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son Peterson
If perceptions are not "objectified" and the perceiving is not "subjectified", there is then only the "unestablished". When the "unestablished" arises one cannot frame it in any conceptual way or else it becomes the "established". The "established" is the something perceived and objectified. If something is perceived and objectified then for that to be possible the perceiving must have become subjectified.
잭슨 피터슨
생각 되어 진 것(인식된 것)이 대상화 되지 않고, 생각함(인식하는 자)이 주관화 되지 않을 때 거기엔 단지 “규정되지 않은 것(판단중지 순수체험, 무분별)”이 있을 뿐이다. “규정되지 않은 것”은 어떤 개념으로도 틀 지울 수 없기에 그것을 “확정할 수 없다(언어로 개념화할 수 없음, 심행처멸).” “확정되지 않은 것”이 인식되거나 대상화 되어 “어떤 것”으로 된다. 어떤 것이 인식되거나 대상화 된다면 그땐 인식하는 작용이 주관화 될 수 밖에 없다.
Knowing this we find Nirvana is the condition of the "unestablished".
Further comment: In practice, this means we leave "appearances" as-is without creating a story that defines them in any conceptual way. Likewise we leave our "perceiving" undefined, not creating a story about a "me", the perceiver. Continuing in this completely open and undefined space of experience, how can each moment not be Nirvana? I think this formula shows the same point that Zen, Dzogchen, Mahamudra, Madhyamaka and the Buddha's earliest teachings point to...
이 요점을 주지한다면 니르바나(열반, 궁극적 평화)란 "확정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수행의 측면에서 좀더 해설을 달자면, “현상”을 어떤 개념의 틀로 규정하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말고 다만 일어나는 그대로(如如)에 내맡겨 둠을 의미한다. 그처럼 “인식하는 작용”을 인식하는 자, 즉 “나”라는 이야기(인식하는 주체로서 나가 있다고 두뇌가 지어내는 것)를 지어내지 말고 그냥 내맡기라. 이렇게 어떤 규정 지음도 없이 완전히 열려 있는 경험의 공간에서 어떻게 매 순간이 니르바나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 족첸, 마하무드라, 중관 및 붓다의 초기 가르침이 모두 이런 방식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心是根法是塵, 심시근법시진
인식작용이 주관화 되므로 인식대상이 객관화되지만
兩種猶如鏡上痕; 양종유여경상흔
이 둘은 거울에 흔적이 생긴 것이라
痕垢盡除光始現, 흔구진제광시현
흔적이 없어지면 곧 빛이 드러난다
心法雙亡性卽眞. 심법쌍망성즉진
주관과 대상이 함께 사라지니 원래의 진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