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를 짓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올해도 몇 차례 다녀갔지만, 이왕이면 제주 ‘하논습지’는 일부러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로 미루어 두었던 터다. 육지에는 가을이면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먼 곳에서, 태풍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거센 비바람이 도착하기 전 먼저 서둘러 떠나왔다. 화산섬이라 물이 잘 빠져 벼농사를 짓기에 부적합하다. 그런 이유로 특별히 감귤이 주산지인 이 섬에서 논농사란 생소했다. 제주도는 웬만큼 곳곳을 다녀봤지만 아직까지 볏논을 거느린 논베미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황금벌판을 펼쳐내는 풍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요 며칠 들어 부쩍 아침저녁으로 찬 기온이 느껴진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벌써 익은 벼를 추수하는 풍경을 방영하니 조바심이 난다. 일 년을 기다렸는데 찾아가지 못한 사이에 가을걷이를 끝냈을까 봐 마음을 졸였던 참이다. 이번에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벼농사를 짓는 하논습지를 거치게 되는 올레 코스를 걷기로 했다. 물이 잘 빠지는 다른 지역과 달리 퇴적층이 쌓여 물이 거의 안 빠져 벼농사를 짓기에 좋은 지형이라 한다. 즉, 제주도에서는 유일한 곡창지대라 하겠다.
코스 시작부터 오르막과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길을 걷는다. 울창하고 비좁은 음습한 숲길을 걷고 나서야 도착한 하논습지다. 마주한 들판에는 잘 익어가는 벼들이 노란색을 띠고 있다. 벌써 청량감이 느껴지고 맑은 가을 정취가 완연하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튼실하게 여물어가는 이삭들이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잘 지은 농사는 풍년으로 보인다. 육지의 어느 가을 들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비탈진 곳에는 무성한 밀감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분화구를 에워싸고 있다. 마치 푸른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둘러서서 귀한 황금빛 들판을 지켜내고 있는 듯하다. 노란 벼와 초록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있는 밀감 과수원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그득하고 넉넉해진다.
요즘 농가는 옛 시절과 달라 쌀농사도 활발하게 연구되어 수확도 넘쳐난다. 더구나 경제가 좋아져 누구라도 쌉밥을 먹는다. 먼 옛날 제주 사람들은 벼농사를 짓지 못하는 환경인지라 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좁쌀을 끼니로 하던 시절이었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벼농사를 지었던 농부는 어떤 분일까 싶다. 어떤 집안의 내력으로 귀한 논을 소유하고 농사를 지어 왔을까. 특별하게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그들의 자부심은 또 어떠했을까. 까칠한 조밥보다 윤기 자르르한 하얀 쌀밥을 먹었을 그들의 행적마저 궁금하다.
논마지기는 그리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농사를 잘만 지으면 우리 식구는 일 년 내내 쌀밥은 충분하고 넉넉히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큰 일손이 없는 처지다 보니 모든 농사일은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이 없으니 별다른 경제 능력이 있을 턱이 없다. 가을 추수가 끝나자마자 수확한 알곡들은 이집 저집 품삯으로 계산되어 나갔다. 이어지는 보리농사를 지을 비료며, 가정생활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역할은 찧은 쌀로 해결하였다.
그러자니 생일이나 제사가 아니면 쌀밥은 흔하게 먹지 못했다. 그래도 뜸 들어진 다된 밥솥 뚜껑을 열면 보리밥 한가운데 하얀 쌀밥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돌게 했던 쌀밥은 방학 때면 객지에서 돌아오는 오빠나 막내인 남동생 몫이었다. 당년히 남자들만 먹어야 되는 것으로 여겨 별 불만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엄마만큼 아들과 딸을 차별했을까 싶다. 그때 엄마의 상황이 아들은 자신이 살아내야 하는 모든 꿈과 희망이었고 이유였으리라. 들판을 바라보며 먼 생각에 젖어 든다. 차별했던 엄마에 대한 섭섭함은 이해되면서 그래도 떠올릴 수 있는 정겨운 기억들이 있기에 추억할 수 있어 좋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요즘처럼 벼가 여물어 고개를 숙일 때다. 어린 나를 무시하는 듯 겁 없이 나락 위로 날아들던 얄미운 참새 떼를 쫓았다. 논두렁을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내 어린 모습도 떠오른다. 벼가 익어 추수할 때까지 나에게 주어졌던 힘에 부쳤던 큰 임무였다.
마침 슈퍼태풍 ‘찬투’가 북상 중이란 예보다. 태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되지 않고 무사히 부산으로 돌아갈까 하는 걱정보다 다 지은 귀한 벼농사가 피해를 입을까 염려가 된다. 예측한 태풍의 진로가 바뀌어 제주도를 피해 갔으면 좋겠다. 마음먹고 계획해서 찾아온 곳에서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오래전 사라호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묶어 세우던 내 어머니의 고달팠던 모습이 보여 가슴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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