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엄종 승려 명혜는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을 깊이 탐구하고 두분 스승의 생애를 그림으로 남겼다.
의상대사를 사모했던 선묘낭자 이야기.
의상 대사는 출가전 서라벌의 욘사마였다.귀족적인 외모와 품위있는 매너로 모든 여성들이 한번 보면 반하게 되었다.
신라의 여왕이 의상을 탐내게 된다.뒷조사를 해보니 연인이 있었다.둘사이를 떼어 놓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에 보내는 조공에 의상의 여자를 함께 보냈다.그의 이름은 묘화였다
사랑하는 연인을 남겨두고 서해바다를 건너던 묘화는 바다에 몸을 던져 이승을 하직한다.그 소식을 전해들은 의상은 세속의 삶을 포기하고 여자포기각서를 썼다.그리고 그 길로 서라벌 황복사로 찾아가 출가 하였다.
그리고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원효는 도중에 해골물을 마신후 깨달음을 얻고 서라벌로 돌아온다.의상 혼자 중국에 도착하여 홈스테이를 하게 된다.
그집 주인의 딸이 한눈에 반해서 아버지를 통해 청혼을 한다.
그러나 의상의 구도심은 흔들림이 없었다.선묘는 마음을 돌려 스승과 제자의 인연되기를 소망한다.그후 선묘는 지극한 정성으로 의상의 유학생활을 뒷바라지 한다.
일본 고산사의 명혜스님은 화엄종 승려이다.그는 원효와 의상을 흠모하여 두분의 진영을 모시고 예배하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많은 미망인이 발생하자 그들을 불심으로 위로하기 위해 절을 지었다.그절의 이름이 선묘사이고 본존불이 선묘낭자이다.
미망인들이 선묘낭자의 불심을 배워 외로움을 불심으로 승화시켜 주기를 바랬다.
지금 선묘사는 없어지고 선묘신사만 남아 있다.
선묘낭자상은 현재 교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부석사 선묘각의 선묘그림도 이곳에 모셔진 선묘낭자상을 보고 그린 것이다.
1번 사진.‥목조 채색화로조성된 선묘낭자상이다.
일본에서는 의상과 선묘의 러브스토리를 오페라로 만들어 무대로 올린다.
2번 .‥사진 선묘사를 세우고 원효.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셨던 명혜스님.‥명혜는 12세기 일본의 화엄종 승려이다.그는 자신이 밤마다 꾸는 꿈을 기록으로 남겼다.
명혜스님은 19세부터 60세까지의 꿈일기를 기록하였다. 책 제목은 몽기이다.명혜스님은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따르자 자만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그는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내고 밤새 화엄경을 독송하였다.
사진 3번.‥일본에서는 선묘를 신라여인으로 기록한다.중국 산동성 장보고 선단이 개설한 신라방의 신라여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 도착한 첫날 의상을 만나는 선묘낭자 모습이다.
사진 4번.‥선묘는 옷을 준비해 절에 왔으나 의상은 신라로 떠난뒤였다.황급히 부둣가로 뛰어 오니 저만치 배가 떠나고 있었다. 선묘는 외쳤다.
내 마음속에 사심이 없다면 이 옷이 대사님께 닿게 하소서.‥하고 옷이든 함을 던지니 함이 허공을 날아 뱃전의 의상에게 전해졌다.
대사님의 뱃길이 안전하기를 비옵니다.이 몸이 용이 되어 대사님의 귀국길을 돕게 하소서.‥하고는 바다로 몸을 던졌다.
선묘의 몸은 커다란 용으로 변신하였다.
사진 5번 일본 고산사에 전해지는 의상대사 진영이다.
카페 게시글
보성대원사ㅡ석현장
일본의 화엄종 승려 명혜는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