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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삼단논법
어린애 하나를 채 간 악어가 아이 어머니에게 자기가 그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맞히면 어린애를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너는 아기를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과연 악어는 아기를 돌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네 생각을 알아맞혔으니 어서 아기를 돌려달라고 재촉했다. 이에 악어는 “안 돼. 돌려주면 네가 내 생각을 못 알아맞힌 것이 되잖아.” 라고 대꾸했다.
퀸틸리아누스, <훈몽>에 나온 글,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서 재인용.
여기서 시작됐구나. 궤변(詭辯)의 시작.
번뜩이는 재치(?)와 나름의 논법은 있으나 그 마음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는 말장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공공의 질서를 뒤흔드는 속임수.
그 말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정치개입은 했으나 선거개입은 하지 않았다.”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했지 무상급식을 하겠단 건 아니었다.” “반값 등록금 공약은 금액이 아니라 심정적인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 라는 수려한 명문장들이 줄줄이 탄생하고 있다.
악어 앞에서, 혹시나 하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픈 엄마의 진심은, 교묘한 궤변에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공약(公約), 공약(空約)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든, 정보에 무지한 탓이든 선택해준 사람들의 믿음을 사뿐히 즈려밟는 아름다운 발길들. 교활한 얼굴들, 말들.
악어에게서 배웠나보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긴 무엇이 두려울까? 무엇이 부끄러울까? 당신들에게는 악어보다 더한 권력이 있으니 궤변을 정변으로 둔갑시키는 충신들이 있으니 악어보다 더 뻔뻔한 심장이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