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목의 한자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진영진(1937 - )의 이름은 간체로는 陈映真로 표기된다.
他者感覚은 일본식 한자 표기다.
일본인 아사이 모토후미(浅井基文, 1941 - )는 1960년대 초중반 대만에서 진영진과 접촉했다
그 당시 아사이는 공적으로는 외교관 신분이었다.
2011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의 아사이 모토후미
위 사진의 링크는 여기
아사이는 진영진과의 만남에 대해서 그의 블로그에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요컨대, 대만의 진영진 그룹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이념 서적을 아사이가 공급했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만남 자체보다는
아사이가 진영진의 인간됨을 묘사할 때 쓴 他者感覚이란 표현 때문이다.
아사이는 별도의 글에서 그 표현이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의 것임을 밝히고 있다.
아사이의 인용에 의하면, 마루야마의 타자감각이란,
"타자를 타자로서 이해하는 것"
"이게 가능한 근거는 본능,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지성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
"지성이란 타자를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것"
"타자를 어디까지나 타자로서 간주하면서도 타자를 그의 타재(他在)에서 이해하는 것"
"이질적인 타자를 내재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타자를 자기 정신의내부에 위치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정신의 내부에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등이다.
모더니스트 정치학자인 마루야마의 이러한 인식은
예컨대, 레비나스의 소위 절대적 타자성 개념에 비교하면
존재론적, 윤리학적으로 상당히 뒤쳐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수준에서 적당히 타협되고 봉합된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포지티브한 의미에서의 <국민윤리> 수준에서는
마루야마 정도의 인식이면 충분하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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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陳映真/陈映真을 "진영진"으로 표기하는 것은 비례성의 원칙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조선인 이름을 한국어/조선어 발음에 따라서 제대로 표기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 되기 전까지는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서 그들의 이름을 한자의 한국어/조선어 읽기 방식에 따라서 표기할 것이다.
2. 그나저나 진영진선생의 근황이 궁금하다.
중국어 위키피디아 의하면, 2006년 중풍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뒤 중환자실에 있다고 한다.
ㅆㅂ, 전두환, 이명박 같은 놈은 멀쩡히 살아서 골프, 테니스 치며 다니고 있는데...쩝
세상은 ㅈ같다.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게 바로 이 세상의 오래된 성격이다.
첫댓글 사진 올리는 것도 예전에는 일단 내 하드 드라이브에 다운로드 받았다가 다시 블로그에 업로드했다.
하지만, 요즘은 게을러져서 걍 사진의 소스를 HTML 상태에서 하이퍼링크해버린다.
그 소스가 없어지면 문제가 생길 테지만 귀차니즘 땜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HTML 상태에서 아래를 입력했다는 말이다.
위에서 링크해 둔 사진 소스의 인터넷 주소와 비교해 보시라.
<img src="http://img3.douban.com/view/group_topic/large/public/22377407-1.jpg" width="300">
9월 15일에 보니
위 링크가 잠시 깨졌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hmm...역시 귀찮더라도 이미지를 일단 다운로드했다가 업로드하라는 얘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