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외 1편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삶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 뒤에 연좌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날들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먹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곧 땅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지상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 번째 베어 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群集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새끼 짐승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 박아놓았다.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검은 새가 나는 하늘을 밟을 수는 없고 우리가 아무리 정밀을 손짓해도 정적으로 간 흰 나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햇빛을 몰아내는 밤은 늘 기슭에서부터 몰려와 대지의 중심을 덮고 고갈되기 전에 바다에 닿아야 하는 물들은 쉬지 않고 하류로 내려간다.
병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산과 들판에 집 없이도 잠드는 목숨을 위해 거칠고 무딘 것들을 달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발시린 짐승의 무릎을 덮는 짚이기만 한다면, 향기롭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이슬 한 방울에도 온몸이 젓는 풀벌레의 날개를 가릴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나뭇잎이기만 한다면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2
언덕 너머에 집이 있고 길 건너에 물이 있다 배추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져서는 안 된다 인간의 말은 너무 난해해 소들은 풀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귀를 대고 산다 안 보이는 곳에서 샘물이 솟고 벌레들은 해 지기 전에 가시나무 울타리에 집을 짓는다 가 본 길만 길이 아니다, 어둠 속으로 벋은 가보지 않은 길은 얼마나 깊고 싱싱한가 그곳에 흩어진 마음 조각들이 저들끼리 모여서 노래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