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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
결코 우리에게, 아니면 나에게 잊혀질 수 없는 인물이 그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직도 〈십이지신 이야기〉, 〈눈물 한방울〉등 그에게 다가가야 할 이유는 쌨고 쌨다. 그는 2022년에 돌아가셨지만, 내마음 속에는 아직 계속 살아 있다. ‘거시기 머시기’라는 말은 전라도 지방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표준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출판사인 〈김영사〉는 “그의 80년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 ‘언어’에 대한 탐구”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한국말에는 흑백의 경계를 넘나드는 애매하고 이상한 말이 아주 많다.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엇비슷’, 서지도 앉지도 않은 ‘엉거주춤’같은 것들이다. ‘거시기 머시기’도 그런 탈경계를 나타내는 애매어 가운데 하나다. 언어적 소통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곡예의 언어가 아닐 수 없다. 〈국어사전〉에는 거시기와 머시기를 따로 설명하였는데, 둘을 구분해서 쓴다는 말일 게다. ‘거시기’“이름 등이 바로 생각나지 않거나 사물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 혹은 말하기 곤란할 때 하는 말”, ‘머시기’는 “무엇을 나타내는 방언,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곤란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했다.
이미 알고 있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가 ‘거시기’이고, 언어로는 줄 긋기 어려운 삶의 의미를 횡단하는 행위의 술어가 ‘머시기’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단지 이 두 마디 말만 가지고서도 서로의 복잡한 심정과 신기한 사건들을 교환할 줄 안다. 영어로‘what-do-you-call-it’(무엇이라고 부르는가)도 모모(某某-무엇), 은(嗯-응?)으로 번역되는 중국어로도 ‘거시기 머시기’를 제대로 번역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죽음’이라는 추상명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 ‘금기어(禁忌語)’로 쓰인다. 오죽하면 ‘졸려 죽겠다, 피곤해서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지 모른다. 죽을 4를 상징한다고 4층은 아예 표시가 없는 건물도 흔하다. 금기어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싯구에서는 ‘죽어도’와 ‘아니’가 겹쳐 부정을 극한에 까지 끌어올린다. ‘절대로’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부정이라면 원조는 정몽주의 〈단심가〉다. ‘죽고 죽어 골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정몽주의 후예인 우리도 ‘죽는다’는 말을 흔히, 너무 자주, 아무렇지 않게 쓴다.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앞으로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거나 “죽기 살기로 살자. 죽어도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말들이 그렇다. 살고서 결단하는 ‘生死決斷’이 아니라 죽더라도 결단하겠다는 ‘死生決斷’이다.
‘죽다’의 반대말은 ‘살다’다. 사는 것의 구체적 행위는 먹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로 마신 것이 독약인 ‘헴록’(독미나리)인데, 헴록은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삶의 동사인 먹다와 관련된다. 헴록은 죽는 것인 동시에 먹는 것이다. 육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피의 교환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먹는 일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미가 ‘식구(食口)’다. 가족은 식구, 즉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영어 ‘동반하다. 함께하다’는 뜻 컴페니언(Companion)도 ‘com-함께’와 ‘pan-빵’, ‘빵을 함께 먹는다’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도 부처와 공자처럼 무슨 글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제자인 플라톤이 〈파이돈〉을 통해서 스승의 마지막 담론과 행적을 남겼으므로 그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파이돈〉통해서 소크라테스가 헴록을 마시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의 최후 담론은 헴록에 대한 옥리의 말을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절친이던 크리톤의 입을 통해 플라톤이 글로 써서 전한다. 크리톤이 말했다. “옥리가 아까부터 나에게 부탁한 것인데, 자네가 독약을 마신 뒤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주의 주라는 걸세, 말을 하면 열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독약이 잘 듣지 않아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마셔야 한다는군”
소크라테스는 고통을 줄여주려는 옥리의 충고를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거부했을까? 그는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헴록을 건넨 옥리가 했다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 일은 옥리의 몫이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왜 헴록을 두려워하지 않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헴록은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담론에서는 발화점 역할을 한다. 〈파이돈〉에는 ‘독약(poison)’이라는 말이 열여덟 번 나오고 담론을 이어가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철학자에게 헴록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무의미한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헴록과의 게임이고, 그에 대한 행동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신체가 없으면 영혼도 따라서 사라진다’고 하는 말을 부정했다. 즉 “거문고가 부서지고 줄이 끊기면 어찌 아름다운 음악의 조화를 들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육체가 항상 소모되고 소멸하지만, 영혼은 항상 새로운 옷을 짜서 입으며 소모된 것을 보충해 가는 것”이라고 한, ‘심미아스’와 ‘케베스’의 신체관에 대해서도 고개를 흔든다. “영혼이 사멸하는 날에는 영혼이 최후의 옷을 입겠고, 그 옷은 영혼보다 오래 있을 것”이라는 시적인 표현에도 소크라테스는 영혼 불사를 증명하기 위해 그 유명한 ‘靈魂常氣說’을 끌어냈다.
헴록과의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영혼과 신체를 철저하게 분리해야만 헴록에 의해 멸해지는 것이 신체일 뿐,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영혼을 신체와 분리하고 대립시킬 때 비로소 헴록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영(靈)과 육(肉)을 분리하고 대립시키는 ‘이항 대립 체계(binary opposition)’야 말로 서구 사상의 전통이고 뿌리다. 소크라테스는 최후에 헴록을 마시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나”라는 짧은 한마디만을 했다.
임종의 자리에서도 외상값을 걱정하고 그것을 갚아달라고 했다는 것은 ‘악법도 법’이라고 한 그의 말과 함께 아테네 사람들에게 더욱 빛났다. 아테네 사람들은 병을 고쳐주는 의사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아스클레피오스’신전에다 닭 한 마리씩을 바쳤다고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그 신전에 닭 한 마리를 바쳐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은 영혼의 신이 아닌 육체의 신(병을 고쳐주는)에게 감사드려 달라고 했다는 말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헴록을 마시고는 의신에게 신세졌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순교?는 종교나 국가를 위한 자기희생과는 다르다. 그의 죽음은 철학적 순교이고 신체의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순교였다. 하지만 제자들과 노예 출신이던 ‘파이돈’은 훌쩍거리면서 땅을 치고 절망했다. 파이돈은 스승을 잃은 슬픔에 그만 길손으로 떠났다.
소크라테스가 영혼 불사론을 펴고 철학자는 육체에 대해서 연연하거나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고 누누이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친구 크리톤은 담론을 모두 듣고 나서 그가 독약 마실 준비를 할 때 묻는다. “여보게, 자네가 죽은 뒤에 그 시체를 어떻게 매장해 줄까?”소크라테스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독백처럼 말한다. “나는 크리톤으로 하여금 내가 여기에서 자네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리고 우리의 토론을 이끌고 있는, 바로 그 소크라테스임을 믿게 하지 못했네. 그는 나를 얼마있다가 그가 보게 될 송장이라 생각하고서, 어떻게 나를 파묻을까 하고 묻고 있네. 나는 내가 독약을 마시고 죽으면 자네들을 남겨두고 축복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기쁨에 참여하리라는 것을 누누이 말해왔는데, 크리톤은 그것이 그저 나 자신과 자네들을 위안하기 위한 아무 실속 없는 소리인 줄로만 알고 있군그래”라고 말한다.
이어령 선생은 40여 년간 재직한 이화여대를 떠나면서 마지막 강연에서 그동안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파이돈〉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화는 내 젊음을 묻은 곳입니다. (…) 이제 나는 헴록을 마신 사람처럼 온몸으로 점점 냉기가 올라오는 겨울을 맞이해야 합니다. 외로운 섬처럼 어딘가에 있을 내 작은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도, 무슨 구호를 외치는 분노의 소리도 없을 것입니다. 훌쩍거리며 우는 울음소리도 회한의 한숨 소리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타다 남은 불덩이가 하얀 재 속에서 사위어가는 화롯불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영혼이 입어야 할 마지막 빛나고 아름다운 옷을 장만해야하는 것입니다. 헴록으로 시작하는 말잔치에서는 함께 그 말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대화 없이 일방적인 강연이 된 것을 사과하면서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2001년 9월, 이화여자대학교 교별 강연 중에서
지금 들어도 생생히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말을 문자로 옮긴다는 것은 혼돈의 어둠에서 질서의 빛 세계로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붕괴 되어 가는 소리의 연약함에 모양과 견고함을 주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항하는 용기와 장소를 주는 것, 물건을 가리키는 손이 아니라 물건 그 자체의 흔적을 밝히는 것, 그것이 문자입니다. 한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물 창힐(蒼頡)은 눈이 네 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눈은 빛이고 빛은 어둠을 정복합니다. 창힐이 한자를 완성하자 어둠 속에서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는데, 문자가 만들어짐으로써 어둠을 지배하던 귀신은 설자리를 잃은 것입니다. 문자가 읽히기 위해서 있는 것처럼 컴퓨터 네트워크의 모든 홈페이지 속 그래픽이나 하이퍼 텍스트들은 읽히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발광하고 있습니다. 그 욕망의 회로들은 출판이라는 몸을 빌려 탄생하는 것입니다.”- 2008년 ‘제28차 국제출판협회(IPA)’서울총회 개막식 기조강연 중에서 -
시란 무엇인가?
“시 쓰는 행위 자체가 ‘시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막연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네가 한번 살아봐’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너도 시를 써봐’라고 체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요. 흔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문학과 예술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종교라고 말이지요. 예술은 철학이나 과학과 달라서 개념적인 의미와는 다른 것인데, 문학이나 시를 자꾸 개념화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오죽했으면 아치볼드 매클리서는 시란 무엇인가를 지적 이미지와 은유로 표현하면서 ‘시란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젊은 시인들이 하나같이 공통되는 말은 ‘시를 정의할 수 없다’‘시는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시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자체가 시를 쓰는데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는데, 나는 바로 그런 태도 자체가 이미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들려요. 놀라운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젊은 세대의 시가 우리 시대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구나하는 안도감 아니면 실망도 있습니다.”- 〈시인세계〉발간 10주년 기념 특별좌담에서 -
“글은 암벽 같은 딱딱한 것을 ‘긁는다’를 어원으로 합니다.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긁다, 그리움, 그림, 전부 글에서 나온 겁니다. 책은 바로 글입니다. 말과는 다릅니다. 어떤 흔적을 남기니까 시간이 공간화됩니다. 말한 것은 사라지지만 긁은 것은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리움은 마치 글자처럼 가슴속에 긁혀져 있는 것이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글은 말과 달리 흔적을 남깁니다.
책이란 집단 기억입니다. 문화도 집단 기억입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공통된 상상력과 지식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집단 기억 없이는 지식인도 없고 지식 체계도 없습니다. 새로운 미래가 없습니다. 언어의 세계에는 인간의 창조적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절대변화가 불가능한 자연법칙이 아닌,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word’를‘world’를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희망이 넘치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을 선동할 수도 있고, 소동을 잠재울 수도 있어요. 언어가 병들고 잘못되었을 때, 잘못된 세계에서 잘못된 정보로 사는 거예요. 언어의 속도에 반응하여 뒤쫓아가는 사람,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 소비하는 사람,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데 여러분은 언어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뒤쫓아가는 사람도 되지 말고,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자기 인생과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죠. 그것이 바로 글쓰기고 말하기의 핵심입니다. 대학생이 뭡니까? 생각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언어가 병들고 잘못되었을 때 여러분은 잘못된 세계에서 잘못된 정보로 사는 거예요. 눈을 바로 떠도 힘들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알게 돼요. 흔히 ‘레토릭(rhetoric)이란 말을 써요. 구호, 표어라는 말이죠. ‘word’하나로 ‘world’를 바꾼 사례가 그것입니다. *word : 말,단어,언어 *world : 세계
북한을 ‘Democratic People’s Republic korea’라고 하는데, People을 ‘인민’이라고 번역하느냐, ‘국민’이라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이념이 달라져요. 북한과 중국에서는 인민이라고 해요. 우리와 일본은 국민이라고 하죠. 똑같은 한마디가 엄청난 사회체제를 나누는 이념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엄청난 미모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함락시켰다고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말할 때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해서 언제나 미모를 언급해요. 이게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관이죠. 동생과 경쟁이 붙어서 클레오파트라가 실각한 적이 있었어요. 카이사르를 만나면 해결될 것 같은데 만날 수가 없으니까 마침 이집트를 방문한 그에게 양탄자를 선물해요. 양탄자를 펴보니 그 속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있었어요. 둘은 밤을 새워 이야기했어요. 얼굴이 예뻐서 그랬을까요? 미모로 카이사르를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사로잡은 거예요. 오랜 시간 군함을 타고 유람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하죠. 그가 낚시를 하면 일부러 물속에 고기를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수많은 책을 보관한 도서관이 있었고, 책들을 복사해 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클레오파트라는 보통 지성인이 아니었어요. 7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엄청난 화술의 소유자였죠. 그녀의 목소리는 새소리 같았고, 감미로운 음성 매력에 안 넘어가는 남자가 없었죠. 여론(輿論)은 가마를 멘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가마를 탄 사람, 즉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 가마를 멘 사람들의 말이 여론이라는 거예요. 인터넷이나 신문에서 많이 배운 지성인, 오피니언 리더의 말이 아니라, 대중들 가마를 멘 사람들이 주류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는 여론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소크라테스를 누가 죽였나요? 수백 명의 배심원들, 즉 여론이 죽인 거예요. 권력자로부터 대중으로부터, 돈 많은 사람으로부터, 끝없이 박해당하는 것이 지식인이죠. 군주와 싸워도 이기고 칼잡이와 싸워서 이기는데, 대중하고 싸워서는 못 이긴다는 거예요. 여론 앞에서는 우리의 운명은 풀잎과 같다는 겁니다.
옛말에 ‘사람의 입은 쇠라도 녹인다(衆口鑠金-중구삭금)’는 말이 있어요. 여론은 군주보다 세요. 그런데 위키피디아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올리지 않아요. 다 아는 것을 올리죠. 그러나 위키피다아를 쓰기 위해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닙니다. 위키피디아에 안 쓰진 것, 모르는 것을 찾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모방에 그치는 것이고, 그러면 남들이 하는 것을 뒤쫓아 가는 것에 불과하죠. ‘IQ’라는 게 얼마나 황당한지 아세요. 그런 걸 우리가 믿고 사니까 남들처럼 사는 것에요. 그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심상찮게 살게 된다는 거예요.
여기 오신 여러분 중에 40년 후에는 나처럼 이 자리에 선 사람이 있을 텐데 그 사람은 이보다 훨씬 더 찬란하고 감동적이고, 그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들에게 더 벅찬 미래의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강연을 마칩니다.”- ‘한국말의 힘, 토씨 하나만 고쳐도 달라지는 세상’- 2014년 5월,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초청강연에서
세계 어느 나라나 ‘민족(民族)’이란 말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 단어를 그래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고유의 말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단군시대부터 써온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까. 민족은 근대에 생긴 말로 중국에서 건너온 것도 아니다. 개화기 서양에서 들어온 말 가운데 하나인 ‘nation’을 일본이 번역한 것이다. 일본 신조어인 셈이다. 그런데 民자 원래 도형이 바늘로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한 노예를 지칭한 글자라고 한다. 그 민자가 nation의 번역어로 등장하면서 국민을 말하고, 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본래의 뜻이 아닌 다른 뜻으로 변질되어 걸어온 것으로 이제 민족이란 말에서 원래의 nation의 뜻을 환원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한자어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한자 民은 국민과 인민, 종족이나 인종처럼 사용되고 있어서 민족은 nation ethnic, folk, people 등 여러 가지 상태 의미를 나타 된다. 국민이라고 하느냐, 인민이라고 하느냐에 따라서 정치적 이념 대립이 극한적 양상까지 띠게 된다. 영어로는 같은 nation인데 국민이 되기도 민족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동아시아에서의 변역 행위가 비포 바벨이 아니라 에프터 바벨의 혼란과 분열을 가중시켜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이라는 번역어가 일본에서는 천황주의와 결합해 국수주의·군국주의를 낳아 한국과 중국을 침략했고, 한국에서는 반사적으로 독립이란 말과 결합되어 항거를 낳았다. 민족은 한편에서는 통합의 원리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분리의 원리로 작용한다. 민족처럼 개화기에 漢字譯으로 된 신조어들이 많은데, 존재, 자연, 인권, 자유, 헌법, 개인, 근대, 미학, 애, 연애, 문학, 예술, 예술가 등이 모두 개화기의 신조어들이다. 맹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는 사회가 없다. 영어 society가 ‘사회’라고 번역되면서, 영화 Dead poets society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어마어마한 말로 번역되기도 했다. 사실 society는 대학생들이 잘 쓰는 동아리라는 말이다. 이런 불안전한 사회라는 말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파생되고, 그것이 오늘날 민족주의·사회주의 등으로 서로 개념이 다른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 ‘비포 바벨의 번역론’2014년 12월 세계번역가대회 기조 연설문을 참조하여
나는 당연히 88올림픽을 기억하고, 2002월드컵을 기억한다. 그것들로 인해 우리를 세계에 알리고 또 우리가 세계인에 끼일 수 있었다는 것도 안다. 물론 내 손자들은 그것을 잘 알리가 없다. 그저 그런 일이 있다고 듣거나 보아서 어렴풋이 알 뿐일 것이다. 오늘도 내일이면 에프터가 된다. 하지만 어제 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다린 내일이었다’는 싯구가 아니라도 오늘 최선을 다하고, 다했다면 그 속에서 무언가 남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늘 오늘에 감사한다. - 2024.5.2.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