름날 햇볕에 그을리면 콧등부터 살갗이 벗겨진다. 한곳에만 그래서 여드름 짜낸 구멍이겠지 했는데 아니다. 시답잖은 것이 애먹인다. 어쭙잖은 일이 성가시게 한다. 자주 찾아와서 귀찮을 텐데도 반갑게 맞으며 정성을 다해 관자놀이부터 치료해줬다. 크고 작은 반점을 다 지지곤 닦아냈다. 그런데 코에는 들이대지 않아서 여기도 해 달라 주문했다. 한참 보며 머뭇머뭇하더니
“그건 암입니다.”
“---”
“뭣이- 암이라고.”
위암, 폐암--- 하지 ‘코암’이란 게 있나.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그러고 내가 암에 걸리다니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느낌이다. 손주를 안아보고 여러 차례 마지막 교정을 거듭하는 4자어사전 책도 내야 하며 소설도 써야 한다. 텃밭을 더 다듬어야 하고 오후엔 당구도 쳐야 하는데 이게 뭔가.
나는 이리 걱정이 태산인데 임 원장은 느긋하다. 겁먹은 나를 위로하려는가. 무슨 분무기로 모기약 뿌리듯 한참 찹찹하게 살포하더니 경과를 두고 보자며 다음 주에 다시 오란다. 오금이 저리도록 한주가 길기만 하다 길어.
첫댓글 재밋게 읽었어요
나이 들면 다 생기는 현상...
한 살 더 얹젔으니 증상도 심하겠지요
손주 안아보시고 사전도 낼겁니다
오금이 저리기는 해학이 넘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더 건강하십시요
치료 후 좋아졌습니다.
암이란 말에 놀랐습니다.
엄마 얼굴에 솟아난 자그마한 사마귀를 우린 괜찮다 했었는데, 엄마는 거슬린다 시며 병원가셔서 레이저로 태웠던겐 엊그제같은데... 아프신중에도 자꾸만 만지시며 빼야될텐데...이러셔서 우리들은 많이 웃었습니다.
세수할때 걸리적거리고, 심심할때 저절로 손이가고...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신경쓰인다고 빼달라실때가 좋았습니다.문득, 퇴근길이 웬지 공허해서 엄마한테 전화하고싶은맘이 굴뚝같을때가 많습니다.ㅠ
가난할 때 사마귀가 나타난 대요.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직장에 나가시는가 봐요.
즐겁고 건강한 날이길 바랍니다.
다음 주가 지나지 않으셨나요? 임원장님 께서 확실한 진단 내려주셨는지요?
일단, 암이란 단어는 세상 어느것보다 두렵고 공포 스러울것 같아서...
아니, 요즘은 암보다 더 무서운게 치매...ㅠ
일단 즐겁게 지내시는게 가장 이득같습니다.
치료 받아 검은 덩어리기 떨어져 나갔습니다.
자외선을 받으면 또 나타난다니 조심하랍니다.
성도님 걱정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