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삼국지」 다시 읽기
“삼국지 열 번 읽은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마라.”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얘기다.
그만큼 「삼국지」에는 인생에 도움이 될 역사적 교훈이나 지략이 풍부하다는 뜻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삼국지」는 동양 3국의 가장 많은 독자들이 가장 여러번 읽은 책이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수많은 작가가 「삼국지」를 번역했고 앞으로도 지속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이문열이 전10권으로 번역한 「삼국지」는 무려 1700만 질 이상 팔려나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책값을 낱권 당 1만 원만 쳐도 그가 받은 인세가 1700억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얄팍한 문재(文才)에 순전히 운이 좋아 그 정도 축재를 했으면 쓸데없이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고
모교인 안동고 부근에 학숙(學塾)이나 하나 지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작가 양성에 매진했으면 좋으련만, 쯧쯧
초등학교 3학년 땐가 4학년 때, 내가 맨 처음 빌려다 읽은 「삼국지」는 김성한(1919~2010) 선생의 번역본이었다.
등장하는 주인공이 워낙 많은데다가 어휘가 너무 어려워 줄거리만 겨우겨우 따라 읽던 기억에 지금도 진땀이 나는 듯하다.
이후 중-고-대-직장을 거치면서 손에 닿는 대로 여러 작가의 번역본을 읽었다.
맨 나중에 입수한 책이 이문열의 「삼국지」였는데, 번역자의 군소리가 너무 장황하여 지금 생각해도 짜증스럽다.
그 바람에 정나미가 떨어져 이후 이문열의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다.
하지원과 현빈이 주연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로엘백화점 상무 이병준이 현빈의 고모 김지숙에게 말했듯이
작가에 관한 한 나는 ‘한 번 삐지면 쭈욱 삐지는 스타~일이니까.’
이제 졸업했다 싶었는데, 지난달 작은애가 한보따리 사온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가 또 들어 있었다.
머리말도 없고 후기도 없고 심지어 역자 소개도 없지만, 내 생애 마지막 기회라 여겨 진득하니 읽어보려 한다.
재작년에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러했듯이
지난번에 작은애가 사다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다시 읽으니 역시 전보다 깊고 새롭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철학에 아시눈을 떴다가
3학년 때 「차라투스트라…」를 읽고는 아예 전공을 철학으로 결정하게 된, 나와는 매우 인연이 깊은 책이다.
매일 짬을 내어 한 단락씩 읽다보니 평생을 두고 되풀이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기왕지사 마지막으로 읽는 「삼국지」, 노느니 애 본다고 동기들과 함께 쉬엄쉬엄 줄거리를 따라가 볼까 한다.
워낙 곁가지가 많고 줄거리가 복잡하여 주인공인 유비‧제갈량과 관계된 인물과 사건 위주로 축약해도 원고지 500장이 넘을 듯하다.
25회 정도로 나누어 연재할 계획이니 바쁘거나 이미 읽어서 흥미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예 클릭하지 말기를 권한다.
관심이 있는 사람만 나와 함께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도 들춰보고 관련된 역사적 사실도 기웃거려보며 쉬엄쉬엄 동행하자.
원래 「삼국지」는 서진((西晉)의 역사가 진수(233~297)가 쓴 고대 위‧오‧촉 삼국시대의 정사로서
후한이 기울기 시작하는 184년부터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하여 서진을 수립하는 280년까지 96년간의 사실(史實)을 담고 있다.
제갈공명은 지략이 뛰어나 천문을 훤히 내다봤고 동오는 물산이 풍부하여 능히 천하를 평정할 만했지만,
천지신명은 조조의 책사였던 사마중달의 손자 사마염(236~290)에게 삼국통일의 기회를 부여했다.
대부분의 중국 왕조가 그러했듯이 사마염이 세운 서진도 4대 52년 만에 명이 다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사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등 총 6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수는 위를 정통왕조로 보고 오와 촉은 변방 제후국으로 취급했는데, 진수가 살던 서진이 위를 계승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삼국지」로 알고 읽어온 책은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삼국지연의」 역시 후한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출발하는데,
진수의 「삼국지」에 나오는 정사 70%에 나관중(1330~1400)의 화려한 픽션 30%를 가미한 걸작이다.
나관중의 감성적인 픽션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동탁과 여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동탁을 죽음으로 내몬 초선이다.
초선이란 이름은 초선관(貂蟬冠)을 관리하는 시녀의 관직명 ‘초선’에서 힌트를 얻은 작명이다.
초선관이란 고대 중국에서 당상관이 쓰던 관모(官帽)의 이름이다.
그러니 초선을 합쳐 중국의 4대 미녀라는 뻥은 접고 실존인물인 서시 왕소군 양귀비만 넣어 ‘3대 미녀’라고 부르는 게 옳다.
전한은 유방이 장량의 지략과 소하의 조직력, 그리고 한신의 무예를 앞세워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나라다.
후한(25~220)은 전한(BC 206~AD 8)이 패망한 지 17년 만에 전한의 황족인 유수가 부흥시킨 나라다.
유방과 항우의 건곤일척을 다룬 「초한지」도 「삼국지」 못잖게 스케일이 웅대하고 지략과 권모술수가 얽혀 박진감이 넘친다.
「Digest 삼국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Digest 초한지」도 한번 엮어볼까 한다.
「초한지」에서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자 지혜로운 장량은 스스로 물러나 살아남았고,
소하와 한신은 새정치연합 국害의원 박지원처럼 끝까지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끔찍한 요참형(腰斬刑)을 당했다.
「초한지」의 장량과 「삼국지」의 제갈량, 두 지략가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날까?
장량은 중과부적인 가운데도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도록 했고,
제갈량은 평생을 두고 조조와 손권을 상대로 싸웠지만 끝내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장량이 우위에 있다는 얘기지만 정확하게 비교할 만한 지표는 없다.
그러나 나관중의 기막힌 픽션 「삼국지」를 읽은 독자라면 단연 제갈공명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로 인식한다.
오나라의 병력과 주유의 전술로 대승을 거둔 적벽대전도, 「삼국지」에서는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부른 주술 덕으로 그려놨다.
각설하고, 이러한 내력을 더듬으며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를 다시 줄인 「Digest 삼국지」를 함께 반추해보자.
「삼국지」와 전혀 관계없지만 언제, 어디선가 꼭 까발리기로 벼르고 있던 얘기 한 토막.
미국에서 10만 부도 안 팔려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Michael Sandal 교수의 「Justice」란 책이 있었다.
이걸 기획도서의 귀재들이 모인 김영사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하여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우리 독자들로부터 받은 인세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마이클 샌델은
입이 귀에 걸린 채 날아와 보은의 특강을 여는 등 김영사의 노이즈 마케팅에 기름을 부어 나라가 온통 ‘정의’로 떠들썩했다.
미국인들도 그제야 무슨 내용이기에 한국인들이 저 난리를 피우는가 싶어 새삼 「Justice」를 사 읽기 시작했다.
큰애가 읽고 넘겨준 책이라 읽어보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몰라도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크게 공감할 구석도 없었다.
어쨌거나 저네 학자가 쓴 책을 한국인들이 그 정도 읽어줬으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그야말로 ‘배은망덕도 유분수’였다.
미국의 일간지 <Wall Street Journal>은 한국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에 휩싸인 이유를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정의에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며 한국과 우리 독자들의 품격을 싸잡아 깎아내려버렸다.
크게 틀린 지적도 아닌 듯하여 욕은 못하겠고, C#@$&*8^&#@*놈*^&%#$들! (계속)
첫댓글 Digest 삼국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나는 나라 이름도 인명도 헷갈리거든요.
여유가 생기면
내 머리도 정리할 겸 내 블로그에 퍼갈 예정입니다.
물론 포스트 출처는 밝히고요.
이 기회에 삼국지 공부 해볼려네.
조오타!
이래서 성원이 친구하고는 종종 한 잔 술을 주거니받거니 할 수밖에 없다.
내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