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역 문화의 꽃을 피우는 병역병문가의 비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문인가 헤세가(家)는 헤세의 친가와 외가 모두 인도에서 선교사로 살았던 연유로 동양을 여행한 사람들과 동양의 책들로 넘쳐났다. 작가가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고 한 헤세의 탄생은 그가 자란 가정 분위기와 그 가풍에서 시작된 것이다.
실학의 산실 박지원가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16살에 장가를 간 연암은 처가에서 가르침을 받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를 좋아한 처숙의 영향으로 책에 흠뻑 빠져 조선 최고의 작가이자 사상가로 우뚝 서게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 워렌 버핏가는 ' Read, read, read (읽고, 읽고 또 읽어라)를 외쳤다.
올해 독서의해를 맞아 짚어본 세계적으로 이름난 독서명문가들의 이야기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층 나라 사랑을 실천한 분들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드는 요즘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6월 15일 열린 2012 병역병문가 시상식에서는 3대 가족 남자 모두가 현역 복무를 마친 병역병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대통령 표창을 받은 유경희씨 가문의 표창장과 병역명문가패 >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301가문 중 영예의 대상(대통령표창)을 받은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유경희씨 가문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1대 유근태 씨 등 3대 가족 모두가 현역으로 총 309개월 동안 복무했다. 병역명문가 시상식 장소였던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만난 유경희 씨는 “가문의 영광입니다. 오늘도 병역의무를 충실히 해주고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임에도 자원입대하여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명예 제대하셨습니다. 저는 해군으로 입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인 PC 707에서 복무했습니다.
해치문에 손이 끼어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백령도 출동 시 거대한 파도가 덮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도 많았지만 저녁이면 생활관에서 젓가락 반주에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끈끈한 전우애로 잘 견뎌냈습니다. 요즘은 군에도 노래방이 설치될 만큼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게 환경이 개선되고 있지요” 라고 말했다.
<▲ 대통령 상 수상자 가문의 2대인 유경희 씨>
그는 이어 “군 복지가 향상되고 민주화가 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군인 정신과 투철한 안보의식, 국가관이 선행될 때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 합니다. 사회는 급속도로 디지털화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도 개인주의로 흐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애국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고 덧붙였다.
유경희 씨의 조카 유기욱 씨는 징병검사 시 질병으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현역입영에서 제외 되었음 에도 질병을 치유하고 병역처분 변경원을 신청해 입대했다. 선친의 나라사랑 정신이 후대까지 이어져 2대 4형제와 3대 6명의 후손이 당당하게 병역의무를 마쳐 최고의 병역명문가로 등극했다.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된 경남 창원의 옥재문 씨 가문은 1대 옥봉식 씨를 비롯, 2대 5명, 3대 4명 등 10명 모두가 현역병으로 총 300개월을 복무한 가문이다. 1대 故 옥봉식 옹은 6,25사변에는 참전치 않았지만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 징집령을 받고 대기 중 징집 하루 전에 일본이 항복을 함으로써 징집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방 후 그는 ‘남자는 군에 다녀와야 옳은 사람’이라는 신념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옥재문 씨 가문의 3대 옥재문 씨>
가문대표이자 2대인 옥영규 씨는 1973년 입대해 1976년 만기제대 하고, 제대 후 강원도 원주에 있는 제1군 헌병대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 또한 아버지의 열정을 닮아 누구보다 나라 사랑과 병역에 대한 긍지가 강한 ‘나라지킴이’였다. 경찰에 투신하여 33년5개월간 근무하고 명예롭게 옥조근정훈장을 받고 정년퇴직했다.
3대이자 옥영규 씨의 차남인 옥재문 씨는 형님은 “대학 재학 중 육군 입대하여 광주31사단503여단에서 복무, 만기전역했습니다. 저는 대학재학 중 의무경찰에 지원, 입대하여 경남경찰청 소속 제1기동대에서 복무, 만기 전역했습니다. 군복무는 당연히 해야 되는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 얼떨떨 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은 서인태 씨와 인터뷰 중인 김성녀 어머니 기자> 다음은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은 서인태 씨와의 일문일답.
Q: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을 들려주세요. A: 무엇보다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게 되어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작년에 100수를 넘기신 아버님 (1대)께서 이 영예를 함께 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아쉽습니다. 우리 가문이 병역명문가로 인정받게 되어 명문가다운 가문으로 계속 이어 나갈 것입니다.
Q: 3대가족이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A: 화랑무공훈장, 태극무공 훈장을 수상했고 국가 유공자로 선정되신 1대 아버님께서는 6.25전쟁에 참전해 육군 중령으로 2대 4남 모두 현역으로 복무를 마쳤습니다. 저는 월남 참전으로 국가 유공자가 되었으며 3대 5명 모두 현역병으로 병역을 명예롭게 마쳤습니다.
Q: 병역 병문가 신청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A: 평소 병역 명문가 가문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작년겨울 3대 막내가 제대하면서 우리가문도 병역명문가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류를 갖추고 서울병무청에 신청을 했더니 오늘의 결과가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곳에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 6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만난 서인태 씨 가족 >
Q: 군복무 중 기억에 남는 일은요. A: 군복무 3년 중 2년 동안 월남에 파견되었습니다. 전쟁으로 희생당한 장병들이 치료 봤던 수술실을 생각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상처 없이 살아 돌아온 제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Q :끝으로 미래의 희망인 청춘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A: 군 생활은 의무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간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군생활은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를 잘 활용하면 국가관과 세계관 정립은 물론 통찰력이 생깁니다.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은 권오식 씨 가문은 1대 권종한을 포함한 3대가족 남자 가족구성원 9명이 모두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가문이다. 특히 이 가문은 2010년도 3월에 병역명문가 신청을 하였으나 막내손자가 군복무 중이어서 선정되지 못하고 올해 선정된 가문이다. 병무청장 표창을 받은 정동식 가문은 1대 정경석, 2대 정동식, 정창식, 정수식 3대 정한선, 정상헌, 정현욱, 정민규의 8명이 모두 현역으로 복무를 마친 가문이다. 이외에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많은 가문의 병역스토리 속에는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었다.
<공동취재 :김성녀 어머니기자 최정애 어머니기자 박진선 대학생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