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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2:1-4
우리나라 성인 4 명중 한 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60대 남성의 3명중 1 명이 암환자라고 합니다. 매년 11만 명이 암에 걸리고 그 해에 약 6만 4000 명이 사망한답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암은 엄청난 통증과 구토, 불면증, 변비, 가래, 부종등에 시달리며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이번 목요일에 홍애귀 권찰을 청원에 있는 말기 암 환자 수용시설인 꽃마을에 입원 시키고 왔습니다.
답사 차 일주일 전에 갔을 때 수용 환자들이 43명이었는데 금주에 가보니 18 명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껏 개원 이래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살아서 퇴원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답니다. 그날도 홍애귀 성도를 태운 카트를 밀고 정문으로 들어가는데 반대 쪽 후문으로 하얀 시트에 덮여진 막 죽은 고인의 카트와 몇 명의 유가족이 울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 세상의 질긴 끈을 놓아야 하는 죽음의 장소에 34살 젊은 성도를 밀어 넣는 목사의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의 선언이 몸서리쳐집니다. 죄의 결국은 사람의 사람됨을 파괴하고 인간 관계를 분열시켜 불행을 자초하게 하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정 사정 봐주지 않은 채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생을 몰아 갑니다. 삶이 무엇인가요 ?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바등거리지만 결국 죽음을 향해 오늘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죽음의 실존을 까맣게 잊은 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합니다.
요양소에서 그 많은 주검을 지켜봤던 박창완 신부님의 사목일기를 책으로 펴낸 “ 이 목 좀 따줘”가 프런트 한편에 전시되어 있길래 사다가 그 밤 토끼잠을 자고 일어나 새벽 예배 전까지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한편의 내용들이 모두 실화인지라 눈물로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가슴 아픈 한편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육종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19 살 앳된 소녀가 아빠의 등에 업혀 숨을 헐떡이며 이곳에 들어 왔습니다.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오른 쪽 어깨 위에 주먹 2개 합쳐 놓은 크기의 암 덩어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딱지와 진물은 죽음이 그를 삼켜 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개척교회를 섬기던 전도사님의 막내딸로 귀여움을 한 몸에 받던 아이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피아노 반주를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던 아이, 가난한 살림에 아르바이트 하며 부모님께 선물도 사드리리고 스스로 용돈을 해결하는 기특한 학생이요. 이 다음에 선교사가 되겠다던 꿈 많은 착한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심한 기침과 오른 쪽 어깨 위에서 짓누르는 암 덩어리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짓게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몰려오는 추석을 이틀 앞둔 날이었습니다.
“ 신부님 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살고 싶어요. 부모님께 속만 썩여드리고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했는데 , 게다가 부모님보다 먼저 죽으니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잖아요. ”
“ 그래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사실이란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해볼까? 뭔가 의미있는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는 것야 ?
“좋아요 그런데 제게는 돈이 없어요!” “ 그건 걱정 말아라 너 아르바이트 해본적 있지 ? 너는 전도사님의 딸이니까 기도 많이 해봤을 거 아니냐 ? 니가 나를 위해서 5 분 동안만 기도하는 거야 그럼 1 분에 1만원씩 쳐줄게!”
아이는 부모님께 마지막 선물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심한 기침을 참아내면서 기도를 드렸고 약속대로 5 만원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추석 전날 저녁 무렵 아빠의 등에 업혀 봉고차를 얻어 타고는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러 나갔습니다. 저녁 늦게 부모님은 화사하고 예쁜 생활 한복을 입고 연실 싱글 벙글 좋아하는 딸을 업고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잠이 든 후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옷을 사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생활한복을 파는 곳을 발견하고는 딸 아이는 저거다 하며 값을 흥정했으나 한 벌에 5 만원인 한복을 두벌 줄 수 없다는 아저씨의 거절에 돌아서야 했답니다.
그 때 딸아이가 기다시피 혼자 차에서 내려 아저씨에게 웃옷을 벗어 암 덩어리를 보여주며
“ 아저씨 저는 19살인데 육종암에 걸려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는대요 . 이 돈 5 만원은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인데 죽기전에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 선물을 하고 싶은데 아저씨가 저를 불쌍하게 생각해서라도 좀 도와주세요.”
잦은 기침과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말을 이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던 아저씨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피딱지가 달라붙은 암 덩어리에 , 연신 진물이 흘러내리는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는 아저씨도 기가막혔는지 “나도 너만한 딸이 있는데 어찌다가 이렇게 됐니. 그래 너를 봐서 5 만원에 두벌줄게. 용기를 내거라“
말을 마친 아이 엄마는 “ 신부님 저희 부부는 이 옷을 추석 때만 입을 겁니다. 아주 오래도록 입어야 하니까요. ”
눈물을 흘리며 옷을 개는 엄마는 혹여라도 옷에 때가 묻을까봐 조심스럽게 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병세가 악회되었습니다.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잠시도 제대로 눕지를 못했습니다.
오른쪽 어깨 위 암 덩어리가 아이의 머리 통만하게 커졌을 때 목 이곳저곳에도 달걀만한 혹이 생겼습니다. 아이의 팔을 주물러 주는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말를 새가 없었습니다. 그 때 아이가 엄마를 보며 말했습니다.
“ 엄마 울지마 , 어차피 사람은 한번은 죽는 거잖아. 엄마가 울면 내가 더 힘들어. 이 다음에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잖아 . 그러니 울지 마 , 이제 조금만 참으면 돼 ”
그리고 3 일 후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임종이 시작되었고 소녀의 마지막 말은
“ 엄마 사랑해 , 아빠도 모두 고마웠어요. 천구에서 봐요 ” 아직 맑은 정신이 남아 잇을 때 힘을 다해 작별 인사를 고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혼수상태가 되면서 천천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낮게 오열하는 엄마 아빠를 뒤로 하고, 천국에서 만날 날을 약속하며 천사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품에 달려갔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이런 날이 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한부 인생을 살 뿐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습니까? 평안을 얻기 위해서 입니까? 성공하기 위해서 입니까?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까? 다 좋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 생활 잘해서 축복도 받아야 하고 그 많은 기도에 응답받는 역사도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행복해야 하고 자식들도 잘 키워야 하고 꿈도 성취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런 약속들이 얼마든지 있고 또 하나님은 그런 축복을 우리에게 기쁨으로 허락하십니다.
4절 말씀 후반절을 보시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현실 생활에서 우리의 필요를 분명히 채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옥죄어도 우리 크리스천은 분명 믿음으로 삽니다. 믿으면 분명 하나님의 영광이 체험되어 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의 본래의 뜻에는 굉장히 무거운 뜻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전에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견디고 견딘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를 조금 더해야 겠습니다. 홍애귀 성도님이 설 다음 날 제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입이 굳어져 산소 호흡끼를 끼고 코줄로 음식물을 투입하기에 말 한마디 못하지만 오른쪽 손만 약하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소형 화이트 보드에 약간의 의사표시를 하는데 이렇게 썼습니다.
“ 세상에 나쁜 놈들 많은데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되나요 . 원망스럽고 분노가 일어납니다. ” 이 질문의 요지를 아시겠습니까 ?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 누굴까요 ? 하나님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시시각각 더해지는 두퉁과 마비 증상으로 죽음이 엄습해 오는 현실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에 들어가는 날에는 제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 왜 기도하는데도 통증이 계속됩니까 왜 ?” 이제는 기도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만히 응시만 했더니 다시금 보드에 써서 되묻습니다. “왜” 너무도 마음이 착착했습니다. 목사에게 이런 순간이 가장 곤혹스럽습니다.
제가 뭐라 대답했을까요 ? 제 대답이 하박국서에 있습니다.
하박국서를 살펴보고 결론에서 홍애귀 성도에게 드렸던 대답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1장에서부터 이어지는데 그의 질문이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
하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 죄악 세상을 왜 보고만 계십니까? 이 죄악된 세상에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심각합니다. '이 죄악 세상을 심판하심에 왜 악인을 들어 의인을 벌하시는 겁니까 ? ‘ 하박국 선지에게서 이러한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을 봅시다.
예레미야 5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하나님의 믿는 신앙의 중심지가 타락해 죄악의 소굴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더 고통스런 것은 북쪽에 있는 바벨론 제국이 지금 온 땅을 공략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병대가 출발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이제 머지않아 하나님도 모르는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하박국은 묻습니다. '하나님, 예루살렘 성도 죄가 많지만 저 바벨론은 더욱 악하지 않습니까?
망해도 저놈들이 먼저 망해야 하는데 어떻게 저놈들에게 우리의 심판을 맡기십니까 ?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 ‘
절규하듯, 탄식하듯 토해놓는 그의 기도에는“어찌하여, 어찌하여…!”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문 가장 높은 곳 성루에 올라 절규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나님의 대답을 명백히 새겨서 성문에 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대답도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하나는 "정한 때가 있나니……"라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다,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그런고로 기다리라-이것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세상이 불합리해서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다스리고 그 끝에 가면 분명히 공의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박국아, 내가 다스리고 있느니라. 내가 두 눈으로 주시하면서 너희를 보고 있으며, 이 역사를 보고 있느니라.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가 이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것을 내가 보고 있느니라 나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서 정한 때가 따로 있다. 반드시 너가 기도하고 너가 바라보는 그날이 온다. 내가 정한 때가 되면 정령 응할 것이다. 정령 응답할 것이다. “
기다려라 내가 준 이 말씀을 굳게 잡고 기다려라 이것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으라 그랬지 즉각 준다는 약속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하셨지 바로 만나 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지 즉시 시행하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번개불에 콩궈먹듯 신앙을 얄팍하게 하지 마십시오 . 정녕 모든 기도는 응답됩니다. 모든 소원은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자, 수없이 많은 세월이 가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자가 영광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몇 번 기도 해보고 새벽 기도 몇 번 나와보고 십일조 몇 번 들여보고 안되다고 응답 없다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기다리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정령 응답되어 집니다. 신실하십시오. 성실하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두 번째 대답이 들려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에서도 말씀되고 있는 아주 소중한 요절입니다.
말 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전혀 앞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절망뿐입니다. 조금 있으면 예루살렘은 불살라지고 피비린내 나는 대 살육이 일어나며 여자들과 아이들은 포로로 끌려 갈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적들을 사르든지 땅이 갈라져 적들을 삼켜 버리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로서 들려오는 음성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이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듣고는 마음이 후련해 졌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하박국의 기도는 감사 찬송이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무엇이길래 세상의 불합리에 대해 그렇게 절규했던 하박국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
일본에 가난한 목사의 아내로서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하라자끼 모모꼬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악성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생명이 붙어 있는 44일 동안, 죽기 이틀 전까지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이 여인의 유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간증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사랑했던 주님 앞에 삶의 마지막 순간을 드린 간증이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일본인들에게 강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전도의 문서가 되었습니다.
시한부 선언을 들은 그날의 일기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마음은 주를 경배하며, 내 영혼은 내 구원이 되신 하나님을 기뻐하노라.
오늘이라는 날, 1978년 6월 28일을 나는 분명히 적어 놓아야만 하겠다.
오늘은 내 길지 않은 생애에 있어서 획기적인 날이 되었다. 나의 생애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삶이다….
”7월 30일, 나는 교회에 갈 수 있는 모든 기력을 상실했다. 오늘은 주일이었다. 나갈 수 없는 교회! “지금쯤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겠지.” 그녀는 예배드리고 있는 교회당과 그 예배의 광경을 생각하면서 병상에서 예배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그녀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마지막 일기를 썼습니다.
“신앙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이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는 엄마의 병을 알고 있다. 머지않아 더 심한 육체의 괴로움이 엄습해 온다는 것도 각오하고 있단다. 그러나 엄마에게 더 분명하게 알려진 사실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직도 사랑이시며 신실하시다는 것,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더 깊게 엄마를 감싸 주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또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이 엄마와 함께 계셔서 곧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다 주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단다.
아들아! 제발 고통스러운 이 엄마를 보아라. 엄마의 최후를 꼭 지켜보아 주기를 바란다. 엄마의 육체가 식어져 굳어졌을 때, 거기에 죽어 있는 것이 엄마가 아님을 꼭 확인해 다오. 죽는 것은 육체일 뿐이다. 이 엄마의 나그네 길에서 엄마는 육체를 남기고 떠난다.
그러나 이 엄마는 여기를 떠나서 어딘가로 갔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어디에 갔을까? 어느 분 앞으로 갔을까? 하나하나 네가 스스로 기도해서 해답을 얻어 보아라. 그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선물이다.”
신앙이란 이 세상이나 나에게 근거가 없습니다.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믿을 수 밖에 없기에 믿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 겁니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갖 악이 넘쳐나고 불공평하기에 믿는 겁니다. 기다릴 수 없기에 우리는 기다리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통치자이시고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말씀으로 만드는 것 봤나요?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 봤나요? 예수님이 죽은 사람 살렸다 그러는데 봤나요 ? 물위를 걷는 것 봤나요 ?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데 봤나요 ?
천국과 지옥을 봤나요 ? 도대체 우리의 믿음이 뭐냐 말입니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이해가 되지 않기에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그 분이 부활하시사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사실과 천국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인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이 확신하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고 역사하신답니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만 사는 겁니다.
이제 홍애귀 성도님과의 질문에 대한 저희 답변을 하겠습니다.
수혁엄마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분명 수혁엄마보다 나쁜 사람 많아요. 수혁엄마 세상의 불합리한 것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해요. 수혁엄마는 이것 저것 생각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수혁 엄마는 오직 하나님만 생각해야 해요.
의사도 믿을 수 없고 약도 소용없잖아요. 병들고 나서 수혁 아빠 빼놓고 수혁엄마에게 이렇게 정성 드린 사람 누구였어요. 누가 날마다 찾아가 위로하고 섬겨주고 기도해주고 이 멀리 안성까지 이틀이 멀다하고 찾아와 이렇게 믿음의 말을 합디까 ? 식구들이 몇 번이나 찾아와요 ? 우리들이 가족 보다 낳지 않던가요?
수혁엄마가 이뻐서 이러는 줄 알아요. 시간 남아서, 돈 넘쳐나서 이러는 줄 알아요
오직 믿음 때문에 우리가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 수혁엄마가 믿을 것은 하나님 밖에 없잖아요.
이 상태가 수혁엄마에게는 고통이고 이해 되지 않지만 이것이 하나님편에서는 하나님의 가장 선하심이예요. 지금까지는 수혁엄마가 믿을 만해서 믿었지만 이제는 수혁엄마에게 진짜 믿음이 요구되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거예요. 고통스럽기 때문에 믿는 거예요.
왜 예수 믿는데 예수님이 죄용서 하셔서 나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천국이 내 집이 되게 하신 것 때문에 믿는 것 아니예요. 물질을 구하고 성공을 구하고 가정의 행복을 구하고 건강 해지고 그것이 예수 믿는 것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런 정도는 절간에 가선도 무당에게 찾아 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
예수를 믿는 바로 수혁이 엄마처럼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 ,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가기 위해 믿는 겁니다.
이 목사도 예수를 믿는 이야도 죄로 말미 암아 죽어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이 길 밖에 없기 때문예요.
성공, 부귀영화 , 출세 , 평안한 삶 그것만이 목표가 아니예요. 예수 믿는 목표는 바로 구원이예요. 영생이예요.
이 중요한 길목에 수혁 엄마가 와 있잖아요. 이 중요한 길목에서 예수를 신실하게 믿어야 하는데 왜 믿음의 줄기를 놓는 거예요.
수혁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방송까지 타게 하셔서 수혁 엄마의 마지막을 서울 시민, 경기도민이 지켜 보게 하신 이유가 뭐냔말이예요. 고작 죽음의 공포에 떨며 천국의 소망을 잃어버린 그런 사람으로 비취지기를 원해요. 하나님의 사람은 병으로 죽고 아파서 죽고 사고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이 데려 가시는 겁니다.
사명 감당하고 가야하는데 왜 믿음을 놓을 려고 합니까 ? 하나님 앞에 서면 어떻게 하실려고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교양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에 나의 미래와 영원한 운명이 들어 있습니다. 에수 믿는 것은 내 생명입니다. 진짜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아등바등대며 온갖 몸부림을 치며 가고 있지만 내 생명의 시간이 깍아지고 있는 것 그것이 현실입니다.
믿을 만해서 믿는게 아니라 믿을 수 없어서 믿는 게 참 신앙입니다. 그 참된 믿음 가지고 죄악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승리하시고 사명 감당한 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웃으실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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