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것
- 김석돈 시인의 시 세계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옛 선비들이 시에 관해 쓴 글을 시화라고 한다. 지금의 시비평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글들에는 시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수많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중 한 예로 연미姸媚라는 용어를 들 수 있다. 연미란 ‘곱고 아름답다’란 뜻이다. 흔히 자연의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쓴다. 그런데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남용익이 당대의 문장가인 이산해의 시를 두고 ‘시가 연미하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때는 시가 섬세하고 유연하여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격하거나 억지스럽거나 거칠지 않고 자연을 닮아 유연하고 부드럽고 유려하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연미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김석돈의 시를 읽으면 저절로 이 연미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그의 시를 읽으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정말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야단스럽게 과장하지 않고 자연의 생명력에 억지스럽게 의미 확대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가진 힘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들어 준다. 한마디로 그의 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국화 한 송이 몸 풀고 있다
달빛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전통찻집
수중 분만 중인 임산부는
따뜻한 물에 잠겨 심호흡 중이다
...(중략)...
순산이다
모락모락 김 서리는 유리잔 안에는
이슬이 비치고, 기러기 날고,
노을빛 고독까지 그윽하다
찰랑거리는 찻잔 받아 들면
막 태어난 가을이
따듯한 기운과 함께 두 손을 타고 기어오른다
- 「가을 받는 날」 부분
시인은 전통 찻집에서 국화꽃차를 받아들고 있다. 말린 꽃송이가 따뜻한 물에 잠겨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수중 분만 중인 임산부”를 떠올린다. 비록 말린 꽃이지만 원래의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신기한 모습을 통해 자연의 가진 생명의 신비를 경험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은 그 국화꽃을 만들어 낸 “가을”이라는 계절이다. 시인은 이 계절이 선물처럼 불러낸 ‘이슬’ ‘기러기’ ‘노을’ 같은 가을의 풍경을 함께 두 손에 받아들고 있다. 단순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시인은 자연의 기운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
시인은 이런 자연스러움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다음 시가 이를 잘 말해준다.
새해 기념
즉석 사진 찍었지요
점이면 점
주름이면 주름
더하고 뺄 것 없이
쳐진 눈덩이에 나잇살이나 먹은
중늙은이,
이게 바로 하늘이 내려준
단 하나 내 얼굴
민낯입니다
그동안
세상에 돌렸던 내 모습
카메라맨 지시 따라
연출했던 명함판 사진
번듯해 보이는 그 사내를
내 얼굴인 양
여기저기 내놓고 다녔지요
겹겹 덧칠하여
내 것 네 것 구별하기도 어려운
가면, 이제 벗어 던지렵니다
삶의 들판에서
햇살에 웃고 비에 젖던
풀꽃 같은 얼굴 되찾겠습니다.
천지간 하나뿐인 간판
오래된 사진관에 반듯하게 내걸겠습니다
- 「오래된 사진관」 전문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그간 카메라맨이 시키는 대로 “연출한 명함판 사진”이라는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회적 활동을 해 왔다면 이제는 그런 굴레를 벗고 자연이 준 자신의 모습대로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로 살겠다는 다짐을 시인은 하고 있다. 시인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삶의 들판에서/ 햇살에 웃고 비에 젖던 / 풀꽃 같은 얼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가식적인 표정을 지어야 했던 그간의 삶이 자신의 본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주름과 점으로 점철된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자연이 준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임을 시인은 자랑스럽게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움을 삶 속에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무엇이 이 자연스러운 삶의 자세를 방해해 왔는지를 성찰하고 스스로 반성한다.
밥값은 하고 사느냐?
나에게 묻는다
생명줄 쥐고 세상 나온 것들
저마다 밥값은 하는 법
풀꽃은 벌을 치고
벌은 꿀을 물어 나르고
작은 새는 아침부터 노래 불러
밥값을 한다
...(중략)...
하루 세끼 바득바득 챙기면서
고작, 구더기 얼굴에 똥칠하는 일
생각 없이 그들에게 침이나 뱉을 줄 아는
나는
무엇으로 밥값을 하고 있단 말이냐?
- 「배부른 날이면 던지는 질문」 부분
배부르다는 것은 과도한 욕망의 충족을 의미한다. 자연의 존재들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만 밥을 먹는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을 위해 다른 생명으로 만들어진 밥을 탐한다. 시인의 과도하게 충족된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며 이런 자신의 삶이 자연의 질서에 맞는 것인지를 반성하고 있다. 밥값은 하고 산다는 것은 벌이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따고, 작은 새가 노래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얼굴에 똥칠하”고 “생각 없이 그들에게 침이나 뱉”는 저열하고 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자신이 먹은 밥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밥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한 부분을 취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생명을 해하는 것이므로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 내는 행위로 다시 자연에 보답해야 한다. 그래야 자연은 유지되고 순환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착취한다. 그래서 자연은 파괴되고 결국 자연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신마저 위기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밥값을 하고 는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이런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만이 자신과 인간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말이 그 자연스러움을 가로막는다. 인간을 말이라는 추상의 도구를 가지게 되면서 자연을 전유하고 자연을 착취하고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대체 며칠이나 굶겼던가
오늘은 뭔 일 있어도
말문이라도 열어 줘야지
말고삐 움켜쥔 할미
작심하고 말 사냥 나선다
...(중략)...
산책길, 수변공원 둘러봐도
말 만나 말 풀어놓을
말마당도 말동무도 보이질 않네
벤치 한쪽 비워놓고 기다려보지만,
가랑잎 하나 빈말처럼 내려앉을 뿐
말 사냥은커녕
말꼬리 한번 잡아보지 못한 할미
체면 말이 아니다
말머리 돌리는 거 보아하니
굶주린 말 다독이며 말풍선이나 불어줄 모양이다
- 「말꼬리 잡기」 부분
시인은 늙어가는 자연의 존재로서의 한 사람이 자연이 만들어 놓은 산책길을 걸으면서도 말을 하기 위해 “말 사냥”을 나서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말을 찾아나서지만 말을 할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 결국, 이런 상황은 말 때문에 생긴 것이다. 젊은 시절 과도하게 말을 사용해 사람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런 상황을 언어로서의 말과 동물로서의 말이라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하여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말을 잡으러 할수록 도망가는 것이기에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은 고작 말고삐도 말꼬리도 쉽게 잡을 수 없다. 말은 욕망의 도구이고 욕망의 표현이고 또한 욕망의 대리물이다. 그 욕망을 추구하려 할수록 우리는 채우지 못한 욕망의 빈자리인 결핍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채워지지 못한 욕망인 “굶주린 말”을 끝까지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 사람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 안에 슬픔이 배여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인은 이 말들을 시로 바꾸어 정화시키고자 한다.
하늘의 말씀이렷다
천상의 시인이
한겨울에 내려보내는 시
참 쉽게도 써서
꼬맹이, 발발이들까지
보기만 해도 군침 흘리는 시
누구라도
전화기 번호판 두드리고
카톡 날리고
부치지도 못할 편지
눈길 걷듯 써 내려가고 싶게 하는 시
반가워
두 손으로 받아 들면
주르르 눈물부터 흘리는 시
차디찬 알몸으로 혹한 녹여주는
역설의 코드가 박혀있는 시
물에서 왔다 물로 가면서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갈 독자에게
에둘러 윤회설까지 설파하는 시
온 천지 설국으로 단장하는 빗방울의 은유
함박눈
- 「함박눈」 전문
시인은 함박눈을 “빗방울의 은유”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시의 은유이다. “한겨울에 내려보내는 시”라는 첫 행에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함박눈을 보고 시를 생각한다. 이때 시는 바로 자연의 언어이다. 인간을 갈라치기 하고 세상을 추상으로 재단하여 삶의 구체성을 망각하게 하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인간을 감동시키고, “물에서 왔다 물로 가면서 /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처럼 막힘이 없어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그런 자연의 언어를 내리는 함박눈에서 읽고 있다. 바로 이런 함박눈 같은 시를 쓰는 것이 김석돈 시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길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황정산 :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저서로는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