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요엘 3:1 (공동번역))
노인이 된 지금은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많이 줄었는데,
꿈이나 신화를 제 뜻이 아닌, 반편의 의미로만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는 여전히 가슴에 얹힙니다.
“~ 는 한낫 꿈/신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식으로 꿈이나 신화를 허황된 가짜 이야기라는 뜻으로만 쓰는 것을 볼 때 그렇습니다.
“꿈을 크게 품어라” 이처럼 꿈을, 단지 미래에 성취할 희망, 목표로만 쓸 때 그렇습니다.
이것은 꿈과 신화를 의식적 현실 실체로만 대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꿈이나 신화가 허황되고 가짜인 측면이 있습니다.
꿈이 아직 실현안 된 미래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만의 사실입니다.
이것은 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식 세계만이 전부라고 보는 관점에서만 그렇습니다.
심리 영석적인 비합리적인 정신 세계를 포함한 ‘하나의 세계’에서는 꿈과 신화는 실재이며 예언입니다.
미래에 성취될 것으로 예언되는 꿈이나 비전은 비합리적인 정신 세계에서는 이미 성취된 것의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를 현대인의 의식 세계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
잘 때 꾸는 ‘잠꿈’, 머리로 상상하는 ‘목표꿈’이라는 말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저절로 오는 ‘잠꿈’을 모르는 현대인은 깨서 사고하는 ‘목표꿈’만 상상하고, 그것이 자신의 의식이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애초에 부어주신 영으로, 환상(비전)으로, 잠꿈으로 보였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것들은 인과관계 없이 비합리적으로 저절로 나타난 것이어,
이의 합리적 사고에서 그 의미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물리적인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면,
허황된 일이 되고, 미래에 실현시킬 희망으로만 남는 것도 이해되는 일입니다.
현대인이 잊은 성령의 세계를 포함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이, 젊은이, 늙인이를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않고 오듯이,
예언, 환상, (잠)꿈은 저절로 온 선물이고, 선물인 이유는 실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실현은 소위 과학의 물리적 실험처럼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즉 인과관계 없이 실현되기도 해서, 합리적 사고로는 그 실현의 연관성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예언하여 과거를 미래로 만듭니다.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현실을 이해하여 삶을 살아냅니다.
늙은이는 (잠)꿈을 꾸고 사후 세계를 이해하여 죽음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찬란한 미래가 꿈으로 오고
젊은이에게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떨쳐야 할 과거와 현실의 과제가 꿈으로 오고
중년에게는 이제까지 산 삶과 다른 다른 반의 세계가 꿈으로 오며 아이 때 꾼 꿈의 예언적 성취를 촉구합니다.
노인이 되도록 잠꿈의 의미를 받아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제를 해야하듯, 임종 무폅에 이 과정이 더 밀도있게 진행된다고도 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수도 있는데. 그래서도 더 거듭 말씀드리게 되는데,
꿈이나 비전은 비합리적인 정신 세계에서 이미 성취되어 이미지로 보인 것입니다.
이 모두가 부어진 환상(비전), 잠꿈으로 오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