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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영도다리
1934년 이전에는 나룻배로 건너다니다가 1934년11월23일 영도다리가 개통되어 섬이란 딱지를 떼었다. 그러나 영도다리가 이름을 날리던 때는 6.25전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1951년 1.4후퇴 시 원산과 흥남 서울에서 물밀 듯이 밀려든 피난민이다.
십이열차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부산에 도착하고, 흥남에서 공산치하의 이기지 못해 기차로 배로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흥남철수의 그날 밤 부두 앞바다에는 작은 원유 수송선 한척이 떠 있었다. 눈보라치는 1951년12월22일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Meredith Victory) 의 선장 라루 (Leonard P. Larue)가 명령을 내렸다. “저 부두에서 떨고 있는 피난민을 모두 이 배에 태워라!“ 승선은 끝이 없었다. 아이들, 노인들, 목발을 집은 자, 아이 젖을 물린 여인.... 선원들은 한국말로 단지“빨리 빨리”만 외쳐댔다. 밤9시에 시작된 승선은 다음날 오후 1시에 끝났다 . 갑판은 움직일 틈조차 없었고 화물칸은 숨쉴 틈조차 없었다. 7600t급 화물선에 승선한 인원은 1만4000명 배에는 음식도 물도 화장실도 없었다. 단지 바다엔 기뢰만 온통 깔려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3일간 항해 끝에 라루 선장과 47명의 승무원 그리고 1만 4000명의 피난민 모두 단 한명의 사상자 없이 갓 태어난5명의 신생아와 함께 12월25일 성탄절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이는 금세기 가장 경이롭고 기적적인 구출 사건이었다.
지금도 국제시장이 있지마는 그 당시 대부분 피난민들이 생을 이어가기위해 대부분 노점상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북한이 살기 어려워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으나 고향에 대한 향수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6~8세 쩍 추억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형제를 잃고 아버지와 이별하고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가는 심정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6.25때 피난 와서 대한민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은 모진 세월속에 모든 감정을 묻어버렸겠으나... 요 근래에 탈출한 새터민들은 마음고생 많을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 가슴을 후벼파는 아품을 가진 북한 탈출한 이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주어야 할 것이다.
추억의 영도다리
마땅한 만날 장소가 없던 시절... 영도다리는 만남의 장소였다. 매월 1일 초승달이 뜨는 시각에 영도다리위에서 만나자는 약속한 곳이기도 하다. 전쟁전후로 삶이 막막해진 어진 백성들은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영도다리에서 몸을 던지기도한 곳이다.
부산에서 대학교 다니던 시절 영도다리 건너 살았기에 지금도 전차가 지나가면 털거덕 거리는 소리가 귀가에 여운으로 남아 들려온다. 봉래동 태종대 추억들이 묻혀있는 영도... 그 영도다리가 1966년 중단 된지 47년 만에 재 도개(跳開) 된다고 하여 찾아갔다. 영도다리밑의 철학관은 간곳이 없고 주변의 건어물상점들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우리들을 맞아준다.
이런 여러 가지 추억을 포함하고 있는 부산은 수많은 가수들도 배출했다. 만능재주꾼...쾌지나칭칭나네의 김상국, 트롯트의 황제...고향역의 나훈아, 대한민국 최고의 저음가수 공항의 이별의 문주란, 허스키보이스 애모의 김수희, 자갈치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현철, 설운도... 그리고 6.25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 영도다리와 관련있는 노래 모음 >
~~~추억의 영도 다리 –윤일로 (출생지, 평양)~~~
1.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쳤네 안개 낀 부산 항구 옛 추억만 새롭구나 몰아치는 바람결에 발길이 가로 막혀 영도다리 난간 잡고 나는 울었네
2.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쳤네 차디찬 부산 항구 조각달이 기우는데 누굴 찾아 헤매이나 어데로 가야하나 영도다리 난간 잡고 나는 울었네
3.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쳤네 눈물진 부산 항구 이슬비만 나리는데 매디매디 사모치는 그 옛날 과거사가 오늘 밤도 애처로이 나를 울리네
~~~쾌지나칭칭 나네 – 김상국 (부산 출생)~~~
쾌지나칭칭나네 하늘에는 별도 많소 시냇가에는 자갈도 많소 우리네 살림엔 말도 많소 말도 많은 우리살림 유람이나 갑시다
강원도 땅에는 산도 많소 그래서 그런지 나무도 많소 강원도 땅에는 감자도 많소 그래서 별명이 감자바위요
서울로 가보면 빌딩도 많소 그래서 그런지 아이도 많소 가는 곳마다 와글와글 산아제한을 해야만 겠소이
서울 아이들 잘 먹는 건 뻔데기 뻔데기 뻔데기요
충청도 땅으로 내려가유 이 동네 말꼬린 길기도 길어유 이래유 저래유 아일러브유 충청도유 충청도 사람만 양반이래유
전라도 땅으로 가보더라고 가는 곳마다 풍년이랑깨 김제 만경에 온갖 곡식이 누렇게 익었당깨로 풍년이랑깨 풍년이랑깨
사투리 많은 경상도는 사람도 좋고 인심도 좋소이 대구 땅에는 사과도 많소 비타민 C 가 많아서 좋소이
부산 땅으로 가 보입시데이 영도 섬 다리가 꺼떡꺼떡 하루에 두 번씩 꺼떡꺼떡 아, 고깃배가 왔다 갔다 싱싱한 갈치사이소 멍게사소 멍게요이
쾌지나칭칭나네 아,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 (부산 출신)~~~
눈보리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 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들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 날이 오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추어보자
1951년 1.4 후퇴 시 흥남부두의 철수광경
십이열차에 몸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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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도개시간: 매일 12시~20분 (20분 간)
첫댓글 영도다리가 다시 꺼떡이는 세상,
앞만보고 달려온 우리네들...
뒤돌아보니 그길 간곳 없고 흰머리만 바람에 나부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