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건강 백 년 길/정동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어디든 멀리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서울역에서 공항 전철을 탄다
사람들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설렘과 기대에 찬,
보람과 뿌듯함이 깃듯 얼굴들로
어디론가 떠나고 또 다녀온
행복한 모습이 나를 물들게 한다
공항 철도를 타면
하늘길도 바닷길도 육지의 길도
골라서 갈 수 있는,
여행객들에겐 참 좋은 노선이다
오늘은 공항도, 선착장도 아닌
육지의 깊은 숲속에 들기 위하여
공항 전철에 몸을 실었다
운서역, 영종도 백운산 서쪽의
건강 백 년 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역에서 내려 광장 왼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닿는 숲길로
곧장 찾아 들어가서
양말과 신발을 벗어 가방에 담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비에 젖어 촉촉한 마사토 길
발바닥 간질이는 잔 모래와
콕콕 자극을 주는 굵은 모래
풀잎에,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
인적 없는 초록 숲의 터널로
편도 3.5 킬로미터의 오솔길은
아늑하고 포근한 오월의 선물
긴 숲길의 지루함을 떨치려고
음악과 시를 들으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의 움직임과
수목마다 내세우는
신비롭고 독특한 고유의 향기는
응시하며 감탄케하는 자연의 선물이다
원래 영종도는 4 개의 섬인
신불도, 삼목도, 용유도와 합쳐
큰 영종도로 하늘의 관문을 품었다
삼면의 바다와
철책으로 둘러싼 교통의 섬에
천혜의 국제공항으로 탄생 전
처음 공항 부지를 매립할 때
수심이 얕고 뻘도 깊지 않으며
뻘 밑엔 단단한 암반으로
자연 침하도 5 cm 이하로
공항 부지로는 최고라고
미국 연방 항공청에서 인정하였단다
영종도는 건강 백 년 길 외에
치유 하늘길, 힐링 바닷길도 있어
시간 나면 다 걸을 수도 있으나
이제 겨우 건강 백 년 길과 친해져
지루하거나 싫증 나지 않아
충분히 즐겼다고 느낄 때까지는
이 숲길을 자주 찾아오리라
지난 4월 벚꽃이 한창일 때
이 길은 참으로 황홀했으리라
또 참나무길, 철새가 보이는 유수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그리고 정원사들의 예쁜 작품들이
조경 자격증을 가진 숲해설가로
심심할 겨를은 없었다
길 끝에는 생태 유수지 공원으로
작은 연잎이 수면을 덮었고
가장 자리엔 노란 꽃창포가 한창,
화투장 5월의 열 끗의 그림처럼
인조 목재 울타리와 길이 조성되어
잠시 5월의 화투 속으로 나도 모르게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내로 나가는 길을 찾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오며
비 그친 흐린 날의 오후 산책을
바다와 숲이 어울리는
건강 백 년 길을 탐색하면서
먼 여행 뒤의 피곤처럼 노곤함을 즐기며
공항 전철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