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항 56년 부두식당의 맑은 옥돔국 /오태진
날은 흐려도 바다는 에메랄드빛이다. 9월 초 백사장은 여름 접듯 파라솔을 접었다.
꽂아둔 채로 꽁꽁 묶은 파라솔들이 원색 기둥으로 서 있다. 포구 곁 작은 해변이 활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끝물이긴커녕 젊음이 넘친다. 쌍쌍이 셀카를 찍고 여자들끼리 맨발을 적시며 걷는다.
한쪽에서 서퍼들이 파도를 탄다.
지난주 늦은 여름휴가를 내 4년 만에 제주도에 갔다.
그 사이 눈이 휘둥그레지게 변한 곳이 제주시 동쪽 월정리다. 500m 해안 따라 카페 서른 곳이 늘어섰다.
'제주의 홍대 앞'이라더니 외국에라도 온 것 같다.
조용하던 멸치잡이 포구 땅값이 한 평 10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단층 카페 슬래브 옥상에 올라갔다. 바다 쪽 옥상 끝에 등받이 의자 여남은 개를 늘어놓았다.
차양 천이 바닷바람에 부풀고 일렁인다. 거기 앉아 바다와 사람을 구경했다.
레게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여인이 아기를 안고 오간다.
앳된 여자들이 모래밭에 서프보드 깔고 엎드려 서핑을 배운다.
아내가 "이 동네에서 머리 허옇고 선글라스 안 낀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핀잔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따금 관광버스에서 내린 중년들이 멋쩍게 서 있다 떠난다.
시원한 바람과 젊은 사람들 눈총을 함께 받으며 천천히 맥주 한 병 마셨다.
제주공항에 내리면 서쪽 하귀~애월 해안도로부터 드라이브한다.
가슴 탁 트이는 바다와 눈높이를 맞추다 굴곡진 절벽 길 지나 애월항까지 간다. 애월도 많이 달라졌다.
잘 꾸민 카페와 펜션과 가게들이 낯설다.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한담 언덕도 카페촌이 됐다.
하나 있던 카페 키친애월은 다섯 배 뛴 가겟세에 쫓겨나듯 떠났다.
6000원짜리 팥빙수가 둘이 먹어도 넉넉하고 맛있었는데. 그 자리엔 펜션·카페·음식점을 들인 3층 건물이 섰다.
바닷가 내려가는 오솔길에도 카페가 줄지어 생겼다. 바뀌면 바뀐 대로 제주도를 즐기면 그만일 텐데 괜스레
거북하다. 까탈스러운 것도 병(病)이다.
![[오태진의 길 위에서] 제주 애월항 56년 부두식당의 맑은 옥돔국](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age.chosun.com%2Fsitedata%2Fimage%2F201509%2F09%2F2015090904200_1.jpg)
[오태진의 길 위에서] 제주 애월항 56년 부두식당의 맑은 옥돔국
애월항 늙은 음식점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여든 줄 바라보는 부부가 56년째 꾸리는 부두식당이다.
내비게이터가 헤매서 전화를 걸었더니 할머니가 골목 어귀까지 나와 기다렸다.
늦은 점심이라 손님은 한 자리뿐이다. 탁자 여덟 놓은 홀을 세 칸 방이 에워쌌다.
예전엔 꽤 큰 음식점 축에 들었겠다. 한창땐 요리사를 둘씩 부렸다고 한다.
유리 미닫이문을 단 나무 찬장엔 그릇이며 잡동사니가 들었다. 컵 넣어두는 자외선 살균장은 옛날 이발소
물건처럼 생겼다. 대전엑스포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걸 보면 적어도 22년 됐다.
앞쪽 절반이 움푹 파인 부엌 도마는 이 집과 나이가 같다. 할아버지가 요리하는 사이 살림방 TV가 혼자
야구 중계를 한다.
자리물회·찌개백반·매운탕이 6000원이고 갈치조림이 1만원이다. 8000원 하는 옥돔국을 시켰다.
구이 말고 국으로 먹기는 처음이다. 남쪽 한림항에서 떼어오는 생옥돔으로 끓인다.
냉면 그릇 가득 맑은 국이 나왔다. 마리째 담긴 옥돔이 크고 실해서 그릇 밖으로 꼬리가 삐져나왔다.
채 썬 무가 말갛게 익어 넉넉하게 들었다.
국물 한 숟가락에 옥돔의 고소함과 무의 달짝지근함이 어우러졌다. 무 덕분인지 전혀 비리지 않다.
진하고 풍성하게 입에 감긴다. 할머니가 "제주도에선 옥돔국을 이렇게 해먹는다"고 귀띔한다.
따뜻한 남쪽 나라 음식이 그렇듯 간은 센 편이다.
반찬도 주인을 닮았다. 콩나물을 폭 익혀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없다.
노인들은 이가 좋지 않아 반찬이 부드러워야 맛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마늘대 장아찌도 달콤새콤한 초절임이 아니라 간장에 짭짤하게 절였다.
묵은 김치 볶음을 덤으로 올려준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할머니는 조곤조곤 말을 건넨다.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가게를 더는 못할 것 같다고 한다.
다시 옥돔국 먹고 싶어서라도 그 말씀이 엄살 섞인 입버릇이길 바랐다.
또 하나 노포(老鋪), 35년 된 표선면 춘자멸치국수도 4년 만에 찾아갔다.
진한 멸치 육수에 말아내는 정(情)과 인심이 그대로다.
값은 3000원으로 500원 올랐다. 4년 전 이 집 이야기를 썼던 '길 위에서'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기사 끝에 '증(贈) 제주거북농산'이라는 쪽지가 붙었다.
사연이 궁금해 강춘자 할머니와 처음 얼굴 마주해 인사하고 여쭸다.
할머니가 반가워하며 설명했다.
기사 나오고 얼마 안 가 소포가 왔는데 손님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풀어보지도 못했다.
나중에 한숨 돌리고 봤더니 액자였다. 거북농산은 표선에서 농사를 크게 지어 성공한 영농법인이었다.
외지 사람이어서 항상 제주도에 고마워했던 거북농산 전형두 회장이 병석에서 보내줬다는 걸 알았다.
수소문 끝에 연락했더니 암과 싸우다 사흘 전 돌아갔다고 하더란다.
할머니는 고인에게 진작 인사 못한 것을 후회하며 액자 볼 때마다 고마워한다고 했다.
작다면 작은 선물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춘자 할머니다. 이승과 저승으로 갈린 생면부지 인연도 맺어주는
것이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구나 싶었다.
제주도가 아무리 번듯하고 매끄러운 관광지가 돼 간다 해도 제주도답게 낡되 웅숭깊은 마음들은 살아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