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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UN) 주재 교황청 대사 아우자 대주교, 유엔 본부서 파티마의 성모 발현에 따른 세계 평화 교훈 네 가지 강조
주 유엔(UN) 교황청 대사 겸 상임 옵저버 베르나르디토 아우자 대주교가 5월 12일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과 평화 메시지의 지속 관련성’을 주제로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연설했다.
아래는 베르나르디토 아우자 대주교의 연설문:
유엔 뉴욕 본부, 2017년 5월 12일.
주 유엔 포르투갈 대표부의 멘도샤 에 무라(Mendonca e Moura) 대사님, 그리고 각국 대사님들, 훌륭한 연사님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내일 예정된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앞두고 이 기념 행사를 주최한 주 유엔 포르투갈 대표부의 협조자이며 교황청 상임 옵저버로서 연설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기쁩니다.
바로 이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포르투갈의 레이리아에 위치한 몬테레알 공군 기지에 도착하여 곧바로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자 대통령을 만나실 것입니다. 이어 우리 행사가 개최되는 동안 교황께서는 파티마 스타디움으로 가는 헬기에 올라타셔서 행사 개최지인 파티마 대성당으로 이동하시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될 것이며, 교황께서는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장소에 세워진 소성당 카펠리냐에 들어가셔서 기도하시고, 오늘밤 예정된 촛불기도와 묵주기도를 준비하실 것입니다.
교황과 함께 파티마에서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있어 저는 유엔 본부가 있는 이곳이 평화의 메시지의 지속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메시지는 100년 전 내일, 스스로를 처음으로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러 오셨다는, 흰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께서 어린 목동들에게 들려주신 내용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에 갈 수는 없지만, 파티마의 일부가 뉴욕본부에 왔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이 성모상은 70년 전 파티마 성모 발현 30주년을 맞아 1947년에 비오 12세 교황께서 바티칸에서 축성하셨습니다. 이어 파티마교구장이 성모 발현 35주년을 맞아 1952년 10월 13일에 다시 축성하셨습니다. 파티마에서 축성된 이 성모상은 1946년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을 창설한 뉴저지 교구의 헤롤드 콜갠 몬시뇰에 의해 지난 1952년 12월 8일 유엔으로 옮겨졌습니다. 콜갠 몬시뇰은 방문자 로비에 위치한 기도실에 성모상을 두고 세계평화와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해 묵주기도를 봉헌했습니다.
약 65년이 지난 오늘, 파티마의 성모 발현 소성당에 있는 성모상을 복제한 성모상이 유엔으로 되돌아옵니다. 지난 65년간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성모상 앞에서 만들어낸 평화를 위한 기도가 오늘날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평화를 위한 특별한 방식으로 들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특별한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시리아의 전쟁 종식을 위해, 그리고 나날이 커져가는 한반도 전쟁 위협의 종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또한 남수단과 소말리아, 예멘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민주공화국과 동부 우크라이나, 그리고 다른 갈등 지역에서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기도합니다. 아울러 테러리즘, 종교적·민족적·인종적 박해, 전체주의적 사찰, 흉악한 마약 카르텔, 조직화된 범죄, 인신매매와 다른 형태의 현대적 노예제도, 그리고 피와 혐오로 얼룩진 세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국가적 내란의 종식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파티마의 어린 목동들, 곧 루치아 도스 산토스와 그녀의 사촌 동생 프란치스코 마르토와 히야친타 마르토가 증언한 바에 따라 이 성모상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말씀하신 메시지를 검토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엔의 용어로 말씀드리자면 성모 마리아께서는 본질적으로 모든 국가들에 주재하는 상주 대표부의 핵심 요원들을 부르시려고 평화의 대사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오늘날의 상황과도 연관됩니다. 오늘날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세상을 산산조각낼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셨던, 50여 건 이상의 국제적 갈등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세상이며, 이는 불과 한 세기 전 제1차 세계대전의 상황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화의 계획”을 말하기에 앞서 목동들이 이 모성적 평화의 대사께서 말씀하신 메시지를 들었다는, 파티마 성모 발현의 신뢰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어린 목동들이 증언한, 이른바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했다는 내용이 참되다고 알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한 세기 전에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이 아마도 ‘사실’보다는 동화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지만, 지상적 존재와는 동떨어진 신성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하늘에서 어린 목동들에게 내려온 성모님의 중재 같은 이야기가 믿음을 시험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신심을 가진 전통을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 혹은 심지어 가톨릭 신자이지만 기적적인 발현이라는 개념을 곤란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이 선의로 만들어진 미신이지만 속임수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비가톨릭신자와 심지어 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조차 가톨릭 신자들이 한 세기 전에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고 놀랍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나 어린 목동들에게 성모님이 요청하신 그 무엇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파티마에서 벌어진 일을 “사적 계시”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 발생한 일로 교회가 믿을 만하다고 승인한 환시와 발현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사적 계시를 인정할 때는, 가톨릭이 성경의 내용이나 예수의 첫 제자들이 전한 전통의 내용을 믿는 방식으로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인간의 신앙, 신중함, 정화된 상식으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곧 개연성이 있으며 믿을 만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교회는 루치아를 비롯해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증언을 검토하면서, 이 어린이들이 참으로 믿을 만한 증거자들이며, 그들과 관련된 메시지들은 교회가 신앙의 진리나 이성이라고 여기는 것과 전혀 반대되지 않기에 사람들이 신중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합니다. 이러한 사적 계시의 목적은, 가톨릭교회의 신학에 따르면, 특정시기에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살아가도록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를 분별없이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런 도움을 반드시 사용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 원리들을 파티마에서의 마지막 발현인 지난 1917년 10월 13일에 발생한 대중적 기적과 관련해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적용해봅시다. 2달 전 성모 마리아께서는 아이들에게 발현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기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자들 뿐 아니라 대략 7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폭우 속에 모여들었습니다. 거기엔 호기심으로 온 사람들이 있었고, 거친 세속주의자들도 있었으며, 교도권을 반대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기라고 폭로하기 위해 목격자가 되고 싶었던 기자들과 회의론자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거나 들을 수 없었지만 어린 목동들에게만은 허락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시간에 이르자 어린 목동들이 하늘을 가리켰고, 이어 시커먼 구름이 흩어졌습니다. 불투명하게 드러난 태양은 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면서 하늘을 가로질러 지그재그 모양으로 전진하며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습니다. 리스본 일간지 「오 디아(O Dia)」는 기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관찰할 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오후 1시. 한낮에 태양이 있었고 비는 그쳤다. 진주빛이 도는 회색으로 물든 하늘은 이상한 빛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건조한 경관을 비췄다. 태양은 얇게 비치는 베일처럼 투명해졌고, 사람들은 태양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태양은 우중충한 회색으로 빛나는 은반 모양이 되었고 서서히 빛이 퍼져서 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왔으며, 회색빛 천으로 덮은 듯한 은빛 태양이 물러나면서 구름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며 주춤거리는 것이 보였다. 외침소리가 모든 입에서 올라왔고, 사람들은 진흙투성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빛은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통하여 빛나는 것처럼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바뀌어 무릎을 꿇고 손을 뻗은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서서히 푸른빛이 사라지고 이제는 빛이 노란색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노란색 점들은 흰색 손수건과 여성들의 검정 치마로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 빛은 낮은 곳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 언덕까지도 한없이 물들였다. 모든 사람은 기대했던 기적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흐느꼈으며 모자를 벗고 기도했다.”
리스본의 다른 주요 매체인 「오 세쿨로(O Seculo)」의 편집장 아벨리노 데 알메이다는 처음부터 성모 발현을 조롱하려고 당시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그가 관찰한 광경에 대해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에는 탈 것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진흙투성이 땅도 개의치 않았다. 엄청난 인파가 하늘의 정점에서 구름을 헤치고 나와 태양을 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 모두가 불편함 없이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일식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커다란 외침소리가 들렸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적이다! 기적이야!’ 하늘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모두 모자를 벗고 있던 군중들의 놀란 시야 앞에서 태양이 우주의 법칙을 벗어나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떨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은 ‘춤을 췄다.’” 이 일이 끝나자, 폭우로 젖었던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과 땅은 말라버렸습니다.
대략 1세기가 지난 후 우리는 어떻게 이를 평가할 수 있습니까? 반성직주의자들, 회의적인 기자들, 적대적인 공무원들, 교회 관계자들을 포함해 약 7만 명의 사람들 모두가 태양과 관련한 집단환각 미사를 경험했던 것입니까? 만일 그랬다하더라도, 앞서 내렸던 비 때문에 젖었던 사람들의 옷이 순식간에 말라버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7만 명이 똑같은 환각을 공유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환각을 경험해야 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파티마 외의 다른 전 세계에서 같은 광경이 목격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그런 현상을 그냥 단순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것을 태양계의 대재난적 파멸로 느끼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7만 명 모두가 증언한 자료를 고려하지 않고 제쳐 놓으면서, 그들이 단순히 속았다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라거나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은, 그 엄청나고 다양한 계층의 군중들이 단순히 기적을 위해 배치된 것이 아니라, 어린 목동들의 증언, 곧 성모님께서 2달 전에 10월 13일 기적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부분 때문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는 점입니다. 순식간에 말라버린 옷이라는 물리적 증거는 지난 세기 동안 파티마의 성모 발현이 믿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결론은 인간의 신중함이나 우리가 자연적 신앙이라고 부르는 데 근거하여,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유형이 목격자의 신뢰성에 기초한다는 것, 곧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과 연관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조차 다른 모든 사적 계시들처럼 주로 인간의 신앙이나 이성의 영향력에 기반해 파티마의 진실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파티마에서 일어난 일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주장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에 근거하는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여기서 고려되어야 할 사실은 한 세기 전 반-가톨릭적 신문매체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함으로써 어린 목동들이 증언한 내용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덧붙였다는 점입니다.
그 중요한 배경으로 저는 태양의 기적을 약속했던 여인이 어린 목동들에게 전한 “평화의 계획”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에 깊은 의미와 특별한 요구에 대한 몇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저는 평화의 추구와 관련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교훈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회개의 필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가던 길을 바꾸어 돌아 서서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과 말과 행위를 검토하는 것이고, 평화와 형제애와 연대를 구축하는 대신 어떻게 분열되고 있고 어떻게 해악을 끼치고 있으며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가 너무나도 부족한 이유는 사람들이 호전적인 방식이나 대상화, 그리고 비인간화와 타인을 잔인하게 다루는 데서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평화가 너무나도 부족한 이유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나 한 나라의 정책에 대해 면밀하게 숙고하는 것보다는, 타인이 저지른 잘못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국제 사회에 이런 유형의 보편적 회개를 요청하신 바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모든 나라가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히게 만드는 돈에 대한 우상숭배, 전체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대학살에 가담할 수 있게 만드는 부르주아적 무기거래, 전쟁이나 기아, 그리고 자연재해적 상황을 피해 온 난민들을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상황 등에서 돌아서는 우리의 회개를 요청하십니다. 회개 없는 평화는 언제나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회개는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두 번째 보편 교훈은 평화가 시작되는 지점과 관련됩니다. 어린 목동들은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지옥의 공포에 대한 환시를 비롯해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붕괴와 흰 옷을 입은 주교가 암살되는 교회의 박해에 대한 환시를 보았습니다. 모두 이 세상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회개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관련됩니다. 여기서 성모님께서는 구제책을 목동들에게 설명하셨는데, 곧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모님의 마음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마음은 순수하고 분열되지 않으며, 지혜롭고 순종하고, 신실하고 주의 깊으며,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황선출 5년 전인 2000년에 이 정화된 마음이 “총이나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한” 마음이라고 썼습니다. 이 마음은 역사를 바꿉니다. 평화는 마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평화를 건설하고 유지하고 중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위대한 중재자들의 노력과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평화의 혁명이 흐르는 것은 그러한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보편 교훈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기도는 평화의 도구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린 목동들에게 타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평화가 그들의 영혼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묵주기도, 10번의 성모송 후에 바치는 구원송과 같은 특별한 기도를 바치거나, 매달 첫째 토요일에 대한 신심을 기념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도에 관해 두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의 주관적 가치에 관한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특별히 자비로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기도할 때 그렇습니다. 심지어 비신자들도 기도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인정합니다. 많은 심리적·의학적 연구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파티마의 메시지에는 기도의 객관적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곧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내부 세계 뿐 아니라 외부 세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평화주의자들의 활동을 넘어서는 성모 마리아께서는 어린 목동들을 불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의 회개를 위한 기도, 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볼셰비키 무신론 공산주의가 시작된 러시아의 회개를 위한 기도, 총에 맞을 흰옷의 주교를 위한 기도 등입니다. 이러한 기도들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지난 1982년, 2000년에 말씀하셨듯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91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히야친타의 기도와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조국 폴란드에 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민주정권이 수립된 이후, 그는 기도를 통해 성모님에게 의탁하며 모성적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자유로 인도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평화를 위해서는 행동하기 전에 기도와 희생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교훈은 모든 사람들이 평화운동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평화를 위한 일에 국가 지도자들이나 외교관, 종교 지도자들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세 명의 단순한 어린이들에게 오셔서 세계와 영혼들의 선익, 평화라는 큰 뜻을 위해 메시지를 전하셨으며, 비밀과 특별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선별기준은 모든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지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무능하거나, 너무 어리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각각의 역할이 있습니다. 어린 목동들이 선택될 수 있었고 그들이 했던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 응답한다면, 이것은 모든 이들의 위한 표징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단순히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지속 관련성과 더불어 매우 현재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어린 목동들에게 주신 메시지, 곧 회개의 실천, 마음의 변화, 기도와 희생 등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 평화 유지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파티마에서 오늘밤과 내일,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평화를 위한 기도로 이끄실 것입니다. 평화의 대사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주신 살아있는 유산에 대해 감사드리면서, 여기 유엔에 모인 우리들 또한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루치아처럼 평화를 이루는 긴급하고도 고귀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 각자의 몫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상) 세계 평화 메시지와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푸른깃발 휘날리며 성모님께 기도한다 온세상에 평화가 오길
□ 싣는 순서
상 - 세계 평화 메시지와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중 - 올바른 성모신심
하 -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행사
오는 5월 13일은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포르투갈 중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던 파티마에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달 성모 마리아가 여섯 번에 걸쳐 나타났다. 그리고 파티마의 성모는 세계를 향해 세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1981년,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일어난 납치사건은 오직 파티마의 세 번째 메시지 공개가 유일한 요구사항일 정도로 파티마의 성모 메시지가 세계에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아 본지는 3주간에 걸쳐 파티마 성모 발현의 의의와 올바른 성모 신심을 살펴보고 파티마 현지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를 전한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의 환경
파티마의 성모가 나타난 1917년은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이르는 동시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세계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파티마는 협곡으로 둘러싸여 외부 접촉이 적고 비교적 조용하게 신앙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이 마을에 사는 세 명의 어린이 루치아(Lucia dos Santos, 1907∼2005)와 그녀의 사촌 히야친타(Jacinta Marto, 1910∼1920),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1917년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기에 앞서 1916년 봄, 여름, 가을엔 천사가 아이들에게 나타나 ‘용서의 기도’, ‘성체의 기도’를 함께 바치며 성모 발현을 준비하기도 했다.
파티마 성모가 전한 세 가지 메시지
1917년 5월 13일 처음 세 어린이에게 나타난 파티마의 성모는 10월 13일까지 매달 한 번씩 나타나 이들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요청했다. 특별히 7월 13일 세 번째 발현에서 성모 마리아는 세 명의 어린이들에게 지옥의 환시를 보여주며 “인류가 계속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다면 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당신의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하고 평화가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날 파티마의 성모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한 세 어린이 중 2005년까지 수도자로 살았던 루치아는 교구장의 명령에 따라 성모님을 만나며 듣고 기억한 것을 문서로 기록했다.
2000년 6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파티마의 메시지’에서는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비밀은 지옥의 환시다. 루치아 수녀는 “성모님께서는 저희에게 땅 밑에 있는 것 같은 거대한 불바다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불 속에는 마귀들과 인간의 형태를 한 영혼들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통과 절망의 비명과 신음 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비밀은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에 대한 것이다.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티 없이 깨끗한 내 성심에 대한 신심을 세우고자 하신다. 만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 실천된다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평화가 올 것이다. 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라며 루치아 수녀는 성모의 메시지를 기록했다.
2000년 5월 13일에 가장 늦게 셋째 메시지가 공개됐다.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했으나 어린 나이에 숨진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복식에서였다. 셋째 메시지는 ‘교황의 고통’에 대한 것이다. “교황 성하께서는 절뚝거리시는 발걸음으로 몸을 반쯤 떠시면서 고통과 슬픔에 짓눌리신 채, 도중에 널려 있는 시신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르신 교황 성하께서는 큰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으신 채 그분을 겨냥하여 총과 활을 쏘는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실제로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일반 알현 도중 터키 출신 청년에게 총을 맞고 4일 만에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 이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인간 세계를 성모님의 사랑으로 감싸달라는 내용의 ‘의탁 기도문’을 작성했다.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평화를 위해 기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나타난 파티마의 성모가 던진 메시지에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분단으로 인한 전쟁 위협이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한국사회에 파티마의 성모가 던진 평화의 메시지는 간절함으로 다가온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미국의 콜갠(H.V.Colgan) 신부가 창설했다. 본당 신부로 사목하던 그는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약속한 마리아의 약속에 큰 감동을 받고 신자들에게 ‘티 없이 깨끗한 마리아의 성심에 러시아를 봉헌하고, 매달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하라’는 성모님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는 사람은 성모님의 상징인 ‘푸른 리본’을 달고 매달 묵주기도를 바치겠다는 서약서를 가져오도록 했다. 콜갠 신부는 “우리는 성모의 푸른 깃발 아래서 성모의 요청을 실천하는 푸른 군대가 돼야겠습니다”라고 외쳤고 이때부터 ‘푸른군대’라는 명칭이 생겼다. 이후 ‘푸른군대’는 1985년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1953년 6·25전쟁 막바지에 이른 때에 시작됐다. 1953년 주한 미군 제1해병 군종신부였던 스트럼스키(M.J.Strumski) 신부는 전쟁으로 신음하는 한국을 위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국제본부에 파티마의 성모상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파티마가 속한 레이리아교구의 호세 코레이아 다 실바 주교는 성모 발현 장소에서 축성된 순례 성모상을 우리나라에 보냈다. 1953년 4월 5일, 판문점 인근 광장에서 당시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 집전으로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이 축성돼 순례를 시작하고 노 주교는 한국의 푸른군대 첫 회원이 됐다. 최전방 휴전선을 출발한 파티마 순례 성모상은 서울, 춘천, 대구, 부산, 마산을 순례했다. 순례 도중인 7월 26일, 휴전 협정으로 6·25전쟁은 중단되고 스트럼스키 신부가 본국에 귀국함으로써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활동은 잠시 멈췄다. 이후 1964년 독일 출신 트라우너(A.Trauner, 하 안토니오 몬시뇰)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기도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을 꾀하고 있으며 2015년 5월 경기도 파주에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봉헌했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중) 올바른 성모 신심
파티마 성모도 “일종의 사적 계시” 신앙 도울 뿐… 믿음 대상은 아냐
성모 신심은 자칫하면 자극적으로 해석되거나 개인의 복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으로 흐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파티마 성모의 메시지 중 세 번째 메시지는 2000년에 공개될 때까지 ‘제3차 세계대전을 예언한 것’, ‘외계인의 공격을 예언한 것’이라는 등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소문으로 떠돌기도 했다. 논란과 억측에 휩싸였던 파티마의 셋째 비밀은 ‘교황의 고통’과 ‘참회하라’는 메시지임이 확인됐다. 한국교회에서는 한때 “성모님의 기적이 나에게 일어났고 사적 계시를 받았다”며 많은 신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나주 율리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성모 신심의 본질을 알아보고 올바른 성모 신심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성모 신심을 알아본다.
성모 신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모 마리아 공경에 대해 971항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으시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 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또한 마리아 공경은 천주의 성모님께 바쳐진 전례 축일들과 묵주 기도와 같은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에 나타난다”며 성모 신심의 본질과 성모 신심이 드러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66항과 67항은 성모 신심에 대해 “교회는 천주의 성모께 대한 다양한 형태의 신심을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따라 또 신자들의 품성과 기질에 따라 승인”한다고 밝힌다.
이는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모습의 신심 행위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된 것으로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성모 신심 행위를 인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말로든 행동으로든 사람들을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힘써 막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진정한 신심은 오직 참된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신자들은 명심하여야 한다”며 올바른 성모 신심의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나주 율리아’ 사건 같은 ‘사적 계시’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올바른 성모 신심인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는 “가톨릭 신자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 헌장이 제시하는 성모 신심에 대한 방향(정통 교리를 지키면서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신심을 표현하는 것)을 확고하게 잡는다면 역동적인 성모 신심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며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모 신심이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파티마의 성모에 대해 “일종의 사적 계시”라며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모 신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
2000년 5월 13일 열린 파티마 성모 목격자 시복식에서 당시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파티마 메시지를 신앙생활에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를 구별한다. ‘공적 계시’는 “인류 전체에 하느님이 당신을 알리는 행위이며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그 문학적인 표현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 공적 계시는 신약 성경에 기록된 그분께 대한 증언으로 완성”됐다고 선을 그어 앞으로 더 이상의 공적 계시는 없으며 수정이 불가능한 것임을 밝혔다.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적 계시’를 ‘말 그대로 개인적으로 받은 계시’라고 설명하면서 ‘다만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좀 더 충만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라며 ‘사적 계시’의 역할을 규정한다.
소다노 추기경의 성명서는 “신약 성경의 완성 이후에 있었던 모든 환시와 계시가 사적 계시이며 파티마의 메시지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어 “사적 계시는 (하느님과 예수님 말씀에 대한) 신앙을 돕는 것이며, 결정적인 공적 계시로 이끌어 줄 때 그 신빙성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아울러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적 계시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제시된다면 그것은 성령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라며 사적 계시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1900년~2000년 100년 동안 성모 발현 사건은 전 세계에서 200여 건 이상이 보고됐지만 포르투갈의 파티마(1917년), 벨기에의 보랭(1932년), 벨기에의 바뇌(1933년)만이 교도권의 공식인가를 받았다.
김정용 신부가 말하는 성모 신심 - “초자연적 현상에 휩쓸리는 등 기복 신앙으로 흐르는 것 지양”
“복을 바란다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중요한 부분입니다.”
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는 성모 신심이 기복 신앙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이에 더해 김 신부는 “인간의 이러한 근본적인 욕구, 갈망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사목의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간의 욕구에 기초한 기복적인 성모 신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기복적 성모 신심의 문제에 대해 “성모님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결합된 삶인데 이것보다 초자연적인 현상 등이 성경에 드러난 성모님의 삶을 압도하는 경우 기복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어 “진정한 성모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며 부른 노래 마니피캇(루카 1,46-55)에 그리스도가 추구한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마니피캇은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고 노래하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김 신부는 한국교회의 그릇된 성모 신심으로 신자들에게 재산 피해까지 입힌 ‘나주 율리아’ 사건을 언급하며 “수용하기 곤란하고 기괴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신부는 “치유를 필요로 하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그런 현상에 왜 휩쓸리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을 두고 김 신부는 교회에 대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현실적인 고난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교회가 얼마나 깊이 연대하고 공감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교회의 반성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광주가톨릭대학에서 9년간 기초신학, 교회론을 강의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하)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행사
‘목동 남매’ 성인 선포 후 전 세계 신자들 함성 터뜨려
[외신종합] ‘평화를 위한 기도의 상징’인 파티마의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 12~13일 포르투갈 파티마를 사목 방문했다. 특히 교황은 철야기도와 성모 발현을 목격한 두 목동의 시성을 통해 희망과 평화의 복음을 전했다.
◎… 5월 12일, 포르투갈 파티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파티마 ‘순례’가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황은 기내에서 수행기자단과 인사를 나눈 후 “이번 파티마 대성당 방문은 좀 특별하다”면서 “이번 여행은 기도의 시간, 주님과 주님의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파티마 인근 몬테 레알 공군기지에 도착한 교황은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사 포르투갈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환담을 했다. 또 교황은 기지 내 경당을 방문하고 아픈 군인 가족들을 만나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 몬테 레알 공군기지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파티마에 도착한 교황은 각종 깃발과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어 교황은 100년 전 성모가 발현한 곳에 지어진 성모 발현 경당을 찾아 침묵 중에 기도했다. 교황은 “장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서 주변부로 나아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성모의 전구를 빌었다.
이어 복자 바오로 6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했던 전례를 이어, 은으로 만든 꽃병에 담긴 순금의 꽃을 성모상에 봉헌했다. 이 경당에 있는 성모상 왕관은 지난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피격 당시 범인이 사용한 총알도 함께 녹여 만들었다.
◎… 전야기도회에 참가한 교황은 순례자들에게 “목동에게 발현한 성모의 가르침대로 하느님 자비가 ‘가장 필요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궁핍한 이들과 내몰린 이들, 소외되고 미래가 없는 이들, 고아와 불의를 겪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내리길 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교황은 성모 마리아를 “복음화의 모델”로 칭송하며, 우리 모두가 죄인에 대한 처벌보다는 자비를 보여줄 것을 강조했다. 교황은 “판단에 앞서 자비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면서 “성모와 함께 우리 모두는 주님 자비라는 성사의 증표로 누구나 언제든 용서하자”고 당부했다.
◎…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행사의 절정은, 성모 발현을 목격했던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의 시성식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3일 두 남매를 성인으로 선언했다. 순교자를 제외하고 미성년자가 시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종 당시 프란치스코는 11살이고 히야친타는 10살이었다. 남매는 지난 200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5월 13일, 파티마 대성당에서 열린 시성식 미사에서, 교황이 “복자 프란치스코 마르투와 복녀 히야친타 마르투를 성인으로 선언한다”고 말하자 50만 군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교황은 “이들 남매가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모든 것을 주님께 바쳤다”면서 “아픈 이들은 질병을 삶의 선물로 여기며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라”고 당부했다.
◎… 한편, 남매의 시성을 위해서는 남매의 전구를 통한 기적이 필요했는데, 이 기적은 브라질에서 나왔다. 지난 2013년 당시 5살이던 루카스라는 아이는 동생과 함께 놀다가 6m 높이의 창에서 떨어졌다. 땅에 머리를 부딪친 루카스는 뇌세포 손상까지 입는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아이가 살아날 가능성이 아주 낮으며, 회복하더라도 인지장애를 갖거나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루카스의 아버지는 당시 아이를 위해 파티마 목동의 전구를 빌었다. 이튿날에는 인근 가르멜 수녀회를 찾아 수녀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온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파티마의 목동들이 전구해줄 것을 청했다. 4일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루카스는 의식을 회복했고, 이틀 뒤에는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루카스는 어떤 장애나 부작용 없이 완전히 회복했다.
파티마에서 온 편지 - 성모님 만나러 지구 반바퀴 돌아… 보속과 회개의 묵주기도 바쳐
이곳 포르투갈 파티마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모님의 발현 100주년을 기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서 발현 목격자인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두 목동이 시성됐다. 이날 파티마는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늘나라에서 땅에까지 오신 어머니의 원의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이 주님을 더 많이 찬미하고 더 깊게 믿으며 더 간절하게 바라고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하고 격려하는 장이 됐다.
성지는 축제의 광장이었다. 100년 전 이날 어린 목동 셋이 하늘나라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성모님을 만났지만, 오늘은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모여와 어머니를 느끼고 기념하며 그 원의를 새겼다.
거대한 찬미 열기 속에는 한국에서 온 수백 명의 신자들도 함께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오는 먼 길임에도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 순례자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파티마까지 날아왔다. 기념 미사에 참석한 한국 신자들은 그룹별로 40여 명에서 100여 명까지 순례단을 꾸려 이곳에 왔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온 순례자들도 더러 있었다. 1~2년 전부터 순례를 준비해 온 순례자들은 5월 10일 혹은 11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꼬박 하루를 걸려 파티마까지 왔다.
5월 12일 밤, 한국인 순례자들은 발현 기념 전야기도회에 참석했다. 낮부터 구름처럼 모여든 전 세계 순례자들 속에서 한국 순례자들 또한 세계의 평화,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와 보속의 묵주기도를 바쳤다. 촛불이 바다를 이룬 이날 밤 성모 발현 경당을 중심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자신과 이웃의 삶을 봉헌하고, 고통으로 물든 세상이 분쟁에서 평화로 나아가기를 기원했다.
13일 오전 6시 이미 광장은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도 태극기를 들고 군데군데 자리를 잡았다. 묵주기도, 입당행렬, 미사로 이어진 예식은 오후 1시가 지나서 막을 내렸다. 순례자들은 너무나 많은 인파들 속에서 서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비좁은 대로, 또 사람들에 부대끼면서도 역사적인 순간에 성스러운 자리에 있는 자체로 기뻐하였다. 그리고 성모님을 통해 전해져 오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젖었다. 초대받은 기쁨으로 어떤 불편함도 부족함도 모두 감수해냈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은 긴 준비와 많은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왔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보다 깊이 기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공들여 찾아온 땅이 주님의 어머니께서 하느님의 뜻을 밝힌 곳인데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를 키우고 갔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은 지울 수가 없다.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그때는 고요함 중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것을 기대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