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5. 깨우쳐 가는 나의 신앙 - 2
11 전주교회에서 강순길씨, 변예자씨와 함께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 전도 활동을 시작했다. 첫째로 하늘이 같이 해주셨고 또 평소에 남의 비난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데 별다른 어려운 일이 없었다. 내가 나가는 교회라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평을 들었고 시댁에서도 신임을 받고 있어서 시어머니, 두 큰 동서와 조카들이 교회에 나왔다. 12 다른 식구들도 열심히 전도를 해서 2~3개월 만에 30여 명의 식구가 모였다. 처음에는 박헌휘씨 집 이층에서 예배를 보다가 우리 집으로 교회를 옮겨 예배를 보았다.
13 나는 교회를 위해서, 또 궁극적인 진리를 찾았다는 기쁨으로, 나의 정성과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 하더라도 부족한 마음뿐이었다. 한 선생을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하게 하고 선생님 대신자로 정성껏 받들었다. 14 또한 일 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와 그보다 약간 작은 것 두 개를 팔아서 전주교회를 사는 데 헌금했다. 이강철씨, 강순길씨, 변예자씨 , 변완복씨(인재병원장 부인), 신신애씨(박영숙씨 모친) 등이 중심이 되어 헌금을 많이 하게 되어 대문(大門)이 둘이 있는 아주 크고 좋은 한옥 기와집을 샀다.
15 초창기부터 이런 훌륭한 부인 식구들을 중심 삼고 출발했기 때문에 전주교회는 부자 교회라고 소문이 났다. 서울 본부교회는 그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16 선생님께서도 고생을 하시고 계셨지만 할머니들을 비롯해서 일찍 나오신 분들이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안타까워 겉옷이나 속옷감을 필로 떠다 드렸다.
17 좀 젊은 부인 식구들에게는 내가 갖고 있던 비단옷 10여 벌을 나누어 주었다. 핍박을 받으면서 선생님을 모시고 남이 아니라는 이 길을 따라오신 분들에게는 고개가 숙여지며 어떻게 보답해야 좋을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18 우리 집에 5~6년 동안 데리고 있던 식모 아주머니가 내가 교회에 모든 것을 다 바치다가 혹시 망하지 않나 생각했었던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친가에 가서 고해바쳤다.
19 영문을 모르는 나의 양친은 처음에는 걱정이 되셨지만 원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한 분들이어서 부친은 “본인이 좋다고 하면 그만이지” 하셨고, 모친은 다른 교회와 달리 이 교회는 유난히 소문이 많으니 잘 알아보고 나가라고 조용히 충고하면서 내 눈치만 살피고 반대하지는 않았다. 20 그래서 이 길을 따라 나오는데 양가 어느 곳도 반대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식구들이 당하는 사탄 역사가 전연 없고, 분에 넘치도록 순탄했다. 나의 양친은 나중에 다 식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