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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으로 보면 인간은 대우주의 흐름과 인류사의 흐름에서 작은 피동체에 불과하지만 자기의 삶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며 자기 행동의 결과물이다. 그것이 인간의 자존감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자존감(自尊感)이라 하는데 자존감과 자존심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게 되면, 당연히 자존감은 반대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자존심은 남게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자존심이 낮은 사람은 쉽게 당혹하고 부끄러워하고 설득에 잘 넘어가며 타인에 대한 승인 욕구가 강하고 자기 비하, 열등감 등을 갖기 쉽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인정해 주기보다는 내가 잘났다는 것을 남에게 평가 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 실제로 자존심이 너무 강한 사람은 그 자존심에 열등감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실상은 열등감인데 자존심이 강한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다.
자존감이 잘 형성된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다른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보인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모든 원인과 결과를 "나"로부터 찾아 남탓을 안하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남"에게서 찾는다고 한다
결국은 자신감 문제일 수 있는데, 자신감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고 , 마음의 생각을 실천으로 극복할 때 생기며, 그 결실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 줄 때 더 커지게 된다
남이 비웃을 때, 주눅들면 자존감도 자존심도 낮은 것이다.
남이 비웃을 때, 열폭하면 자존감은 낮은 것이고 자존심은 센 것이다.
남이 비웃을 때, 정연하게 대처하면 자존감도 자존심도 높은 것이다.
남이 비웃을 때, 나를 비웃는 남이 측은하게 보이며, 그 말을 일부 수긍할 수 있으면 자존감이 상당히 높으며 자존심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자존감(self-esteem)이 매우 높으면 그때부터는 자존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자존감이 자존심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한지에 보면 한신은 자신을 비웃는 길거리 건달들 가랑이 사이로 기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한신은 대장군이 되고나서 자신을 비웃는 건달들을 불러 혼을 내주거나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조그만 상을 내려 보상했다고 하니, 한신은 자존감이 매우 높았던 사람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반면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심이라도 높아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방어적 본능이 있다.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의 맹점을 누가 정확히 찔러 지적하면 누구라도 화가 몹시 나고야 만다. 이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마찮가지이다. 단지 그 감정에 대한 대처방법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존감은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내가 얼마나 기획하고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신뢰도이다.
나는 언제든 싸워 이길 수 있고 나는 언제든 성공할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한신과 같은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아무리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라도 낮은 관리에게 갑자기 높은 직위를 주면 허둥대면서 자신의 단점이 드러나고 마는데 한신은 그런 면이 없었다.
장량이 말단 관료였던 한신을 모처로 불러 대장군의 인을 주자, 한신은 그게 본래 자기 것인냥 자연스럽게 받아서 군대를 지휘했다. 자존감이 높지 않고서는 보일 수없는 태도이다.
한신 못지 않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젊은 시절 무과 과거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부러진 다리를 싸메고 다시 말에 올라타 과거시험을 끝까지 마친 일화가 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무관이 말에서 떨어지면 주변 군인들로부터 엄청나게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말에서 떨어지는 건 군인이 보일 수 있는 최악의 몰골로 여겨졌던 것이며 당시 조선군이 얼마나 승마에 능숙했는지 알 수 있으며 군인이 말에서 떨어지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조롱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원균같은 엘리트 장군들을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남들이 자신을 저평가 할 때나 주위사람들과 적들이 우러러 보고 추앙할 때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 역시 자존감이 몹시 높은 사람이 보여주는 태도이다.
늘 거울을 보며 자기 외모에 감탄하고, 항상 100점을 맞아야만 직성이 풀리며, 약속을 칼같이 지키고, 남들로부터 잘나고 능력있다고 평가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모습은 자존감과 무관한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가장 높은 사람은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독일의 참모진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군을 통수했는데,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100만 명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는데 이건 모두 히틀러가 독일 장군들의 충고를 깡그리 무시해서 나온 결과이다. 그런데도 히틀러는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서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 장군 역시 군산에 상륙하라는 미국 참모진의 설득을 무시하고 인천에 상륙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맥아더는 어린시절부터 순혈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군인이다. 미국 최연소 육사교장과 최연소 참모총장을 줄줄이 달았으며,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언변이 뛰어나며, 매력이 넘치고, 지지자와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히틀러나 맥아더는 자존심이 자존감보다 더 센 인물로 분류하고 싶다. 오히려 이들보다 자존감이 가장 탁월한 사람은 강태공이라고 본다. 강태공은 80세까지 여관지기나 마름, 무직, 낚시꾼 등을 전전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한 부인이 가출하고 말았다.
강태공이 부인이 가출한 사실을 알고서 '허허!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떠나는가?'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실업급여도 없던 시대에 80세까지 놀고 먹은건 다 깊은 뜻이 있다는 말인데, 만일 훗날 그의 성공이 아니였다면 이 말은 실없는 '미친놈'의 푸념으로 여겨지기 딱 좋다.
강태공의 언행을 보면 자존감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말은 신중하지만 깊은 이면엔 언제든 나는 맘만 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육도삼략이라는 책을 보면 강태공은 물어보는 즉시 줄줄줄 답변을 하는데, 약간의 후대의 가필이나 과장이 있었다고 해도, 짧고 명료하게 사물의 본질을 판단하는 것 역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태도에서 흔히 보여지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일히일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 그런 믿음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신이 믿을 만하다는 근거가 축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그대로 스스로가 행동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생활에서 앞서 언급한 형태의 자존감이 쌓인 것이다.
자존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이들의 실수 중에 하나는 자기 자식을 기죽이지 싫어 아이에게 야단치거나 꾸지람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일정 이상까지는 자존감이 높아지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수준의 높은 자존감은 이런 방법으로 길러질 수 없다. 왜냐면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자존감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나의 의지로 바꿀수 있다는 믿음이 정확한 의미의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어릴 적에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 일지라도 성인이 되어갈 수록, 자기 자신의 생각과 달리 자신은 잘나지도 않고, 위대하지도 않으며, 모든 일을 다 해내는 슈퍼맨이 아니라는 아픈 현실에 직면하고 만다.
맥아더 장군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만큼은 대적할 사람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간주하는 정도는 병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서 한국전쟁 당시에 자기 상급자인 미국대통령에게도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인 트루먼이 자신이 사단장이던 시절 맥아더의 수하에 있었다는 이유였지만, 그외에 그를 알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맥아더는 자기를 거의 신과 동급으로 생각했다고 전한다.
그런 이유로 맥아더는 한국전에서 승전 중일 때, 중공군이 참전할 것이라는 미국 첩보부의 보고를 완전히 무시했는데, 한마디로 자기 편할대로 세상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런 모습은 자존심이 높은 것이지 자존감이 아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할 때 이순신 장군은 신중하게 적을 이길 전략을 구상한 뒤에 이같은 언급을 했을 것이다. 허나 '나는 무적 이순신이니까 당연히 나는 이기겠지!' 라는 식으로 자기 영웅화 때문에 이같은 고집을 부렸다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덜 존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높은 자존감의 태도가 아니다.
자존심으로 가득한 장군들은 내용이 없고 이순신 장군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승리를 준비했고, 이기는 가운데서도 패전을 대비했다. 백전백승의 가도를 달릴 때 부산진으로 진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에도 부산진 공격을 자꾸 늦추며 이를 거부했는데, 이것은 이순신이 왜군과 조선군의 능력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며, 백전백승을 거두어도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결국 이순신은 이걸 빌미로 반대파의 비난을 받아 백의종군이라는 고난에 처하게 되어도 그는 늘 한결같은 방식으로 그런 명과 암을 이겨내었고, 사후에는 위인전 전집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의 해군교과서에도 이름 석자를 남기고 있다..
진정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역경이나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도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즉 자존감은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단정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데서 얻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한번만 웃어주면 모든 여자들이 뻑 가!' 와 같은 태도는 자존감하고는 무관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희망사항과 현실의 암울하고 참담한 절망이 전혀 다르게 다가올지라도,,, 우기거나, 자기의 믿음에 몰입하거나, 남의 탓이라는 변명으로 도피하거나 하지 않는다.
당연히 지나친 자책도 없다. 실패했을 때 과도하게 자책하거나 거꾸로 전혀 내 탓이 아니고 남 탓이라 면피하는 두 극단적 태도는 모두 잘못된 자기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가 몸이 너무 비대하거나 또는 몸이 너무 깡마른 사람을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를 너무 과신하거나 혹은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사람 역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보지 않는다. 높고 올바른 자존감은 바로 정신적 건강을 바탕으로 평소 생활에서 축적된 자기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그러면 나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거울을 보면서 " 넌할 수 있어!!" 라고 외치거나 "넌 잘생겼어! 넌 예뻐!" 라고 사실(?)과 전혀 다른 희망을 주입한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결코 아니다.
자존감은 자기를 존경하는게 아니라 자기를 존중하는 것인데 그것은 장점은 물론 단점마저 수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소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습관이 필요하다. 내가 가령 1시까지 과제를 다 마치겠어! 라고 약속했는데 무한도전을 보느라 시간가는 줄 몰라 과제에 손도 못했다면, 자기 자신은 몰라도, 자신의 무의식에는 나에 대한 불신이 생기게 된다. 이런게 쌓이면 자기 자신을 자신이 스스로 믿지 못하게 되며, 결국 남의 말에 의존하게 되고, 남의 평가에 휘둘리게 된다.
유명한 성공학 서적인 '마쉬멜로'에 언급된 것처럼 무한도전을 보는 것은 과제를 마무리 한 뒤로 미룬 다음 편한 마음으로 무한도전 재방송을 시청하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아~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구나'라고 신뢰가 쌓이게 된다.
강태공에 필적할 만큼 자존감이 높으신 분이 강감찬 장군이다. 그의 언행을 보면 미리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고 다음 단계를 대비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려의 주력부대가 적(금나라)에게 괴멸당하자 고려 조정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때 현종에게 나아가 차분하게 겉으로는 화친하고 내부적으로는 전쟁을 준비하자는 대안을 내어놓는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차분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에 자기와 남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훈련이 되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전쟁에 이길 때나 전쟁에서 질 때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강감찬 장군은 후일 적을 크게 물리치고 고려를 지켜낸 공으로 잔치를 나라에서 열어주는데, 이날 밥을 먹으려고 뚜껑을 열어보니 빈 그릇이었다. 이에 장군은 차분하게 시중드는 사람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불러, 밥을 다시 내어오게 한 일화가 유명하다. 만일 강감찬 장군이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면, 시중드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내어 남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화를 냈을 것이고, 시중든 사람은 벌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강감찬 장군이 승리하던 시절엔 '갑질'이 없었다.
자존감을 높이는 습관은 사소한 자기와의 약속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자신의 장점은 물론 단점도 관용하고 인정하라. 셋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관찰하며,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대별하는 습관을 같는 것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큰 문제를 문제 삼기보다는 사소한 언행, 제스쳐, 실수 등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며, 특히나 자신이 믿는 자신의 모습과 남들이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과의 차이를 문제삼는다. 나는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내 생각과 달리 남들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불일치는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 라기 보다는 분명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지 않아서 일어난다.
따라서 평소에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면, 이런 불일치를 조정할 능력을 잃게되고, 나의 자존감과 자존심 사이엔 괴리만 커질 뿐이다. 이를 통해 자존감은 단순히 나를 사랑하거나 나를 존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반영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배울 수 있다.
반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여러가지 모순이 있고 갈등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내면의 모순과 갈등을 잘 직관하고 조정할 수 있으면 세상의 모순과 갈등도 잘 해결할 수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가 속한 모임이 안정되고 갈등도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잘생기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평소 그 또는 그녀가 자기 내면의 불합리한 면을 잘 다독여 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남들과의 관계도 평화롭고 조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존중하면 남도 나를 자연스럽게 존중하게 된다. 이는 명품이나 좋은 차를 타는 것과도 역시나 무관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금방 되지 않고 쉽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