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10년 앞서 세상을 떠난 노국 공주를 그리워하다
부하의 손에 살해된 비운의 왕 공민왕.
그 공민왕과 노국 공주의 애환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는 청량산.
공민왕과 노국 공주는 고려 왕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원나라 왕족이었던 노국 공주는 공민왕과 결혼한 뒤 스스로 고려인을 자처하며
원나라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공민왕의 자주 정책을 도왔다.
하지만 결혼 8년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자 중신들의 간청으로
공민왕은 이제현의 딸을 후궁으로 삼았다.
이곳 청량사에 왔을 때가 결혼 생활 11년 즈음으로 노국 공주는 유리보전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응진전에서 16나한을 모시고 기도를 했다.
홍건적을 무찔러 달라는 것과 함께 아마도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개경으로 환도한 뒤 공주는 16년 만에 임신을 했지만 1365년 겨울 난산 끝에 숨지고 말았다.
공주가 죽은 이후 공민왕은 가슴에서 공주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귀족과 시녀들의 음란한 행위를 보는 관음증이나 동성애에 빠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공민왕과 노국 공주의 묘역은 현재 개성시 증서면에 있다.
공민왕은 이곳 청량산으로 피난 오면서 숱한 전설을 남겼다.
금탑봉 옆 기암괴석들이 우뚝솟은 바위 아래 스님 한 분이 이 응진전에서 기도하며 거처하고 있는 곳이다.
응진전 마당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을때 어디선가 대금 가락이 흐르던 바로 이곳이다.
응진전에는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며 조각되어 있는 16분의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이 나한들은 재상의 아들이며 바루를 들고 있는 빈도라바라다바자,
선악의 구별 능력이 있는 가나가바차,
전생의 기억을 아는 가나가바라타자, 수빈타,
등을 긁고 있는 나쿠라,
참선하는 바다라,
철바루를 들고 있는 카리카, 바자라푸트라,
중생 교화에 힘쓴 지바카, 판타카, 라후라, 나가세나,
경전을 읽고 있는 안가다, 바나바시, 아지타, 수다판타카로의 16나한은
석가여래가 열반한 이후에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분들이다.
고려 시대 노국 공주가 청량사 응진전에서 16나한을 모시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이 나한상들은 노국 공주와 시녀들이 깎았으며 그중에는 공민왕과 노국 공주를 형상화 한
상(象)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응진전 마당에서 바라본 청량산의 수려한 능선에 가슴에 멘톨향을 뿌린듯,
나의 마음도 거침없는 구름과 공기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