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되는 왕국의 왕위 계승[왕상 15장]
[내용개요]
본장에서는 남북 왕국의 2,3대 왕들이 소개된다. 개중에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왕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거듭되는 남북 왕국간의 전쟁 기록은 서로의 적대감과 이질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본장은 아비얌의 유다 통치와(1-8절), 아사의 유다 통치(9-24절), 그리고 나답의 이스라엘 통치(25- 32절), 바아사의 이스라엘 통치 도입부가(33-34절) 소개되고 있어 남북 왕조의 각 각 2,3대 왕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전체 흐름 가운데 부각되는 것은 이 왕들의 개별적인 통치 내용보다 오히려 그들의 승계 혹은 교체 과정이다. 그 모습에 담긴 특성이 남북 왕조사 전체의 유형을 대표한다.
[강 해]
분열 왕국의 두 주역이었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죽음 이후에 두 왕국의 역사는 다음 통치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갔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두 왕국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부터 연대순으로 비교하는 식의 새로운 연대기 서술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 아비얌과 아사가 연이어 통치하였습니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나답과 바아사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피 비린내 나는 유혈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1. 유다 왕 아비얌의 통치
1) 유다의 왕이 된 아비얌
르호보암을 이어 그의 아들인 아비얌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18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비얌의 어머니는 마아가입니다. 그녀는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아가가 르호보암보다 훨씬 먼저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마아가는 압살롬의 딸이 아니라 손녀일 것이 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비얌은 3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습니다.
a. 유다의 왕이 된 아비얌(대하13:1-2)
b. 아비얌의 모친 미가야(대하13:2)
2) 아비얌의 통치
아비얌은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똑같이 악행을 범하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비얌을 크게 벌하시지 않은 이유는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이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견고하게 지켜 주신 것이고 아비얌의 악행에 대해서도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얌의 통치 기간 중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는 전쟁 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비얌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하기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13:2-20). 이는 아비얌이 비록 우상 숭배를 멀리하지는 못했어도 여호와마저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거둔 승리였습니다.
a. 다윗에게 주신 한 등불(왕상11:36)
b. 다윗을 인정하시는 하나님(왕상9:4)
3) 아비얌의 죽음
유다를 3년 간 다스렸던 아비얌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열조들과 마찬가지로 다윗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아사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솔로몬과 르호보암, 그리고 아비얌 등이 수많은 죄악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에 의해 남유다의 왕조는 계승되어지고, 또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a. 아비얌의 남은 사적(대하13:22)
b. 아비얌의 죽음(대하14:1)
2. 유다 왕 아사의 선정
1) 아사 왕의 종교 개혁
아비얌을 이어 유다 왕이 된 아사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종교 개혁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는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르호보암과 아비얌 등의 선왕들이 숭배하였던 우상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조모인 마아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든 죄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사 왕은 우상 숭배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산당을 모두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사 왕의 마음만은 여호와를 떠나지 않고 온전히 섬겼던 것입니다. 그는 부친인 아비얌이 여로보암과 싸워 얻은 전리품(참조, 대하13:16-17)과 자신이 애굽 사람을 쳐부수어 얻은 전리품(참조, 대하14:9-15)을 하나님 앞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a. 선한 왕 아사(대하14:2)
b. 우상 파괴(출32:20)
2) 바아사와의 싸움에서 승리
아사 왕은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바아사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경에 위치한 라마라는 성을 군사적인 요충지로 삼고자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사 왕은 유다에 남아 있는 보물들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바치면서, 그 대가로 이스라엘을 침략토록 요청하였습니다. 아사의 이 같은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바아사와 맺었던 약조들을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몇 개의 성읍들을 취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아사는 라마 성의 건축을 포기하고 수도인 디르사로 퇴각하였습니다. 아사 왕은 즉시 라마 성으로 가서 그 곳에 남아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이스라엘과의 국경 지대인 미스바 성을 견고하게 구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사 왕은 신앙적으로는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아람 왕을 의지한 불신앙 때문에 그는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 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때 아사 왕은 회개하기보다는 하나니를 옥에 가두는 죄악을 범하기도 합니다.
a. 인간을 의지하는 아사 왕의 잘못(대하16:7)
b. 아사 왕의 승리(대하16:6)
3) 아사 왕의 죽음
아사 왕은 말년에 발병이 났습니다. 이때에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의지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사 왕도 결국은 죽어 다윗 성에 장사되고 여호사밧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아사 왕은 비록 몇 번의 죄악을 행하기도 했으나 그 중심이 여호와 앞에서 일평생 온전하였기에 그의 삶은 높이 평가받았던 것입니다.
a. 발병 난 아사 왕(대하16:12)
b. 아사 왕의 죽음(대하16:14)
3. 이스라엘 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
1) 나답의 악한 통치
유다 왕 아사 제2년에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이어 그의 아들인 나답이 왕으로 즉위하여 2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나답은 선왕인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죄악의 늪에 빠뜨리는 악행을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a. 이스라엘의 왕이 된 나답(왕상14:20)
b. 선왕인 여로보암의 죄(왕상12:28)
2) 혁명을 통한 바아사의 즉위와 통치
죄악 된 여로보암의 왕조가 멸망케 되리라는 아히야의 예언은 바아사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바아사는 깁브돈이라는 곳에서 이스라엘의 왕인 나답을 죽이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는 유다 왕 아사의 즉위 3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바아사는 나답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과 관계된 모든 집안을 완전히 전멸시켰습니다. 이는 보복을 두려워한 바아사의 악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여로보암 집에 내렸던 하나님의 심판은 종결 짓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아사는 24년 동안 통치하면서 북이스라엘 왕들 중 세번째로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그도 여로보암이 저지른 악행들을 그대로 답습한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도 계속해서 우상 숭배에 몰입할 뿐이었습니다.
a. 혁명을 통한 왕위 찬탈(왕하15:14)
b. 여로보암에 대한 심판 예언(왕상14:14)
결론
한 뿌리에서 시작된 분열 왕국은 각기 제 길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우상 숭배의 죄악에서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아사 왕이라는 비교적 올바른 왕이 즉위하여 종교 개혁을 단행하기도 하였습이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가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 성취되어 여로보암 가계는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바아사도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우상 숭배의 죄악만큼은 계속하여 행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면서 끊임없는 혼란의 와중에 빠지게 됩니다.
[단어해설]
4절. 등불. 여기서는 후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8절. 아사, 유대의 3대 왕으로 우상 숭배를 철폐하고 여호와 신앙으로 회귀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15절. 구별한 것.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따로 구별하여 놓은 성물.
19절. 깨뜨려서. 원어 <rr"P;:파라르>는 '취소하다, 깨뜨리다'라는 뜻으로 쌍방간에 깨어진 계약을 일방적으로 피기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22절. 미스바. 예루살렘 북쪽 8km 지점의 고지대. 북이스라엘과의 접경으로 군사적 요충지며 과거 사무엘을 중심으로 회개 운동이 일어났던 종교 중심지이기도 하다.
29절. 쳐서. 원어 <hk;n::나카>는 '쳐죽이다'는 뜻으로 주로 하나님이 심판의 주체가 되실 때 사용된다.
[신학주제]
북왕조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북왕국의 왕조 교체가 보여 주는 바, 유혈과 찬탈의 참상은 하나님의 통치권에서 벗어난 자들의 자중지란의 양상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스스로의 욕심대로 혼란과 파멸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신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선지자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겸손함도 찾아볼 길이 없다. 단지 자의적인 행동과 상충하는 피해 관계의 격돌만이 보일 뿐이다. 바아사가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하면서 행한 첫 조치는 여로보암 일족을 멸하는 일이었다. 이는 물론 살아 남은 자의 복수 가능성을 사전 봉쇄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바아사는 군인 출신답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놓인 길로 들어섰기에 모든 안전 조치는 무용지물이다. 바아사를 비롯한 북왕조의 근본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영적교훈]
바아사가 칼의 사람인 것과 그가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께로부터 세움받지 않고 칼로써 왕권을 탈취한 자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왕권이 아닌 칼의 왕권은 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듯이(참조, 마26:52) 칼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 칼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