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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어잉 박사는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중국인 중에는 고향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베이징이 아닌 상하이를 창업터전으로 선택했다. 상하이 지방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루이싱은 창업 후 공장을 베이징에 세웠지만 연구개발단지는 상하이 창장에 두고 있다. 인재가 풍부하고 관리방식이 현대화된 도시 상하이에서 지방정부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신약개발기업 육성자금을 많이 지원받았어요. 중국의 국가급 기금인 863기금, 973기금도 받았고 그 외에 지방정부의 기금도 받았죠. 상하이에는 상하이 시정부 이외에 푸둥신구가 지원하는 기금도 있어요. 여러 기금의 지원을 받는데, 창장하이테크산업원구 측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기금이 있을 때마다 원구에서 알려주기도 하고 신청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가 창장하이테크산업원구에 입주한 뒤 10여 년 동안 많은 기업들이 부침을 겪었다. 크게 성공해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긴 기업도 있고, 경영난으로 사업체를 접은 기업도 있었다. 그 가운데 이곳에서 계속 자리를 지켜온 유일한 기업이 바로 루이싱이다. 루이싱은 창장하이테크원구와 공동출자해 여러 혜택을 받고 있다. 상하이라는 대도시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지가가 낮아 비용감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조건에만 맞으면 3면 2감, 5면 3감 등 일정기간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접촉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원구가 중간에서 도와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메디컬 밸리까지 따로 만들어가며 의약분야 혁신기업 지원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오랫동안 미국의 신약개발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아시아권이 신약개발 지원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 의약개발사와 공장, 주식시장, 투자자 간의 연결체인이 미약하기 때문에 개발능력이 있는 신약개발기업들이 자금을 동원하지 못해 결국에는 신약개발보다는 의약품 카피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의 의약산업 체인이 좀 나은 편이고, 최근에는 인도가 의약품 개발체인을 빠르게 구축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신약개발에는 10년 정도 걸리는 게 정상이에요. 장기적인 투자는 미국이 무척 강하죠. 신약개발 최대 규모로서 미국의 입지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20~30년 후에도 현재의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이 바이오의약을 대하는 태도가 유럽과 비슷해요. 싱가포르도 생물의약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요. 가장 발전이 느린 산업이 항공항천이고 그다음이 바이오의약이에요. 중국정부가 2020년까지 7개의 신흥전략산업을 육성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바이오의약은 투자한다고 해서 원하는 시점에 반드시 성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10년이면 장기 플랜이지만 신약개발을 고려하면 이 기간은 짧다는 것이다. 루이싱은 자체 개발한 신약 이외에도 구미기업으로부터 신약을 위탁받아 개발하고 있다. 루이싱이 개발한 신약은 주로 폐질환, 간질환, 신장질환과 종양치료에 쓰인다. 자체 개발한 신약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특발성 폐섬유화증을 치료하는 소분자 구복약물 ‘F647’이 있다.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특별한 이유 없이 폐 조직이 딱딱해지고 손상되는 병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발병률이 높지 않지만 치사율이 높다. 루이싱은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F647을 개발해 2009년 중국에서 특허를 획득했다. 중국은 특히 폐암 발병률이 높고 매년 40여만 명이 폐암으로 고통받고 있다. 루이싱은 F647 이외에도 간섬유화와 간경화 치료에 쓰이는 F351를 개발해 전 세계 특허를 획득했다. F351은 임상시험 Ib 단계에 있다. 섬유화가 지나치게 진행되면 기관손상이 심해 결국 기관이식을 해야만 치료가 가능한 상황에서 F351은 현재까지 개발된 약물 중에서 가장 효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 미국 에피셉(Epicept)사와 공동 개발한 약이 바로 F573이다. 만성 중형 간염으로 간 기능이 극도로 쇠약해진 간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치료약이다. 중국에는 매년 중형 간염 발병자가 10만 명에 달하고 그중 대부분이 B형 간염환자다. 중국내 만성 중형 간염 시장규모가 5억 위안에 달할 만큼 크지만 아직까지 간이식 이외에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에피셉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F573은 임상 전 시험을 마치고 임상시험을 신청한 상태다. 루이싱의 연구개발능력은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도 대대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신약개발 투자의 90%는 외국기업이 하고 있어요. 중국기업이 개발했더라도 투자자는 외국기업인 경우가 많죠. 약을 개발할 때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때문에 신약개발에는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게 맞습니다. 투자자가 누구인지는 큰 의미가 없어요. 루이싱에도 일본의 신약개발사인 GNI가 투자했죠.”
신약개발에 있어서는 유능한 인재확보가 필수다. 루이싱은 우선 유학파를 대거 영입하고 전체 직원의 70%까지 연구인력을 늘렸다. 상당수가 박사급 인력이다. 루이싱은 유학파 연구인력이 창업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루어잉 박사는 창업을 꿈꾸는 유학파들에게 성공을 몸소 실천한 롤 모델로 꼽힌다. 루어잉 박사는 자기 생활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 50곳’ 중에서 이미 40곳을 가봤다. 앞으로는 생물 고유종(固有種)이 많아 다윈의 진화론의 착상동기가 된 갈라파고스 군도나 동물의 왕국 케냐 등 바이오 의약과 관련이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그는 아직까지 한국기업과의 교류가 없지만 2006년에 관광 차 한국을 다녀왔다. <톱클래스>에 싣기 위해 보내온 사진 중 상당수가 그가 해외 곳곳을 여행하면서 찍은 것들이었다.
루이싱의 회사 분위기도 유연한 편이다. 관리직원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이 맡겨진 일을 기준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해가며 일한다. 직원 생일파티를 꼭 챙기고 각종 야유회, 창립기념일에는 조직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신경 쓴다.
“신약개발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무척 보람 있다”는 그는 신약개발이라는 불모지에서 꿋꿋이 버텨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됐다. 그 소감을 묻자 “어떤 일이든 투자가 있어야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자명한 이치”라며 “한 분야에 집중하지 않고 중도에 방향을 바꾸면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신약개발기업으로 성장 중인 루이싱. 성공의 바탕에는 지난 10년 동안 굳건히 지켜온 루어잉 박사의 확신과 긍정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
필자 : 김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