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지팡이 짚고
유 병 덕
2015harrison@naver.com
눈이 말썽이다. 뻑뻑하고 침침하다. 어제는 꽃비가 쏟아지는 조붓한 길을 마냥 걸었다.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별처럼 반짝이는 시구詩句를 읊조려 보기도 했다. 이제 아름다운 꽃을 보고 흥미로운 책을 읽던 시간은 내게 더는 쉬운 일이 아닌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눈이 반란을 일으킨다. 눈동자에 피멍이 들고 실핏줄까지 튀어나와 병원을 찾았다.
한나절 검사를 받은 거 같다. 안과전문의가 번쩍거리는 빛과 센 바람을 눈에 들이대더니 심각한 표정이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오래 사용하면 생기는 증상이라며 시신경이 위축되고 안압이 높다고 걱정이다. 불빛을 보면 주변에 무지개가 보이나요. 눈을 감으면 작은 점이 여러 개 떠다니죠? 질문이 이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나 눈은 솔직하게 답한다.
눈이 말을 걸어온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란다. 출근하면 결재할 전자문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수백 건의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 내느라 고단했다. 그래도 한글이나 영어는 낫다. 낯선 글자가 올라와 있으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글Google 번역기를 돌리고 전문가에게 자문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행여 회의나 외부 일정이 생기면 눈이 더 혹사당한다. 홀로 어두침침한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와 씨름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끔 쏟아지는 눈을 손으로 받쳐 들고 가로등과 함께 퇴근하곤 했다.
의사는 촬영한 영상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녹내장이. 음, 치료가 어려워서 자칫 실명할 수도….”
백내장은 들어보았어도 녹내장은 금시초문이다. 실명이라는 말이 충격적이다. 갑자기 맹인이 되었다는 상념에 빠져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지난날을 원망하고 또 절망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현듯 현직에 있을 때 ‘흰 지팡이의 날’ 행사에 갔던 일이 기억났다. 흰 지팡이의 날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지정한 날이다. 처음 접하는 행사라 낯설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흰 지팡이를 짚고 운동장에서 서성인다. 그런데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푯말을 어떻게 알아보고 찾아가는지 신기했다. 다가가서 점자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청하니 가족처럼 다정하게 반긴다. 명함을 받아 들고 점자를 만져가며 이름을 부르고 손을 어루만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뜬 소경이 많아요.”
초면에 놀랐다. 시각장애인 협회장이 지난날 내 모습을 곁눈질한 것 같다. 한때, 승진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발버둥 쳤다. 이들은 득도한 스님처럼 한결같이 마음이 평온하다. 마치 야생초처럼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점자보도블록을 걸어가는데 서두르지 않고 흰 지팡이를 두드려 가며 사부작사부작 간다. 점자도서관에 갔더니 고시 공부하는 것처럼 진을 치고 앉아있다. 어떤 이는 내 손목을 잡더니 부조리한 세상사를 조모 조목 따져가면서 귀띔이다. 가슴이 따끔했다.
회억해 보니 내가 눈뜬 소경처럼 살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차치하고 내 몸조차 지킬 줄 몰랐다. 죽는 날까지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줄 알았다. 눈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두 눈이 있다. 하나는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육신의 눈이요. 또 다른 하나는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다. 외부 세계를 보는 눈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발달하여 시력을 가지게 된다.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 역시 발달 과정을 거친다. 이는 세상과 교감하는 지혜의 눈이다. 시간이 지나며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육신의 눈은 침침해지나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은 밝아진다.
어제가 아득한 옛날이다. 세월이 가니 욕심이 줄어들고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화려한 생활보다는 소박한 삶이 좋고, 값비싼 옷보다는 편안한 옷이 좋다. 내면의 세계가 조금씩 보인다.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코가 있어 향기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손이 있어 부드러운 것을 만질 수 있고 두 발이 있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어 고맙다. 지금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어야 생활할 수 있는 이가 있다. 당장, 안구 신장 심장을 바꾸거나 간을 이식해야 살 수 있는 이도 부지기수다.
의사는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구슬리나 그 말에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운명이라면 인간이 걱정할 몫이 아니다. 설령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흰 지팡이 짚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어두워질까 걱정이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소경보다 못하다는 소리 들을까 두렵다.
그저 오늘 하루가 찾아와 주어 감사하다. 거실에 고운 햇살이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는데 지인이 오랜만에 만나자고 한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청바지와 재킷을 꺼내 걸치고 길을 나선다. 길가엔 하얀 이팝나무꽃이 만발해 있다.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 수필 잘 읽었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좋은 수필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