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을 올라야 된다는 어떤 의무감이 나를 압박해 온다. 내가 왜 그런 압박을 받아야 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높이 629m의 관악산은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수도 서울의 방벽으로 이용 되어왔다.
최고봉은 연주봉(戀主峰)이며 서쪽으로는 삼성산과 이어지고 북서쪽 기슭에는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고있다.
이 산은 본래 화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고, 이 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한다.
또한 산정에는 세조가 기우제를 지내던 영주대(靈主臺)가 있다.
산중에는 연주암(戀主庵)· 용마암(龍馬庵)· 자왕암(慈王庵)· 자운암(自運庵)· 불성사(佛成寺) 등의 암자가 곳곳에 자리한다.
지난 겨울 눈쌓인 관악산을 사당동쪽에서 오르면서 위험한 고비가 몇번 있었던 걸 기억하곤 이번엔 서울대 코스를 택했다.
서울대 입구 오른쪽에 있는 철망 길을 죽 따라가면 관악구청에서 잘 다듬고 가꾸어 놓은 산책길이 나온다.
그길을 따라 한 10여분 더 가면 인공 연못도 있고, 서울대 강의실과 연구동 옆도 지난다.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도 건너고, 자연석으로 놓은 징검다리도 건너고, 또 계곡을 끼고 따라 걷기도 하는데 그 재미 또한 아주 쏠쏠하다.
여기도 정상 막바지는 경사도가 심해 힘은 들지만 계단이 있어 어렵진 않다. 턱까지 차는 숨을 이리저리 몰아쉬면서 오르니, 파열 될 것 같은 심장이 나의 갈비뼈를 때리며 뛴다.
막바지 고갯길을 오르니,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파는 조그만 노점상이 있다. 여긴 저 아래 연주암에서 끌어 올린 전기도 있어서 냉장고까지 갖춰 놓고,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즉 사람이 많아 장사가 된다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던지 사람은 몰리는 법. 아니 사람이 모이면 돈도 따라 모이는 법. 여기라고 예외겠는가?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기상 관측소와 연주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정상이다. 또 그냥 직진하여 넘어가면 연주암이 나온다.
정상 오르는 건 당연한 거도 연주대도 다시 가보고 싶었다. 우선 연주대를 갔다가 정상을 오르기로 하고,
연주대 가기전 연주대를 배경으로 사진 뒤로 왼쪽에 있는게 기상관측소, 오른쪽 저 멀리 바위위에 조그맣게 보이는게 그 유명한 연주대이다. 여기서 부터 관측소 옆을 지나 연주대까지 가는 길은 대단한 난코스다.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연주대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연주대
정말 아슬아슬하게 바위의 끝자락을 붙잡고 서 있다. 여긴 오늘도 불공드리러 온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일반 등산객들도 얼마인가를 불전으로 시주를 하며 합장을 하고 나간다.
저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佛法의 힘으로 소원을 들어 달라고 빌고 가겠지? 그게 범부의 삶이니....
그 길의 좌우 나무 그늘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펴놓고 밥을 먹고 있다. 나도 마침 허기도 지고 해서 배낭을 내려서 밥보따리를 풀었다.
옆에서 밥먹는 사람들의 밥상을 보니 호화 찬란하다. 반찬통이 줄잡아 6~7개는 되는 것 같은데 그기다가 막걸리까지....
난 비록 김밥 1줄과 시원한 물 한병이 다지만, 이걸로도 족하고 또 고마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를 때 보고 간 정상을 오르는데 바위산이라 줄을 잡고 가파른 바위벽을 네발로 기어 올라야 하는 난 코스다.
그래도 여긴 북한산이나 도봉산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 앞사람 엉덩이만 보며 기어 올라야되는 괴로움(남자 일 때)이나 즐거움(여자 일 때)은 없다.
나이 줄이나 먹은 부부로 보이는 네사람이 앞서 오른다. 그런데 그들은 산을 타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내가 숨한번 몰아 쉬는 사이에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상에 가면 만나리라고 위안을 하고,
위험한 곳을 오를 때는 밑을 내려다 보지 않는다. 무섭기 때문이다.
내려가는게 더 무서우니 다시 내려 갈 수도 없고, 괜히 올랐다는 후회와 함께 쉬운곳을 두고 어려운 코스를 택한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기다 다리도 아프고 숨까지 턱에차니....
드디어 정상이다. 발아래 펼쳐지는 삼라만상을 내려다 보며, 숨을 크게 한번 몰아 쉬곤 장비의 浩然之氣(호연지기)를 생각한다.
정상에서,
막걸리를 잊고 사오지 않은 게 후회되지만 지금와서 후회 해 본들 무엇하리. 내려가서 한 사발 쭈욱~ 생각만 해도 군침도는데,
하산길을 찾지 못하겠다. 여기 같기도 하고 저기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길을 잡았는데 생각 보다 험하다.
정상에서 만나지 못한 그 사람들을 하산길에 다시 만났다. 그들은 오르는데는 배테랑인지 모르지만, 하산 배테랑은 아닌 모양이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다. 나도 초행이니 함께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들과 합류를 했다.
그들 역시 부부가 아닌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였다. 길을 잃고 헤매지만 그들은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잠시도 쉬지않고 처다보며 뭔가를 얘기하고,
얼마전에 친구에게 들은 우스게 말이 생각 난다. 부부와 애인을 구분하는 법이라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대면 애인, 여자가 입 딱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씩씩자고 있으면 부부라는....
그리고 몇가지가 더 있었는데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그들이 얘기하는 걸 보고 생각한 것이니 그러리라.
숨도차고 힘이들어 말도하기 싫을텐데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허허.. 난 잘 모르겠다.
다음엔 나도 저런 사람을 만들어서 같이 다녀 봐야지 얼마나 좋은지, 가능 할진 모르지만,
저 멀리 삼막사 능선도 보이고,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봉도 보이는데 저건 무슨 봉일까? 아는 사람이 없다. 그 궁금증은 나중에 풀기로 하고,
어려운 코스를 몇군데 지나니 이젠 계곡이 나타난다. 오를 때 지났던 곳이다.
계곡의 물이 너무 맑고 시원해 보인다. 내려가서 배낭을 내려 놓고 모자와 양말을 벗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니 이 또한 파라다이스 아닌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갖고 온 막걸리를 한사발 얻어 마셨다. 역시 땀흘리고 난 뒤에 마시는 막걸리의 맛. 이게 막걸리의 참 맛이리라.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 오는데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역시 마음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는 거 같다. 이 얼마나 중요한 건가?
큰길에 나오니 그늘도 없는데다 각종 차량에서 뿜어대는 열기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힌다.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햇살까지 따가우니...
또 시내버스를 탓다. 세파에 시달리고자 다시 그 속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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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만수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첫댓글 내 블로그(만수쉼터)에 올렸던 글을 옮겨 온거다.
산을 많이 타서그런지 내 친구 맞냐?
한가하개 등산 다니는 친구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네.다음 산행은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에 있는 묘적사 계곡 구경한번 시켜주고 막걸리와 점심은 내말하고 먹기바라네.
허허.. 한가하게 산에 다니는게 아니라 휴일만 되면 기를 쓰고 산엘 간다네. 그게 내가 살 수있는 유일한 길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묘적사는 버얼써 두어번이나 다녀 왔다네. 자네 휴가 온 곳이 수동 계곡 아니었나?
나그네님 관악산 연주대 다녀오셨구나 서울대쪽 코스는 길지만 과천쪽에서 오르면 산행도 좋고 훨씬 오르기가 좋던데.... 연주대는 입시불공을 드리면 잘 듣는다고 소원성취 한다고 전국에서 유명한 암자라더군요 ^^
과천쪽길은 짧고 쉬운데 대부분이 계단이라서 지루 하답니다. 그리고 연주암은 입시불공 소문으로 유명 한데... 글쎄 그게.....
구경 잘햇네 역사공부도 하고남산구경도 한번 시겨주지
기다려 보시게. 기회되면 역사강의 한번 할테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