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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어르신들 삶에 기초연금은 ‘단비’[기초연금 시행 1년 ③] 병원비, 공과금, 헬스, 요가까지 요긴하게 쓰여“그땐 정말 기분이 좋았지. 동네 이장이 찾아와서 이제 매달 20만 원씩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알려줬는데, 그게 바로 기초연금 혜택이었어. 그 돈이 쪼들리는 생활에 적잖은 보탬이 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는 영양소가 될 줄이야….”
‘애국 참전용사+기초연금 혜택’, 국가 자긍심 고취
1년 전 기초연금이 시행되면서 수혜자인 김진영(89·사천시) 어르신의 당시 소감이다. 더욱이 6.25전쟁 때 강원도 전투에 참가한 참전용사로 기초연금 혜택까지 받게 되니,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은 도시라 하기엔 농촌같고, 또 농촌이라 하기엔 도시같은 지역이다. 시 청사가 위치한 행정 중심지이지만 교통이 번잡하지 않아 소음 공해도 없고,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자연 풍취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농촌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딸 김숙녀(59) 씨는 “아버지를 뵈러 집에 갈 때마다 늘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집 대문에 ‘국가유공자의 집’이란 빛나는 훈장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든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겠느냐며 자부심도 대단하다.
아버지 댁과 5분 거리에 있는 딸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들르는데 “세월이 갈수록 쇠약해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이 더한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하지만 1년 전 ‘기초연금’을 받고서부터 기력을 점차 회복하는 것 같아 맘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했다. 20만 원이 어르신의 삶에 활력소로 작용한 것이다. “아버지의 기초연금은 주로 병원비와 공과금 등에 쓰인다. 또 짬짬이 조금씩 아껴두었다가 명절 때 손주 용돈도 주신다.”라며 기초연금이 생활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걸 강조한다. 물론 자식들이 아버지 댁에 들를 때마다 맛난 과일과 용돈을 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지금 황혼의 삶을 사는 아버지에게 기초연금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다. 쪼들리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니까.” 그래선지 요즘은 집 안팎을 산책하며 차츰 기력을 회복하는 것 같아 다소 안심이 된단다. 필자도 그 어르신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하는 바람을 가져 다.
매달 입금되는 기초연금은 ‘효잣돈’ 왕성한 삶을 사는 어르신들도 많다. 이들은 주로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며 생활의 활력을 찾는다. 운동이 보약인 셈이다. 기초연금이 시행된 후 사천국민체육센터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헬스나 요가 등으로 건강 관리에 힘쓴다.
3년째 헬스를 한다는 70대의 한 어르신을 만났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운동을 하는데, 그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모든 동작이 사뿐하고 가뿐하다. “기초연금 혜택을 보고 있습니까?”라고 여쭈니 “연금 일부를 받고 있다.”며 어깨를 으쓱거려 보인다. ‘기초연금’이란 말에, 그 옆에서 허리 운동을 하던 60대 중반이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인다. 헬스장 안은 금세 연금 수혜자, 일부 혜택자, 비대상자들이 모여 ‘연금’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연금이 생활의 촉매제가 되기도 해.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니 효잣돈 같은 생각이 들어. 그럴 때면 기분 그만이지.”라며 연금 수혜자는 우쭐한 기분을 표출한다. 일부 혜택자인 70대 어르신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그래도 받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그 돈이 나를 헬스장으로 이끌었지.”라며 기초연금 예찬론을 펼친다. 그 소리를 귀담아 듣던 비대상자는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 체육센터에 근무하는 백인수(47) 씨는 “이용자가 500명남짓 되는데, 기초수급자(기초연금 수혜자)와 65세 이상 노인을 합치면 147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전체 이용자의 30% 정도 되는 셈이다. “이분들은 월 이용료 50% 감면 대상자여서 부담이 훨씬 덜하다.”며 어르신들이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노모 기억력 일깨우려 퀴즈 풀이 효심 ‘아름다워’ 느지막한 오후, 사천 수양공원에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 나온 이를 만났다. 기초연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91살의 노모와 70대 아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다. “어머니,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산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들 질문이 귀찮다는 듯,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돌린다. “그럼, 춘천에 있는 댐은?” 이번에는 손사래를 친다. 그러자 아들이 ‘소양강 처녀’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해서라도 ‘소양강’이라는 명칭을 어머니 머릿속에 저장해 주고 싶어서다.
노년기에 접어든 아들은 “요즘 어머니의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감퇴되는 기억력을 막기 위해 별의별 궁리를 다한다.”고 말했다. 그 방안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퀴즈 대행진’을 생각해낸 것이다. 아들의 애쓴 노력 덕분에 노모의 신체와 정신건강은 아주 양호해 보였다. 연금으로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하고, 아들이 극진히 보살피니 퍽 행복한 황혼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즈 도중 할머니는 부끄러우면서도 지루한 듯 “좀 더 시원한 곳으로 가자.”며 아들 손을 이끈다. 70대 아들이 90대 노모를 모시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기초연금을 통한 국가 부양도 필요하지만, 가정 내 안전장치인 효를 바탕으로 한 가족 부양의 필요성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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