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망산과 우리들의 삶
양산 통도사의 뒷산, 짱구머리처럼 독특하게 생긴산이 영축산이다. 오래전 등산을 다닐때는 취서산, 축서산 등으로도 불렀다.
영축산이란 이름은 불교에서 자연의 신비에 바탕을 둔 불법의 세계와 깊은 인연이라 하였고, 나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에서 그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이 연상되었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 흘러가는...멀리 우뚝선 영축산 끝자락 흘러내린 곳에 부모님이 계시고, 나는 오늘도 홀로 그곳을 찾았다.
영축산쪽을 올려다보다 북망산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중국 허난 성 뤄양의 북쪽에 있는 작은 산이 북망산이다. 풍광이 수려하고 풍수가 좋다하여 옛부터 이름난 명산이었다. 중국의 유명인사들이 그곳에 묻혔다고 하였다.
그 북망산은 어릴적 시골 초상집 상여소리에도 등장하는데 그 '북망산천'이 바로 북망산을 가리킨다. 공동묘지라는 특성 탓에 북망산으로 갔다는 말이 곧 죽었다는 뜻과 동의어로 쓰인 것이다.
아무튼 기독교의 사후 심판은 믿음의 정도와 선과 악의 마일리지에 의한 단심제이고, 불교의 심판은 저승을 가며 여러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이곳엔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다. 각자의 사연은 달라도 귀착지는 같은 것이다. 부모님 묘지의 옆자리가 비었다.
나더러 오라고 하였던가? 마음속으로 미리 손사래를 쳤다. 언젠가 가족들 앞에서 연명치료 거부와 수목장(?)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께 도착 인사를 드리고, 묘지를 한바퀴 손질한뒤 다시 하직인사를 드린다. 돌아오는 길은 양산역까지 16Km를 걷는다. 4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한두달에 한번 정도 나는 그걸 부모님 생전 불효의 댓가라고 생각하며 마다하지 않는다.
날씨는 6월 초여름이지만 산골바람이 불어와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시골 도로엔 이따끔씩 차량들이 오가고, 시냇물 수량이 줄어들어 물속 바위가 부끄러운듯 속살을 드러냈다.
길가엔 봄꽃의 마지막 주자인 하얀 망초꽃과 노란 금계국이 대세이다. 이따금 산자락에 과일꽃의 마지막 주인공이며, 꿀벌이 좋아하는 하얀 밤꽃이 싱그럽다.
뜨거운 햇살아래의 밭에는 띠를 맨 고추가 힘겹게 서있고, 감자와 마늘, 양파의 잎이 바랬다. 자신을 수확해 해를 이어 생명을 보전해 달라는 증표인 것이다.
이곳은 누구의 무슨 물음에도 항상 긍정(당연>당근)의 의사표시를 하는 채소인 파란잎의 당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잠시 동네앞 정자에 앉은 60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을 퇴직하고, 재취업을 해야 하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90대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자식도 일자리가 시원찮아 쉬고 있단다.
요즘 중늙은이들 사이트에 들면 늙고 몸아픔에 관한 내용들이 대세다. 예전의 자식 걱정들에서 벗어나 솔직한 말로 각자도생이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소득없이 집한채 가진 아버지의 집을 노린다는 사연도 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라고? 임대주택에 기초수급자...
제발 가진 것 넉넉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또한 행복이다.
낀세대, 흔히들 75년생부터 84년생을 말하지만 이전 세대도 포함된단다. 살아계신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세대, 다 큰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첫세대를 말한다.
다시 길을 걷는다. 얼굴과 목이 따갑다. 이까짓 것쯤이야...육신이 힘들어 갈수록 마음엔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는 말이야...예전 부유하지 않은 어느 농사꾼은 아들을 낳으려 출산을 계속하다보니 딸 열을 낳고, 마지막 열한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동네 사람들은 축하의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가난한 집안에 그 많은 숫가락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 하였으나 염려들 놓으시라고 하드란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아래 조국근대화 물결이 가열차게 전개되었던 호시절이었고, 마산에 는 수출자유지역이란게 있었다. 한일합섬이란 회사가 있어 많은 여성근로자들을 고용했었다.
그집 큰딸이 취업을 했고, 동생들을 차례로 데려갔다. 그녀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닐수 있어서 좋았단다.
그시절 군대있을때 겁도없이 나랑 대련(?)붙었던 병장이 휴가를 나와 그 물좋은 수출자유지역 입구 오동동을 지나는데, 어느 아가씨가 불러세우더라나.
아가씨는 자신이 하사인데 같이 술한잔 마시자고 하더라고. 계급에 눌리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따라갔는데, 실컷 마신 아가씨가 걸음을 못걸어 업고 단칸방까지 갔었고, 알고보니 여군 아니더라고...
하여간 그때는 일자리도 많았고, 일을 하려는 의욕도 넘쳤다. 개인의 노력은 가정을 윤택하게 만들고, 국가 발전을 앞당겼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일자리도 줄어들도 젊은이들의 근로의욕도 사라져간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라는 두가지 악재가 우리의 앞날을 위협한다.
부모님 묘앞에서 했던말을 되뇌어 본다. '험난한 세상 뜻있게 살다 갈수 있도록 살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