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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 가득한 섬 -, 신안 만재도(晩才島)!
탐방개요
ㅇ 언 제 : 2021. 6. 28(월) - 6. 30(수)
ㅇ 누 가 : 섬 & 인 4명
ㅇ 어 디 : 만재도 / 전남 신안군 흑산면 소재
ㅇ 날 씨 : 맑음
ㅇ 회 비 : 270,000원
ㅇ 여 정 : - 1일차 : 목포여객터미널 – 목포 시화마을 - 만재도
- 2일차 : 만재도 트레킹(앞산 - 마구 – 물센)
- 3일차 : 만재도 – 목포여객터미널 - 목포역사문화거리
탐방정보
만재도(晩才島)
다도해국립공원 끝단 흑산군도(유인도 11개, 무인도 285개)에 속한 자그마한(면적 0.59㎢, 해안길이 5.5km) 섬입니다.
원래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예속됐었으나, 현 행정구역은 신안군 흑산면 만재리입니다.
국도(菊島), 삼태도(三苔島), 녹도(鹿島), 흑도(黑島), 외마도(外馬島), 내마도(內馬島), 백서(白嶼), 제서(濟嶼), 간서(間嶼) 등이
작은 군도(群島)를 형성합니다.
목포 104km(서남쪽), 진도 60km(북쪽), 흑산도 45km(남서쪽), 가거도 30km(남서쪽) 정도 떨어져있습니다.
육지와 멀어 ‘먼데’섬이라 불리다가 해질녘에 고기가 많이 잡힌다하여 ‘만재도(晩才島)’라 했다는군요.
해식애가 발달한 길게 뻗은 T자형 산지구릉(山地丘陵)으로 동쪽사면 저지대에 취락지역이 있습니다.
어종(홍합, 전복, 우럭, 장어 등)이 풍부한데다가 돌미역과 다시마 등이 채취되어 대부분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하지만,
소규모 작물(보리, 고구마, 콩)도 생산합니다.
선편이 불편했으나 2021년 5월부터 직항편이 생겨 목포와 일일생활권이 되었습니다.
20여 세대 40여 주민이 살고 있다죠.
탐방여정(앨범)
1일차(6. 28/월)
가자 섬으로~
만재도행(晩才島行) -.
‘섬&인’ 4명이 의기투합했습니다.
만재뱃길이 단축되었다는 소식에 또 역마살(^^)이 꿈틀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객선이 계류하지 못해 바다에서 종선(從船)으로 옮겨 타야하느라 위험과 불편이 많았는데, 2021년 4월 22일
접안시설이 준공되었다는 소식입니다.
2019년 77억이 들어가는 밀착형생활SOC사업인 ‘어촌뉴딜300’에 선정되면서 만재도항에 접안시설(40m)과 선착장(53m)이
생긴 것입니다.
전기(1996년)와 스마트폰(2010년)도 늦게 상륙한 외딴 섬이었는데, 목포와의 일일생활권이 해결되자 주민들은 300년 한(恨)을
풀어줘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는군요.
천혜의 풍광과 청정해역으로 일부 꾼들에게만 알려졌던 만재도가 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촬영하면서 일반에게
알려졌는데, 이제 직항 여객선까지 생기자 낚시광풍에 휩싸였다는 소식입니다.
산책길까지 정비하여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기에 모두 들떴습니다.
그러나 섬 나들이는 날씨를 비롯해 여전히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배 시간을 고려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2박 3일 일정이 되었습니다.
자투리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합니다. (계룡출발/08:30시)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
목포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여 예매부터 확인합니다.
노인네도 왕복 89,700원으로 꽤 비싼데요, 목포항에서 15:00시에 출발하여 만재도에 17:30시 도착하는 ‘New queen’호입니다.
Ticketing을 완료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오후 출항으로 해무(海霧) 걱정도 내려놓습니다.
그동안 여러 섬을 거치느라 6시간여가 걸리던 만재도행 선편이 2시간대로 단축됐으니 꾼들이 침 삼키는 건 당연합니다.
오가는데 이틀에다가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며칠은 못나올 테니 역마살 낀 사람도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던 섬이었는데,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젠 해상교통편개선에 따른 어촌관광활성화로 소득증진까지 기대되어 섬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죠.
터미널을 나와 다음 여정을 위해 실실 도보로 움직입니다.
오찬
‘항구는 맛있다~!’
오랜만에 목포에서 느긋한 점심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조선쫄복탕’이란 집구석인데, ‘허영만’(TV조선/백반기행)과 ‘김영철’(KBS/동네 한 바퀴)도 다녀갔다는군요.
조금은 찝찝하지만(^^) 그래도 찾아가봅니다.
왜냐면 좀 사람이 모인다싶으면, 초심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꽤 고풍스런(?) 외관에서 맛 집 분위기가 풍기는데요, 우린 지리(16,000원)를 택했습니다.
상큼한 밑반찬이 무뚝뚝함을 상쇄시켜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계속 숟가락이 가게 되는 중독성 국물입니다.
양념된 부추를 섞어 먹으니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떠 넣을 때마다 나오는 카악~소리에 이슬이(^^)가 저절로 주둥이를 엽니다.
여행 첫 끼부터 맛있는 음식을 대하니 모두 환해집니다.
목포 시화마을
식당 바로 뒤에 목포시 서산동 ‘시화(詩畵)마을’이 있습니다.
계룡에서 일찍 출발한 이유가 이곳을 들리기 위해섭니다.
목포외곽 섬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형성한 마을이라는데요, 직접 지은 주민들의 시(詩)와 목포지역 화가들의 그림으로
꾸민 골목이 유명하다죠.
‘연희네’슈퍼가 골목의 시작입니다.
옛 모습 그대로라는데,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제작한 영화 ‘1987’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허물어질 듯 오래된 건물에 낡은 포스터들이 옛 추억을 소환해냅니다.
3개 골목 중에서 ‘바보마당’길로 들어섭니다.
가파른 골목에 걸린 ‘인문도시 서산동’이란 표지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계단 따라 천천히 오르니 고만고만한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네요.
어촌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기리기 위해 지역주민과 시인/화가들이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재생해냈답니다.
최근 방영된 MBC 프로그램 ‘간이역’에도 나왔던 곳입니다.
창가 이야기소리에 귀가 쫑긋해지고, 구수한 찌개냄새에 코도 실룩거려진답니다.
오감만족 -, 느낄 준비됐습니다. ㅎ
바보마당
평지에 자리한 목포지만, 서산동과 온금동은 대표적 달동네입니다.
낡고 좁아 하염없이 빈집만 늘어가는 건 이곳도 예외가 아닌데요,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자락
집들마다 7-80년대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원래 보리밭이었다는데, 그래서인지 당시 보리타작을 했던 ‘보리마당’도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마당이라 하여 ‘바보마당’이라고도 부릅니다.
마당에서 바라보는 포구경관이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도 하네요.
바다 View가 참 아름다운데, 영암과 고하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의 고된 인생이 자서전 같은 한편의 시(詩)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합니다.
2019년 9월 개통한 목포해상케이블카도 하늘 금 그으며 지나가네요.
탑승거리 3km가 넘어 왕복 40분이나 소요된다죠.
언제 유달산과 고하도를 묶는 투어계획을 함 짜봐야겠습니다.
조금새끼
씨줄과 날줄로 얽힌 골목 마디마디에 뱃사람들의 애환이 맺혀있습니다.
남향이라 언제나 따뜻하여 ‘따스하다’의 ‘다순’과 바닷가 ‘후미진 곳’의 ‘구미’가 합쳐져 ‘다순구미’로도 불립니다.
어부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자, 레트로(Retro) 감성 찾는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랍니다.
화려한 미문(美文)은 아니지만, 진솔한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문장들과 투박한 그림들이 벽을 메웠습니다.
시인들의 정갈한 시어(詩語)가 옛 풍경과 정서를 담았다면, 주민들의 투박한 작품은 모질고 힘들었던 옛 시절을 추억해냅니다.
‘조금새끼’는 이곳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고기잡이가 시원찮은 조금(물때) 땐 어부가 집에서 쉬었는데, 이때 금실 좋은 부부들의 노력으로(ㅋ) 생겨난 아이들을
‘조금새끼’라 불렀다죠.
풍랑 만나 돌아오지 못해 제삿날이 같은 사람도 많다는데, 그 한(恨)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조금새끼’들이 떠난 골목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모정(母情)만 가득합니다.
낮은 지붕 너머로 목포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집니다.
옛 추억에 그리움만 미어집니다.
노인들뿐이라는 마을은 머지않아 사라질지 모른다는데, 그래도 목포가 발전하여 이곳에 사는 이들의 삶이 솔찬히
변해부렀으면 좋겠네요. ㅎ
출항
다시 연안 여객선터미널로 돌아와 출항 대기합니다.
다도해여행은 쾌속정보다는 느려터진 차도선(車渡船)을 타야 제 맛인데, 우리가 탈 배는 남해고속의 호화스러운(^^)
‘New queen’호입니다.
우리나라 서남단 끄트머리인 ‘가거’도까지 가는 배입니다.
섬이 1004개나 되어 ‘천사’섬으로도 불리는 전남 신안군에서 가장 멀었던 만재도 -.
지금이야 쾌속선이 쌩쌩 달리지만, 만재도행 배편은 제일 길었기에 마음까지 멀어졌던 다도해 바닷길의 종점이었습니다.
쪽빛바다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그 섬으로 갑니다.
파시(波市)와 함께 섬의 영화(榮華)도 사라졌다지만, 그래도 늘 마음속의 그리움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섬들을 거쳐야했기에 울릉도(최동단), 백령도(서북단), 제주도(최남단)보다 더 걸렸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늘의 섬’이라 했을까요.
잔잔한 바다일 땐 지루했고, 파도가 높게 일면 멀미 때문에 반송장이 되었습니다. ㅎ
게다가 선착장이 없어 위험한 도선환승(渡船煥乘)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파도 높은 날엔 하선하지 못해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여객선이 만재도 먼저 들리고 가거도로 향합니다.
그동안 무려 5시간이 넘는 뱃길로 낙도(落島)의 대명사가 되었던 만재도가 일일생활권으로 완전 딴 세상이 된 것입니다.
따분해서, 맥주1캔 땄습니다. ㅎ
만재도 선착장
짜잔~, 만재도 입도~!
선착장이 없어 종선(從船) 이용해 사람과 짐을 날랐던 상륙작전(?)은 이젠 옛이야기입니다.
주민이 거주한지 320년 만의 쾌거라네요.
삶의 질이 높아진 주민들에겐 축복이요, 여행길 열려 들뜬 이들에겐 행운입니다.
다시 가거도(可居島)로 향하는 ‘New queen’호와도 잠시 작별입니다.
시끄럽던 엔진소리와 사람소리들이 해맑은 자연의 소리에 묻힙니다.
고개를 들어 산을 올려다보니 섬전체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였는데요, 선착장 위로 보이는 고즈넉한 마을도 정겹습니다.
설렘을 펌프질하던 파란 마을지붕들도 모두 높은 돌담 안으로 숨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거셌으면 돌담이 성벽 같이 보일까요.
커다란 테트라포드(Tetrapod)가 쌓여 있는 옹벽 옆으로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몽돌해안이 펼쳐집니다.
가장 먼저 외지인의 눈길을 빼앗는 ‘앞’짝지해수욕장입니다.
섬엔 이곳을 비롯하여 앞산 아래 ‘건너’와 마을남쪽 벼랑아래에 있는 ‘달 피미’ 등 3개의 짝지해수욕장이 있다고 하네요.
만재마을
선착장까지 마중 나온 씩씩한(^^) 민박집주인 따라 졸졸 움직입니다.
미로(迷路)처럼 아기자기한 돌담 사이로 마을길이 이어집니다.
tv N에서 촬영한 ‘삼시세끼’ 할머니집도 지납니다.
공중파가 아님에도 시청률이 10%를 넘어설 정도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프로입니다.
하지만 신안사람들도 잘 모르던 외진 섬을 최초로 외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KBS 2TV 드라마 ‘봄의 왈츠’였다죠.
청산도서 거의(85% 가량) 촬영했지만, 이곳에서도 10% 정도 찍었다고 하네요.
몇 분밖에 안 되는 촬영분량임에도 섬을 꾼들에게 알리기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접근성이 좋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답니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생태환경이 잘 보존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상대로 조금은 불편한 민박집입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만재도’펜션을 찜할까하다가 편리함보단 섬 맛을 찐하게 느끼고 싶어 일부러 택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조금은 불편해도 섬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꾼들입니다. ㅎ
만재도이야기
이틀간 묵을 민박집에 보따리 내려놓고, 쌀 곳과 씻을 곳도 살핍니다.
슬슬 걸어 나와 만재마을을 눈에 넣습니다.
바다가운데 외떨어져 ‘먼데’섬이라고도 했다지만, ‘재물을 가득 실은 섬’이라 하여 한때 재물 ‘재(財)’를 썼을 만큼 돈이 많아
보물섬으로 불릴 정도였다죠.
주민들은 만재도의 황금기를 1930~1960년대라 회상하는데, 당시는 근해에서 전갱잇과의 ‘가라지(아지)‘가 대풍을 이루던
시기였답니다.
고등어보다 조금 큰 생선으로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했다는데, 유독 만재도 부근에 많아 노를 저으면 걸리적거리거나 뱃전에
부딪힐 정도였다고 하네요.
온 민족이 가난하던 시절에도 이곳은 부자동네였는데, 애들이 가라지를 들고는 가게에서 사탕과 바꿔 먹었다죠.
당시 황금기에 이 작은 섬에 백여 가구가 넘게 살며 자녀들을 일본 ‘메이지’대까지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는데, 상/하태도와
가거도 등 인근 섬의 딸 가진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만재도로 시집보내길 원했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 가라지가 1960년대 초 만재도 근해에서 갑자기 없어지면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던 풍족함도 안개처럼 사라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수백여척의 어선들로 성시를 이루던 ‘돈’섬은 당시 흥청대던 기생집이야기만 전설처럼 남겼습니다.
바람 불어 뱃길 막히면 식량부족으로 아사(餓死)할 지경까지 이르자 진도군수가 반강제로 이주시킨 시절도 있었다고 하네요.
여느 농어촌처럼 이곳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고, 젊은이들도 떠나버려 이제 노인들만 남는 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먹을 우럭 정도는 있겠죠. ㅎ
만찬
섬에서 맞이하는 소박한 섬밥상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해산물이 그득합니다.
만재도가 건네는 자연의 소리 가득한 해산물 밥상에 배가 볼록해졌습니다.
철에 따라 반찬이 달라진다는데, 운 좋으면 자연산 회도 맛볼 수 있답니다.
화~ 미역채취 기간이라더니 미역국이 죽여줍니다.
아무래도 갈 때 좀 사가야겠습니다.
두툼한 살점을 선사하고는(?) 장렬하게 전사한 생선들 덕분에 마냥 행복합니다.
가져온 양주가 거침없이 줄어듭니다.
‘후반기 삶은 침묵이요, 비움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말을 지키지 못하게 생겼습니다. ㅎ
낙조의 꿈
낙조(落照) 보러 뒷산에 오를까 하다가 내일로 미룹니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을 일부러 볼 필요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국토 최 서남단에 왔으니 한번은 봐줘야 합니다.
태양이 붉은 입술 적신 채 바다로 빠져드는 낙조를 그려봅니다.
서럽도록 아쉬운 우리네 인생의 일몰도 노을에 잠깁니다.
버리지 못한 끝없는 욕망과 가슴앓이를 파도로 씻어냅니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들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를 셈해봅니다.
붉게 물들인 하늘을 보며 카타르시스(Catharsis)에 젖습니다.
끝이 없는 바다는 오늘도 말이 없습니다.
만재도 첫날밤
만재도의 첫날밤이 익어갑니다.
예전 같았으면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을 텐데, 늙으니 시들해집니다.
지난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바닷가에서 별을 헤며 심성 착하게 자랐다고 박박 우기지만, 인정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촌 때가 덕지덕지하던 20대 초반에 도피하듯 고향 떠나 구태와 맞서며 부끄러움 없이 한생을 살았노라고 떠들어대지만,
이 또한 검증된 바 없습니다. ㅎ
30여년 국가의 녹(祿)만 축내다가 퇴직하여 열심히 늙다보니, 이젠 그늘뿐입니다.
삶의 무게로 부모를 원망하며 살았던 소년이 어느덧 아버지의 세월을 뛰어넘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후회를 접고, 남겨진 여생 유유자적(悠悠自適)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마살을 핑계로 가끔씩 보따리 꾸리기를 좋아합니다.
사람 일중에 하고나서 후회하지 않는 게 샤워와 기도, 그리고 여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ㅎ
변화를 두려워하여 익숙한 곳과의 결별을 겁내거나, 낯선 곳에서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면 뜬금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듭니다.
입 닫고 지갑 여는 방법만 터득하면 즐거움은 널려있습니다. ㅋ
인생의 밀물은 짧고, 썰물은 길다고 했던가요.
노인네들의 인생스토리는 삶을 다독이는 파도의 이야기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ㅎ
밤을 지새워도 지치지 않는 착한(?) 메시지들입니다.
다음날 오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