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나들이
편 영 미
바람은 겨울, 햇살은 봄. 겨울과 봄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한 날이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가 병원에 가시는 날은 두세 사람의 보호자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 운전기사다. 먼저 큰아이를 태워 병원에 내려주고 어머니 댁으로 간다. 미리 진료 접수를 해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그 사이 조카는 계단 난간과 씨름하며 아래층으로 내려오시는 어머니를 살펴 드린다.
어머니는 십여 년 전 허벅지 뒤쪽의 근육종을 제거하고 피부 이식까지 받아야 하는 대수술을 했다. 수술 시간만 10시간 이상이 걸렸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시는 며칠은 사경을 헤매었다. 어머니는 앞서 간 병원에서 허벅지 위쪽까지 절단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한다며 반 넋을 놓은 듯 보였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알아보고 수술하기까지 긴박한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는 다리만 붙어 있으면 된다고 하며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회복은 더뎠다. 계절이 두 번 바뀐 후에야 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와 재활 치료까지 더 긴 시간을 힘겹게 이겨내셨다.
그 후 어머니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리고 어르신 보행기가 허벅지 뒤쪽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것들에 의지해 미용실도 가고 병원도 가고 찬거리를 사러 마트나 시장을 다박다박 걸어 다니셨다. 몇 해 전부터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 사이 손님처럼 다녀간 뇌경색과 발 앞에 문을 두드리고 선 당뇨까지 겹쳐 지금 어머니 몸은 약으로 방어벽을 치고 있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큰아이가 휠체어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요즘 어머니의 병원 출입이 잦아졌다. 일 년에 두어 번 맞던 허리뼈 주사를 한 달 건너 한 번씩은 맞는다. 의사 선생님도 참아 볼 때까지 참아 보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아파 고통스럽다며 역정을 내신다. 진료를 보고 뼈 주사를 맞고 나온 김에 영양제까지 맞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머니께 동네 한 바퀴 드라이브를 청하니 마다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두 발로 걸어 다니던 길을 눈으로 마음으로 더듬거린다. 오후 되면 늘 나오던 노점상 채소 가게 주인의 안부가 궁금하다며 웃는 입가에 쓸쓸함이 묻어있다.
몇 가지 살 것이 있다며 마트에 들렀다 가자고 하신다. 마트 주차장을 들어서는데 건물 오른쪽에 있는 분식점 어묵 냄비에서 김이 술술 올라온다. 주말 오전 시간인데도 주차장은 차들로 붐빈다. 햇살이 잘 드는 쪽에 차를 세웠다.
“엄마, 볕이 좋아요. 잠시만 계세요.” 차에서 내려 분식집으로 갔다.
“어묵 2개만 포장해주세요.” 쥔장은 뜨끈한 국물까지 알아서 담아 준다. 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마트 안으로 향했다. 오래 앉아 기다리는 건 힘드실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한다.
로컬 푸드엔 벌써 봄이 진열되어 있다. 쑥, 냉이, 달래, 방풍나물 등 봄이 가득하다. 입맛 살아나게 할 쌉싸름한 봄나물을 몇 가지 골라 담는다. 그사이 큰아이는 방울토마토와 사과, 배, 옥수수 뻥튀기와 빵 등을 가져다 커터에 담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좋아하는 간식 저격수다. 어머니 부탁하신 것들까지 챙겨 담았다.
쭈글쭈글 주름 꽃이 활짝 핀 어머니 얼굴이 햇살에 빛난다. 차 문을 열기가 무섭게 쏟아져 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오뎅은 처음 먹어본다. 다영이 하나 주려고 남기려 했는데 맛있어서 국물까지 다 먹었다.” 하며 빈 그릇을 내미신다. 그런 할머니 모습이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엄마, 이천 원이 주는 행복이 이렇게 크네.” 한다. 큰아이의 말 때문인지 어묵 두 개 드시고 주름 꽃 활짝 피우며 아이 같이 좋아하는 어머니 때문인지 가슴이 물컹해진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큰아이는 오솔길에서 만나는 조붓한 야생화 같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첫 손주 사랑이 특별하셨고 동생 둘에 치이는 큰아이를 어머니는 많이 보듬으셨다.
“제가 어릴 때 할머니 집에 자주 가 있었잖아요. 할머니 가시는 곳마다 따라 다니는 껌딱지였어요. 할머니랑 시장 가면 손짓하는 건 죄다 입에 넣어주셨어요. 나무젓가락에 끼워 먹는 어묵도 진짜 맛있었는데, 제가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덤 얹어주면 할머니가 진짜 좋아했어요. 할머니, 맞지요?”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고 작은 계집애가 어머니를 그 시절로 이끈다. “엄마 아빠가 바쁘다며 안 태워준 기차도 할머니가 태워줬어요.” 핸드폰을 들춰 어릴 적 할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을 찾아 보이며 “할머니 코랑 제 코랑 똑같지요?” 하는 손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살갑다.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아프고, 자식들 힘들게 한다. 미안하고 고맙다.”
“엄마, 그 연세에 여기저기 고장 나 편찮으신 것도 아파 병원 가시는 것도 예사지요. 저는 엄마, 아버지 치매 안 걸리시고 이렇게 옆에 함께 계신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병원 가시는 거 식구들하고 나들이 간다 생각하세요.”
식탁 위 봄을 부려 놓는다. 얼른 쑥을 다듬고 씻어 물기를 빼고 콩가루를 넉넉히 묻혀 맑은 쑥국 한 냄비 끓인다. 어머니가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고 계신다.
이른 봄 따뜻한 쑥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 앞에 놓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