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52,7-10 히브 1,1-6; 요한 1,1-18
+ 찬미 예수님
오늘은 12월 25일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생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요,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과 이 세상을 떠나신 날이 같은 날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3월 25일에 예수님께서 성모님 태중에 잉태되셨고, 또한 같은 3월 25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로부터 9개월 뒤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주님의 탄생과 죽음은 같은 신비를 기념하고 있는 것인데요, 주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을 이토록 낮추셨다는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신 신비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 사랑의 두 가지 징표입니다.
제대 앞에 구유가 있고 제대 뒤에는 십자가가 있는데요, 구유 앞에서 십자가를 함께 바라보시면, 이 두 신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유 주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성모님과 성 요셉이 계시고, 여러 동물들이 있는데, 소와 나귀는 반드시 포함됩니다. 이는 이사야서 1,3의 말씀과 관련이 있는데요,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소와 나귀도 제 임자가 누구인지 알고 구유에서 경배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우리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알아보고 있는지 구유 앞에서 묵상해 봅니다.
어제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때에 구유 경배 예절이 있었는데, 미사에 오신 분들이 모두 구유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구유 경배를 하는 분들의 얼굴을 경배했는데요,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어쩌면 이분의 얼굴로 오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옆에 계신 분 얼굴을 한번 보시겠어요? 하느님께서 만일 이 분의 얼굴로 세상에 오셨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그렇다고 오늘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얼굴 하나하나가 모자이크처럼 예수님 얼굴의 어느 부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를 서울 신학교에서 마쳤기 때문에 서울교구 동창들이 있는데요, 저희 동창 신부 중에 저보다 나이 많은 형님 한 분이 간경화 때문에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가족 중에 맞는 사람이 없었는지, 이 형님이 신학교 동창들에게 전화해서 간을 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야, 간 좀 줘.” “아, 왜 나한테 그래~” 대략 이런 통화가 오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성무일도에 “주님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 간구하는 소리를 여겨들어 주소서.”(시편 85(86), 6)라는 시편 기도가 있는데, 이것이 정말 간 구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피해 다녔습니다. 저한테는 전화가 안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던 중 동창 중 다른 형님이 간 기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가족이라면 모르겠지만 저렇게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닌데, ‘과연 나의 간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저희 아버지가 폐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저도 폐를 아버지께 이식해 드리려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이미 다른 곳에 전이가 되어 소용은 없었지만 그것을 알기 전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동창에게 간이식을 해 준 형님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이 말씀이 새삼 떠 올랐습니다. 다행히 두 분 모두 건강히 지내고 계십니다.
간이식은 자기 간의 절반을 잘라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기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식하기에 적합한지 둘 다 적합성 검사를 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기증자의 뜻이 강해도 적합성 검사 결과 맞지 않으면 이식을 해 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고 싶으셨는데, 이를 위해서는 당신 자신을 주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초월적인 분이시기에,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적합성을 맞추시고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심장을 이식해 주고 싶으셔서 인간의 심장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혼을 이식해 주고 싶으셔서 인간의 영혼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이 생명은 지상에서의 삶이 다한다 해도 꺼지지 않는 생명입니다.
오늘 그러한 하느님의 생명으로 초대된 서른네 분의 새 영세자들과 대부 대모님들을 우리 앞에 모시고 있습니다. 이번 세례식에는 세례자들께서 세례 성구를 하나씩 택하셨는데요, 이 말씀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아들딸로 태어나는 세례의 의미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가서 열매를 맺어라.”
“나약한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고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지탱하리라.”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정녕 주님 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날보다 더 좋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이,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해야 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새 영세자에게 교리를 가르쳐주신 수녀님들과 보좌 신부님,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신 선교분과장님과 봉사자 여러분, 기도해 주신 교우 여러분, 앞으로 새 영세자들을 영적으로 돌보아 주실 대부 대모님들, 그리고 여러 가지 섭리로 새 영세자들을 이끌어 주시고 이 모든 은인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계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소와 나귀처럼 우리의 주인을 알아볼 것을 다짐하며 잠시 침묵 중에 새 영세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첫댓글 강생의 신비와 예수님 십자가 죽음의 신비가 제대에 함께 있음을 이제야 알았네요. 감동입니다.~
세례 성구들도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