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9일 토요일 오후
해운대에서 출발하였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다. 계획한 대로 다 돌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여유가 있다면 동해안을 따라 갔을 것이다.
대운산 내원암(大雲山內院庵) / 전통사찰
-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내원암에 대한 이렇다할 사적은 없어 보인다.
대운산 기슭에 여러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내원암 입구가 옛 대원사(大原寺) 터였다고 한다. 내원암은 대원사의 산내 암자였다.
신라 중기 대원사를 창건한 고봉(高峰)선사가 내원암을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안터넷 검색, <대한민국구석구석>에 쓰여진 내용을 옮겼다.
내원암 오기 전에 너른 주차장이 있다. '울산수목원'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이다.
기회가 있다면 울산수목원을 보고 대운산 산행을 하였으면 좋겠다.
내원암은 수수한 암자이며 앉은 자리도 평온한 곳이다. 문화재가 없다.
창건에 대한 사적도 찾기 어렵고, 옛 대원사에 대한 자료도 없어 보인다.
울산지역 4대 사찰하면 석남사, 신흥사, 문수사, 대원사 등이었다고 한다.
일주문 대신에 사자상 두 점이 있다.
참배객 외 출입금지..
이 글을은 부처의 뜻이 아니다. 누구든 와도 좋다고 하여야 한다.
참배객이 아닌 산꾼이나 관광객이라도 모두를 환영하는 게 부처의 뜻이 아닐까?
팽나무, 나이는 500년쯤, 둘레는 6m, 높이는 22m. 근육질의 남자를 보는 것 같다.
돌탑과 승탑 한 기, 오래된 문화재는 아니다.
일주문이 경내에 들어와 있다. 근래 세운 것 같다.
영남 제일의 명당, 풍수지리와 불교, 깨달음과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이다.
풍수지리로 좋은 자리에 앉은 절에서 공부하면 더 큰 깨달음이 오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마을, 화목한 가족이 사는 곳이 명당이다.
지장전은 수리 중이다.
종무소
가을이 정겹다.
염화실
대웅전
대웅전 안
수세전(壽世殿) / 칠성각
수세전 외벽엔 십이지상이 그려져 있다.
수세전 안, 산신
독성
수세전 앞에서 본 풍경
울주 청송사지(靑松寺址) 삼층석탑 / 보물 제 382호
-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
청송사는 신라 때 창건한 절로 보인다.
법맥이 조선 말까지 이어졌으나 거대한 홍수로 절이 다 쓸려 내려 갔다고 한다.
이 삼층석탑도 쌍탑이었지만 다른 탑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고 한다.
현재 청송사 아래 청송마을 밭에서 신라, 고려, 조선시대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청송사 승려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이 아니건만 얼마나 큰 비가 왔으면 절이 다 쓸려 내려 깄을까?
석탑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승탑이 있다. 나는 현재 청송마을 전체가 절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규모 발굴이 이뤄진다면 절의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현실로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
청송사지는 현재 어느 지역을 지정하곤 있지 않다.
이 탑은 하층기단이 상층기단에 비해 규모가 작다. 신라시대 지역(지방) 석공의 작품으로 보여진다고 설명되어져 있다.
1962년 해체, 복원할 때 상층기단에서 청동사리함이 나왔으면 이 사리함 속에 청동여래입상, 유리, 수정 등 30여 점 나왔다.
삼층석탑 앞에 석종형 승탑이 있다. 이 탑과 현재 청송사 등이 있도록 애를 쓰신 분 같다.
청송사지 부도 /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
모두 3기이며 조선시대 석종형이다. 이 일대를 예전엔 '부도골'로 불렀다.
이런 조선시대 승탑은 보기 어렵다. 승탑이 단순한 석종형이 아니다. 아마 조선 초기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조선 중기 이후엔 단순한 석종형 승탑이 대세이다.
대운산, 철탑 뒤로 문수사가 보인다. 문수사 쉼터에서 걸아갈 예정이다. 오늘은 어렵지만.
형태가 남아 있는 부도는 3기, 기단(받침돌)으로 쓴 석조와 비석을 세웠을 받침돌도 있다.
높이 3m, 지대석, 기단석, 연꽃좌대, 탑신이 잘 짜여져 있다.
기단석 남북면에 인왕상, 동서면에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 아래엔 산스크리트어, 위엔 연꽃무늬이다.
탑신 아래 새겨진 산스크리트어.
가운데 부도, 높이 2.2m, 기단 4면에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몸돌)에 '서응당 진흡대사(瑞應堂愼洽大師)'가 새겨져 있다.
愼 삼갈 신(다른 표현: 땅 이름 진, 삼가할 신, 신중할 신)
높이 1.2m이 이 부도는 기단없이 탑신만 있다.
청송사 / 전통사찰이 아님
벌써 동백이 피었다.
청송사의 소나무가 일품이다.
기후변화로 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청송사는 소나무의 푸르름을 대신할 대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이곳 승려와 이를 보러 온 이와 이야기를 엿들음)
경내에 은목서(천리향)와 금목서(만리향)가 있어 더 푸른 것 같다. 꽃이 필 때면 향기 또한 그윽하다.
율리 영축사지(栗里 靈鷲寺址) / 울산시 기념물 제24호
-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
영축사는 신라 때 창건한 절이다.
영축사(지) 주변에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 안에 있다.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영축사의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그 흔적이 있다.
683년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던 재상 충원공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 현청 북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여겼다.
이를 왕께 아뢰어 현청을 옮긴 뒤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철망이 둘러 처져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다음 기회에 다시 들려야겠다.
여려 석조 부자재가 널브러져 있다.
청송사지 삼층석탑 앞에서 청송사에서 만든 이와 이야기를 하였다.
1967년 생으로 고향은 하동 옥종이고 초등학교 교사라고 한다. 정년이 62세이지만 조금 일찍 퇴직하여 여러 곳을 다니곤 싶다고.
주변 말이나 아내의 동의가 무섭다. 용기를 내서 실행하면 될 터인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조건은 나보다 훨씬 좋다. 아마 아내도 같은 교직에 있는 것 같다.
이분과 이야기하고 나니 다섯 시에 가까웠다. 문수사는 갈 여유가 없지만 영축사지와 망해사지는 갈 수 있었다.
영축사지를 지나 망해사지는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였지만 헤맸다.
망해사(望海寺) / 전통사찰이 아님.
대웅전 한 장만 찍었다. 절 뒤편에 승탑이 있다.
울주 망해사지 승탑(蔚州望海寺址僧塔) / 보물 제173호
-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
3기의 승탑이 있다. 석종형인 부도는 문화재로 등록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승탑 2기는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것이다, 석종형은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승탑의 주인은 알 수 없다. 승탑에 당호가 없는 것 같다.
동부도 3.4m, 서부도 3.3m.
두 승탑은 규모와 건조기법이 같고, 서승탑에 비해 동승탑의 파손이 심한 편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양식인 팔각원당형으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로 이루어진 기단부가 있다.
망해, 바다가 보인다. 울산 시내에 불이 들어 오고 있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절도 제대로 보고, 승탑도 제대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