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구도 속 미중 관계
한반도와 한민족을 최대 희생물로 만들었던 세계의 제1차 냉전체제(1945-1990)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금세기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대결 구도가 구축되어 신냉전체제가 형성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 외교 목표로 삼아왔고 일본·호주·인도를 동원하여 일종의 안보·경제 협의체 쿼드(QUAD)를 형성해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으며, 특별히 동북아에서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을 간절히 바라고 한국에는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가치동맹을 내세워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를 견제하고 고립하려 한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과거 소련 영토였으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가입시키려 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촉발했다. 러시아는 서방측 제재로 인한 피해를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최소화하고 미국과 견원지간인 이란을 포함시켜 중국-러시아-이란 블록 형성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신냉전 구도는 과거 냉전 구도와 비교해볼 때 한계가 많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이는 우선 미국 경제 쇠퇴에서 기인했다고 보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GDP의 절반을 바라봤으나 지금은 1/4도 못 미치고 있다. 2030년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재정 적자, 무역 적자, 외환 적자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제조업을 살리고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 정책이나 바이든의 미국 제품 구매(Buy America) 정책이나 모두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이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 미국 제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미국의 값비싼 노동력과 높은 복지 비용 때문일진대, 투표에 매달리는 민주국가 공직자들이 국민들 생활수준을 낮추라는 요구를 할 수 없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
재정지출을 줄이려면 해외 주둔 미군 체류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필요를 피할 수 없고, 그 연장선에서 주한미군 철수까지 심심찮게 거론되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보았듯이, 미국은 주한미군으로 인한 군비 지출에 큰 부담을 느끼고 한국에 비용을 더 감당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점차 커질 것이고 언젠가 주한미군 철수를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그때를 위해 군사적·경제적·심리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밀착도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심화되었다. 미국은 소비품뿐 아니라 제조업의 부품까지 상당한 분량을 중국으로부터 싼값에 수입하여 쓰고 있는데, 공급처를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옮기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전자, 자동차 등 기술집약적 중공업에 진출하여 국제적 수준으로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 분야의 부품 공급 등에 있어 미국 기업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부분도 지대하다. 이뿐 아니라 중국은 세계 최대 외환 보유국으로 유사시 미국의 금융을 혼란스럽게 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연고로 신냉전체제는 지극히 느슨한(loose) 냉전체제라 할 수 있다. 두 진영의 지도국이라 말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항상 대치하진 않는다.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신냉전 시대는 필요치 않고 중국과 미국이 공동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바로 이 신냉전체제의 느슨함이란, 중소 규모 나라에 어느 진영(bloc)에도 속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상당히 주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벌써 쿼드 회원국 인도는 미국이 원하는 대러시아 제재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은 신냉전체제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틈새가 예전보다 더 넓어졌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한반도가 또다시 냉전체제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