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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차 백두대간 산행
2013.09.15 : 무박
거리: 18.5km
시간:11시간
"떠날 때가 되어도 어디로 가야할 줄을 모르는게 인간이다. 그래도 그나마 산길을 걸을 줄 아는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길 속에 지혜가 있으니."
하늘재에서 이화령에 이르는 길은 대표적인 난코스에 속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길이 험한 만큼 거친 산이 주는 다이나믹한 역동성은 다른 어느산보다도 매력적이기에 산꾼들에게 계절을 떠나 지극한 사랑을 받고있다.
한밤ㅈ중에 동네 운동장을 돌듯 반을 날려버린 무박산행의 아쉬움은 남지만 산이 있고 산길에대한 열정이 있는 한 언젠가 새벽 어둠에 묻고 온 그 길을 다시 찾게될것이다.
02:33
하늘재에서
백두대간을 지나는 수많은 고개 중에서도 이땅의 역사에 기술된 가장 오래된 고개는 단연 하늘재다.
하늘재 이전에도 사람이 넘나드는 고개가 동네마다 왜 없었겠느냐만은 하늘재는 우리 역사에 기록된 인간의 손에의해 조성된 최초의 고개이다.
하늘재,고작 해발고도 525m를 두고 고개가 하늘에 닿을 만큼 높다는 허풍을 피울 필요까지는 없다.
하늘재라는 우리식 이름을 붙이고 따라부르면 그만이지만 하늘재라 이름 붙이는 순간부터 하늘재의 역사적 정체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재는 산경표에 鷄立嶺이라 표기되어있는데 이것은 인근 포암산의 원명이 계립산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닭이 서있는 형상의 산이란 뜻인데 포암산을 어디서 바라보면 닭이 서있는 모습이 될지 다음번 산행 때 꼭 한번 확인해보아야겠다.
잘 알다시피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동남쪽 코너에 몰린 신라는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서는 중원의 장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삼국이 중원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리던 중 신라8대 아달라왕은 문경과 충주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지금의 하늘재를 주목하고 여기에 고갯길을 만들었다.
(충주는 남한강을 통해 한강으로 신속히 나아갈 수 있는 뱃길을 확보할 수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서기 156년의 일이니 1857년이나 묵은 오래된 고개이다.
신라 진흥왕은 이길을 통해 마침내 중원을 정벌하고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워 신라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아쉽게도 이길은 신라 패망의 비사가 서려있는 길이기도 하다.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장자 마의태자 김일은 이 길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금강산으로 들어간 태자 김일의 뒷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어느것 하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것은 없다.
02:41
백두대간 하늘재를 경계로 상주시 관음리와 충주시 미륵리로 나뉘게되는데 여기에도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려있다.
누이인 덕주광주와 함께 마의를 걸치고 금강산으로 가던 태자는 하늘재 아래에서 일박을 하다 꿈을 꾸게된다.
꿈에 하늘재 넘어 북두칠성 마주보이는 영봉 아래에 큰절을 짓고 마애불을 모시면 억조창생 자비를 베풀고 살수있다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 너머에 미륵사를 짓고 8년을 살았는데 지금도 그곳에는 미륵사지 터가 남아있고 그곳 지명은 미륵리라 불리운다.
한편 함께 갔던 덕주 공주는 마의태자와 함께 가지 않고 상주 땅에 덕주사를 짓고 살았는데 그런 연유로 이곳 지명은 관음리가 되었다.
02:54
20여분 만에 모래산에 도착하였다. 연 이틀동안 큰비가 내린 탓에 길은 쓸려나가고 주위에서 물흐르는 소리까지 들렸다.
하지만 표토가 물빠짐이 좋은 화강토야서 인지 한결 걷기 쉬웠다. 발아래를 살펴보니 온통 마사토를 쌓아놓은듯한 산이었다. 한산한 밤경치를 뒤로 새벽길을 재빨리 빠져나간다.
03:39
한시간여 비탈길을 올라 탄항산에 도착하였다. 탄항산은 산경표에 戍項山(수항산)으로 표기되어있다.
앞서 말한 바대로 이곳은 삼국의 대립이 극심했던 신라의 국경지대다. 그래서 길목을 지키는 산이라 하여 수항산으로 (戍:지킬 수,項 목덜미 항)불리웠는데 이 戍자가 숫자로 된소리화 하면서 숫항산으로 불리었을 것이고 어느 띨띨한 공무원이 이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난데없이 炭項山이란 기막힌 誤記로 이어졌을것이다. 무지가 남긴 대표적 지명이다.
탄항산 아니 수항산 정상에서
수항산은 월항삼봉으로 불릴만큼 먼 데서 보면 빼어난 산세를 자랑한다는데 아쉽게도 이시각 주위는 암흑천지다.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훗날을 기약해야겠다. 월항삼봉의 월항은 산아래 월항리에서 기인했다.
04:07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에 이르는 고개. 어둠을 뚫고 걷는 막연한 길이다.
어두움을 차례로 열고
새벽처럼 몰려온다
어디서 왔을까? 어둠을 지고 불어도 시들지 않는 바람은.
05:04
부봉 삼거리에 닿았다. 일행 몇몇은 모여 허기를 달래고 있었고 몇몇은 부봉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이 어두운 밤 부봉에 오르면 설익은 밥을 먹듯 어둠에 잠긴 미역같은 풍경을 보게 될까?
농익은 어두움일까? 설익은 새벽일까?
참고로 지난해 겨울 예비 답사 때 찍어 둔 부봉 주변의 경치를 눈요기 삼아 몇장 올립니다
부봉에서
조령산에서 바라본 부봉쪽 풍경
주흘산 5봉에서 바라본 육봉의풍경
부봉에서 바라 본 월악산 쪽 풍경
좌:만수봉, 우:포암산
주흘산 5봉 너머 주흘산 주능선이 보인다
부봉 정상석
부봉에서 바라 본 깃대봉
깃대봉과 오늘 가야할 대간길
부봉에서 바라본 조령산
6봉에서 바라 본 3.4.5봉
05:27
동암문(東暗門)
暗門은 이름 그대로 숨겨진 비상통로이다 북암문과 동암문이 남아있다. 그야말로 개구멍 수준이다. 비상시 탈출구나 연락병들이나 드나들었음직한 규모다.
동암문은 대간길의 중요한 갈림길로 앞서 말한 미륵사지,평천재,동화원등으로 탈출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마침내 새벽이 찾아왔다. 오래된 성터가 곰삭은 김치처럼 드러났다.
잘 삭은 김치가 맛이있는것처럼 역사도 고통을 안고 삭아야 제 맛이다. 삭는다는것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는 일.
고집을 부리며 울던 아이가 마침내 울먹임을 끝으로 어미의 품에 다시 안기듯 고통을 한소끔 우려내고 나면 평화에 기대듯 바다와 같은 위로의 시간이 돌아온다.
잘 삭은 술과 같은 희망에 기대어 길을 간다.
길도 취하나 보다. 오늘은 나도 새벽 바람에 취한다. 그만큼 오늘따라 새벽 기운이 달다.
북암문인지 표지 없는 암문이 하나 또 나타났다.
006:28
야간 산행을 하다보면 마치 슈퍼에서 건네주는 검은 비닐 봉다리에 담겨 달랑 달랑 길을 걷는듯한 느낌이 든다.
이 한밤 길을 걸어가는 검은 봉다리의 인생. 내가 걷는것이 아니라 들것에 담겨 옮겨지는듯한 수동적인 기분. 오늘도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왠 일인지 여느 때면 으레 나를 괴롭히던 등산 초반의 괴로움만은 훨씬 덜했다. 간혹 불어주던 달콤한 새벽 바람 덕이었나보다.
하늘이 내려 앉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모든 구름들은 숲 끝에 앉아 수런거린다.
가늠할 수 없이 허무가 커져갔다. 신새벽의 공동 속에 걸음은 수수롭기만 하다.
구름 속에 나를 버리어 두자 고립의 밀도는 세상과 반대로 더 강해졌다.
마치 내가 그 길을 선택해 들어선듯 더 큰 쓸쓸함이 느껴졌다.
묘사는 상상을 넘어설 수 없다.
통과의례와 같은 긴 계단을 올라선다. 그렇다고 길이 끝난것도 아니다. 나는 정거장을 지나치듯 다만 하나의 지점을 지났을 뿐이다.
07:00
마패봉 혹은 마역봉
암행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나무에 걸어두고 쉬었다하여 마패봉이라고 한다는데 아무리 암행을 일삼는 어사또지만 멀쩡한 새재길을 옆에 두고 이 험한 산을 넘나들었을까하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 귀중한 마패를 나무에 걸어두고 쉬었다가는 마패를 잃어버리기 십상일터인데 박문수의 허세가 옅보이는 대목이다.
아무것도 조망 할 수 없는 철벽처럼 막힌 산정에서 별일을 다 생각한다. 아마 산아래 말을 갈아타는 마역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 마역봉이 정식 이름이지 싶다.
누군가가 소박하고 정직한 삶을 갈망한다면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그의 이상을 증명해야한다.
이상을 붙잡는 가장 질긴 끈은 타성이다. 그 타성을 가위처럼 싹뚝 자르는 일이야말로 육체의 몫이다.
마패봉에서 조령삼관문 즉 조령관으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심한 비탈길이다. 역으로 오른다면 땀깨나 흘려야 할것 같다. 7시까지 조령관으로 내려가 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벌써 시간이 삼십분이나 지체되었다. 사진 몇장 찍고 구름 뒤의 풍경을 상상하며 산길을 서둘러 내려갔다.
살아있다는것은 내게 다음 기회가 또 있다는 의미로 이것이야 말로 로또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최선의 장소는 아닐것이므로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땅 속에 기대어 살다 문득 세상에 나온 매미처럼 내가 산에 오른것도 선택이다.
나는 삶이 내게 준 기회를 십분 활용하였다. 늘 다음에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다음번이라고 해서 기회가 크게 달라지는 법은 거의 없다. 선택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은 늘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사람이다.
07:36.
마침내 조령관
이전에 휴양림 쪽에서 신선봉 쪽으로 올라와 마패봉을 거쳐 이곳까지 온 경험이 있다. 그 때 주변 산세에 눌려 탄성만 질렀던 그 곳인데 오늘은 탄성을 자아 낼 풍경도 감흥도 없이 그냥 텅빈 잔디밭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행들은 대부분 떠나가고 후미 몇몇이 아침을 들고있다. 입은 영 까슬거리기만 하고 밥맛은 멀찌기 달아나버렸다. 하지만 앞으로 걸어야할 어마어마한 암릉구간을 생각해 억지로 빵을 삼킨다. 고역이다. 조령샘에서 물을 보충하고 길을 떠났다.
문경 새재
聞慶 의 뜻은 경사스러운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경상도 소리를 듣는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즉 새재를 넘으면 비로소 경상도 사투리가 들렸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표를 많이 낸 위인으로 기록된 퇴계 이황은 문경 새재를 넘어 안동으로 넘나들었다. 문경 새재 거리에서 들었을 왁자하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조차 그에게는 그리움이요 희망의 대상이었을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경상도 사투리는 참 유니크했던 모양이다.
07:56
산대장님이 산행에 앞서 산신님께 오늘의 안전산행을 위해 기도하신다.
깃대봉에 오를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하였지만 불과 얼마되지 않는 거리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끝까지 버티는 상철씨를 두고 가자니 약간 마음이 불편했으나 지난번 부봉에서 바라보던 그 신비한 모습을 외면할 수 없어 깃대봉에 오르기로 했다.
주변 잡목들이 가려 시원한 주변산의 스팩트럼은 볼 수 없었지만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듯한 말간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들은 분칠 투성이의 거대한 칠판같았다.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을것 같은.
깃대봉 뒤로 신선봉 쪽 풍경
08:28
주흘산과 조령산이 멋지게 오브랩되는 암릉에서
산을 걷는것은 지혜를 구하는 일
산길을 서둘러 걷는것은 여유자적하게 걷는것 만큼 일종의 개성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할것은 자신의 생체 리듬을 잊은 채 앞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부화뇌동하여 걷는것이다.
산에 와서 조차 사람들은 왜 쫒겨야할까. 우리가 죽순이나 떡갈나무의 성장 속도에 맞출 필요가 없듯 타인의 GPS에 걸음을 맡겨야할 하등 이유가 없다.
마패봉이 보이고 그 너머 주흘산의 주능선이 보인다.
욕망이 뭉게구름처럼 힘차게 부푸는 순간을 조심하라.
세상의 모든 산은 지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아름답다.
본격적인 로프구간이 시작되었다. 비에 젖어 더러워진 로프줄에 생명을 의탁해 암벽을 기어오른다. 위태해 보이지만 짧은 구간들이 연이어 진것이어서 실재로는 그리 어렵거나 무서운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인 두발의 왕복작용이 아니라 지혜를 동원하여 신체 발란스를 맞추어야하는 다이나믹하고 스릴있는 산행이다.
풍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무리 닦아도 광나지 않는자동차 유리처럼.
풍경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못하고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하다.
산길을 걷는다는것은 자유로와지기 위해서이다.
가장 극단적인 구속의 방편을 택해 자유를 얻는다는것은 구속을 통해 감각이 주는 허상의 뿌리들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구속을 빌어 자유를 얻게되는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자유란 생각,편견,망상으로부터의 자유다.
나는 산행을 통해 자유 즉 평정심을 얻고자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바로 보인다.
가을이다. 구절초의 밀도가 높아졌다. 세상은 연민으로 가득하고 꽃을 뽑아 나를 두기에 적당하다.
그래,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 매여있다. 매여있기에 끙끙데고 매여있기에 자유로와 지고 싶다.
그 꽁꽁매인 나를 버리고 가고 싶은 어느 구월의 길섶. 군데 군데 버려진 나를 보고 싶다.
또 버려진 나
남들은 한번을 타기 힘든 대간길을 몇번이고 연이어 타는 분들이 있다. 나는 한결같은 그분들의 품성에 경의를 표한다.
한결같다는 말 만큼 그 사람의 인품에 무게감을 주는 언어가 있을까. 날이 아무리 더워도 가을은 오기 마련이고 과실은 또 익기 마련이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함께 변화해가는 그러면서도 늘 자연의 배경이 되어있는 그런 한결같은 마음이 내게도 다가왔으면...
암벽을 타고 넘다 문득 발견한 길.
暗門같은 이길을 통해 누군가는 산길을 걸었을것이다. 자연이 만든 참 감각적인 길이다. 하지만 이 길로 가면 안된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 새로워진 나를 찾기위해 산을 오른다. 산을 넘어야 비로소 불혹의 세계가 다가온다.
불혹이란 의심이 없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의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철학의 역사가 곧 의심의 역사이듯 산 또한 하나의 거대한 의심이며 질문이다.
그 질문에 비록 미완성인것이지만 적어도 내 나름의 답을 내놓는것이야말로 걸음을 사랑하는 자의 의무요 지혜가 아닐까.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변화되고 싶다. 산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즐거움이 있다면 이처럼 세상을 열어가는 지혜를 얻었다는것이다.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비로소 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고하고 판단하는 삶의 지표들이 과연 옳은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의 진중한 무게를 깨닫는 너무 늦어버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잘못 살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대간길을 나서며 나는 사진기를 새로 구입하였다.
이미 내 산행 동반자가 된 DSLR 캐논 MARK II는 너무 무거워 길고 거친 대간 산행에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가끔 대간 산행에 그 무거운 DSLR사진기를 들고 오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 나도 진부령 구간에 한번 DSLR사진기를 들고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산 미러리스 카메라는 현란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잔병치레를 너무 많이 하는 단점이 있다. 걸핏하면 이상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전에 한대 툭 때리면 다시 켜지는 라디오나 텔레비젼처럼 그러다가 또 깜쪽같이 기능이 회복된다.
산행 중에 이런 일을 만나면 그렇지 않아도 노안에 시달리는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카메라만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쩔쩔매게된다.
이번 산행에도 또 이런 일이 생겼다. 쩔쩔매고 있는 나를 동료들이 불러 황급히 조작을 멈춘 채 달려갔다.
한참 가다보니 어떻게 또 사진이 찍힌다. 환장할 노릇이다.
09:44
양코쟁이 콧날같은 봉우리 뒤로 조용히 조령산이 나타난다.
백화산과 대야산 쪽 대간길 풍경
10:05
산행 중에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이를 때는 정말 내가 깊이있는 삶을 살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 구석 구석 온갖 고통의 통감들을 덜쑤셔 최악의 상황에서 조차 늠름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각을 깨우친다.
비록 타인들이 지금의 내 행동을 폄하할지라도 절대 개의치 않고 내가 선택한 길이 확실히 옳은 길이란 사실을 주저없이 확신하게된다.
10:11
롤러코스터를 타듯 수직 하강하여 다시 수직으로 오르는 구간. 로프 타기의 백미를 이루는 구간이다.
먼저 바위를 지난 일행이 여유를 부리며 길을 안내한다. 소나무와 바위가 산악인의 우정처럼 어울린다. 산양처럼 바위를 딛고 용케 위험구간을 벗어난다. 톡 쏘는 콜라같은 시원한 바람조차 오늘은 일품이다.
산은 도서관과 같다.
사진을 찍는다는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물이 가지는 의미를 축소시키거나 한정해버릴 위험성이있다.
그러므로 좋은 사진들은 사물이 지닌 이미지를 한정시키는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 더불어 이미지를 확산 시킨다.
그래서 나는 사진에 여백을 남기기를 좋아한다. 주제가 되는 사물을 방해하는 주변의 풍경들은 되도록이면 지워버린다. 그래야만 배경과 사물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928봉에서 신선암봉에 이르는 암릉구간이야말로 이번 산행의 가작 하이라이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구름 낀 날씨이기에 망정이지 하늘마저 맑았더라면 어찌 이 아까운 풍경을 두고 몸만 빠져나갈 수 있었겠나!
산을 타는 마음이 이처럼 즐겁기는 근자에 더문일이려니와 덕분에 거머리처럼 붙은 고통마저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
신선들의 거처가 일일 개방된듯 탐방자들의 마음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가을을 알리는 억새의 손짓이 시작되고 길은 벌써 가을꽃 천지.
대간에서 맞는 첫 가을이다.
얼마나 눈부신 가을의 산들이 우리를 기다릴까. 날을 받아 둔 신랑처럼 마음이 설렌다.
고졸한 문인화 한폭을 대하는듯한 풍경이다. 주석이 필요없는 오직 느낌으로만 접근 할 수있는 승화된 한폭의 예술.
신선이 되어 바위에 앉은 벗들
그림에 나오는 신선들의 모습은 다 인간의 모습이다. 똥누고 밥먹는 인간의 모습.
하지만 그들의 앉은 자리는 범속의 자리가 아니라 범속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 산 중이다. 이슬만 먹고 산듯한 모습.
신선과 인간의 차이는 이슬과 밥의 차이가 아니라 얼마나 큰 자유를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생사를 초월한 자유. 번뇌 망상으로부터의 자유.
주변의 풍경이 이러하기에 신선의 모습이 이들에게서도 보인다.
산행을 하면 할 수록 죽음에대한 두려움이 확실히 희석되어감을 안다.
카프카의 말처럼 삶을 완전히 이해하게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되는것일까. 죽음에대한 공포는 충족되지 않은 삶의 결과라는 말에 으렴풋이 동의한다.
삶의 햇살은 점차 옅어지고 죽음이 가을처럼 문득 다가온 요즘 산을 통해 내 생이 경박하지 않음을 감사드린다.
까치고들빼기 군락
까치고들빼기
사랑을 하세요 사랑은 좋은거랍니다. 삶이 풍푸해지고 깊어지고 살만한것이되죠.
사랑은 돈처럼 완전무결한것.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에따라 지옥이되죠.
하지만 돈 많은 부자가 돈을 뿌릴 때의 허세처럼 넘치는 사랑을 허세라 탓하지는 않는답니다.
11:09
928봉에서 한시간 동안 마치 큰 파도를 헤쳐 나오듯 암능을 건너왔다.
암능이 다 끝난것은 아니지만 큰 시험의 단계를 끝낸듯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어울려 가벼운 요기를 했다.
가을다운 바람이 불었다. 겉은 없고 속만 남은 투명한 물고기가 된 나는 하염없이 맑은 공기 속을 유영하였다.
조령산 가는 길에 만난 작은 슬랩을 기분좋게 즐기는 일행들
산행을 하며 늘 따라 다니는 의문 하나는 진실이라는거다.
삶의 밑바탕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일종의 공식과 같은 진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진실을 만난적도없고 진실이라고 말하는 바를 들은적도 없다.
그러나 진실은 늘 회자된다. 과연 진실이라는것은 무엇일까. 있기는 한것일까.
삶에 궁극적 목표가 있는것이 아니듯 진실은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 의미가 담겨있는것은 아닐까?
껍질을 벗으며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어 내는 레몬 유카리처럼 끊임없이 진실에 접근하려하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진지함을 부여하는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
628봉에서 신선암봉 거쳐오며 어지간히 밧줄타기에 이골이 나서인지 조령산 가는 길에 걸린 로프줄이야 고양이들이 가지고 노는 생쥐 장난감처럼 심심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심심한 줄을 붙잡고 노는(?) 풍경만큼은 퍽 여유가 있어보인다.
내가 걸어간 거리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고통이 거짓의 돌을 깨는 아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볼품없는 몸짓,한 걸음 걸음이 영원히 그대에게로 나아가는 사랑의 몸짓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조령산이 가까와 질 수록 지나치며 수인사를 나누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등산객들이 불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별이별 등산객들이 다 모인것 같았다. 조금 늦어 로프구간에서 이 많은 등산객들을 만났다면 엄청난 지체를 해야할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령산 못미처 전망바위봉을 오르는길에 엄청난 인파의 꼬리가 멀리서도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산행 대장인듯한 분이 한사람 한사람 사려 깊게 하산을 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인파에 비해 도저히 진도가 나지않았고 적체가 해소될 기미는 없었다.
부득이 우리는 암벽을 타고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방심하다 뒷통수를 맞은듯한 아찔한 순간이다. 코스가 위험해서라기보다 지체가 오래되면 앞 사람들과의 시간 차이가 너무 나버릴것같아 생긴 일종의 낭패감이었다.
조령산 전망대에 오르는 길은 마치 클라이막스란 이런것이란듯 힘들었다. 정체도 정체였지만 깍아지른듯한 엄청난 급경사가 걸음 자체를 힘들게했다. 로프에서 로프로 이어지는 공간도 부자유스러웠고 발 디딜 장소 또한 마땅찮았다.
조령산에서 내려 올 때의 기억만 뇌리에 남아있었던지라 오를 때의 수고로움을 미쳐 계산하지 못한 탓이다.
전망대에 오르자 마치 곤충이 탈피를 한듯 심신이 개운했다. 진실로 해방감을 맛보았다.
12:31
조령산을 기점으로 이화령 가는 길은 육산이다. 하나의 산을 두고 이렇게 성질이 확연히 달라지는 산은 흔치 않다. 오늘 산행의 대미를 작성한 조령산. 또 하나의 과업을 이루었다는 빛나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부드럽게 산을 내려간다. 고통이 없으니 생각이 없다.
팔리지 않는 책을 쓰듯 읽히지 않는 시를 쓰듯 그냥 길을 걷는다.
이 길이 끝나더라도 또 길을 걸을것이다. 그 때는 또다시 고통을 찾아가는 길이될것이다.
산중의 문답은 다 자신의 것이다. 삶은 이 답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답이 없다고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남기지 못한 답은 후세를 향한 물음이 될터이니까.
12:55
조령샘
대간길에 만나는 참 기특한 샘이다. 물맛은 모르겠고 갈증을 뚫어주는 청량감이 좋다.
눈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와 물봉선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화사한 노랑과 수줍은 분홍이 봄철의 개나리, 진달래처럼 따사하다. 지친 하루를 위안하는 꽃길. 아무리 바빠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수 없다. 꽃길은 머리 위의 달처럼 종종걸음으로 따라온다. 계절은 이렇게 서로 사무치듯 무르익을 모양이다.
가을 향기를 맡으며
햇향기를 맡으며....
길을 마치면서
창문이 열린듯 어디선가 청하지 않은 바람이 불었다.
깨진 안경처럼 짙은 초록의 나무가지 사이로 정밀하게 정화된 선형의 빛들이 반짝거렸다. 늙어가는 여자의 주름처럼 햇살이 불편했다.
멀리 새로울것 없는 마을이 보이고 오늘 하루를 지탱한 고통과는 반비례로 마음은 겨우 생색으로 붙여주는 이자처럼 쪼그라 들었다.
하늘에는 장판에 낀 얼룩 곰팡이처럼 구름이 눌러 붙어있다. 버릴것을 버리지 못한 답답함이 오장을 눌렀다. 문득 세상이 나와 역주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여전히 골목이나 혹은 침대에 숨어 누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을 삭이고 싶은지도 모른다.
길은 희미했고 나는 걷기 위해 걸었다.
세상 모든 일에 의미가 존재할 필요는 없듯 무작정이란 이럴 때 쓰기좋은 말이다.
나는 무작정 걸었고 그래서 마침내 마음의 어귀에 걸린 슬픔을 보았다. 그것은 회한이 없는 슬픔이었고 구김살 없는 맑은 마음 조각이었다.
너들겅 아래로 새로울것없는 마을이 보이고
날머리마다 나타나는 오미자 넝쿨
13:34
마침내 이화령
梨花嶺의 유래를 알아보러 돌아다니다가 뜻밖에 대동여지도에는 이화령이 伊火峴으로 표기되어있음을 알았다. 배꽃 눈부시게 피어나 이화령이라는 생각은 애초 한낱 환상이었다. 梨花嶺의 이름 석자에 괜스레 술기운이 느껴졌다.
이화령 고개 위에 떨어진 비가 서쪽으로 흐르면 남한강 물이되고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물이된다는 백두대간의 중심.
산님들 다져놓은 무딘 대간길을 따라 이빨 나간 막사발에 입술을 더하듯 내 발자국 하나를 더해 대간길에 더 했다.
- 펌 -
주위에 伊火川,이화남령이라는 지명도 보이네요.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다. 새재의 새는 우리말 어원에 풀이라는 뜻이있다는군요.억새,속새의 예에서 보듯이.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아득한 고개란 뜻으로 (伊火재) 이블재->이부릿재->이우릿재로 변한것이 아닐까 하는 說도 있네요. 어쩐지.
13:36
13:37
- 후 기-
미학이 사라진다고 하여 아름다움이 없어지는것도 아니다.
삶을 해석할 진리를 찾지못했다고 하여 삶이 사라지는것도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본래의 것을 찾아가는 것이 지혜다. 지혜를 찾았을까?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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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두대간 전구간중 제일 멋있고 조망좋고 힘든코스가 많았던그구간 아직도 오랜추억으로 간직 됩니다 12기 님들께서 해 내셨네요 폴님 안녕하신지요 뵌지도 제법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버스 제일 앞좌석에 계셔야 할 준마님이 안보여서 좀 서운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끔 한번씩이라도 모습 보여 주십시요.감사합니다^^*
아~!!
조령산...이 구간은 갔어야 했는데~~
폴님 사진 글 보면서
같이 못 간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사진이 맑고 참 좋내요..ㅎ
잘 보고 갑니다.
남은 구간 무사 완주 기원합니다.
뜬구름님 반갑습니다.
정말 똑딱이로 담기에는 아까운 풍경이었습니다.
위에 사진기 이야기 쓸 때 무거운 카메라 열심히 들고 다니시던 뜬구름님 생각 많이 했더랬습니다.
열심히 야생화 담으시던 모습도 상상했었구요.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사진 많이 담으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글 남깁니다ㅡ
잘계시지요?
글로 남기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조령산
폴님의 글과 그림을 보며 지나던 그 때를 떠올려 봅니다
벌써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네요ㅡ
저하된 체력에 따라 나서길 망설이다가 결국
주말을 힘겨운 고통과 함께 했네요 ㅡ
회복이 되어야 할 텐데ㅡ조금 힘드네요
댓재ㅡ백복령, 청옥 두타의 가을을 보러 함께
나서 보렵니다ㅡㅡㅡㅡㅡ^^
헐! 천하의 동이님이 엄살은요.
졸업식 때 가짜로 졸업하는 모습이나마 좀 보여드려야 했는데 ㅠㅠ
암튼 다음 구간에 꼭 만나뵙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황령산에 올라가셔서 열심히 몸 만드세요^^*
29차면 올해안에 졸업하시는거 아닌가요?
이미 진부령은 다녀오셨고ㅡㅡㅡㅋ
폴님~~
가슴에 와닿는글과 사진 잘보았습니다...........!
발바닥에도 못미치는 글을 가슴까지 끌어당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산행 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뵙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워낙 잊음이 많아 산행 뒤에 대충 생각을 정리해 후기를 쓰 둡니다.
나중에 새로 글을 쓰볼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재미없는 후기에 관심가져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부디 명절 잘 보네시고 건강하십시요^^*
항상 느끼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 같습니다. 좋은글 좋은사진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말라버린지 오래 된 샘물이랍니다.
초이님도 늘 건강하시고 두타 청옥 구간에서도 건강하게 뵙게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가위 명절 즐겁게 보내십시요.^^*
산행 횟수가 더할 수록 여유롭고 편안한 산행길 인것 같습니다.
아마도 잘 담금질된 연철이 강철로 확실히 자리잡은듯...ㅎㅎ
좋은글 좋은사진 감사드립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고 용아장성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석정산인님도 명절 잘 보내시고 오산종주 신나게 다녀오세요.
두타산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뵈요^^*
poll 원장님!
조령산이 품어내린 긴 능선 멋진비경 감탄하며 한참을 보고 또보고 갑니다.
장군처럼 백두대간을 호령하시는 발길에 큰 박수를 많이 보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두타 청옥 긴능선에서 오손도손 또 만나요 ㅎㅎㅎㅎ
백두대간 호령은 동심이 형님께서 하시고 저는 일식집 쯔께다시처럼 얹혀 다닐랍니다.
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큰 귀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용아도 다녀 오시고...
멋지십니다..
담 산행도 만만치 않다 하던데.. 후미를 다투어 보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회장님! 후미는 저희 후미조에서 철통보안 할테니 염려마시고 쉬엄 쉬엄 걸어십시요.
걷다가 물 한잔 나누어 마실 수 있으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