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바로가기)에서 소개한 것처럼
한성백제박물관 제1전시실에서는
구석기~청동기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
삼한과 마한(54개 부족 국가로 이루어진 나라로 삼한 중 하나) 이야기를 접했다.
제2전시실로 올라가면 마한 54개국의 하나인 백제국이
점차 커져 고대국가로 성장한 '백제'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선 백제 건국설화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백제·고구려·신라 3개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김부식 등이 1145년(고려 인종 23년)에 당시까지 전해오던
여러 문헌을 참고하여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가 한국 고대사를 알 수가 있었을까?
이러한 기록유산은 한 나라의 역사를 증명하는 동시에
미래 세대에 역사적 교훈을 주기 때문에
매우 가치있는 문화유산이다.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설화에 의하면
백제는 기원전 18년 졸본부여에서 내려온 온조 일행이
한강 남쪽 위례성에서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시실 벽 한편에 「삼국사기」의 내용과 번역본을 읽어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하들이 아뢰었다.
"
강 남쪽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수를 띠처럼 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혔으니
이렇게 하늘이 내려 준 험준함과 지세의 이점은 얻기 어려운 형세입니다.
여기에 도읍을 세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삼국사기」 백제본기 권23 온조왕 즉위년
이 모형은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이자,
졸본부여에 살던 비류·온조 왕자가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 뒤로는 백성과 신하들이 따르고 있다.
형 비류는 나라를 세울 만한 땅으로 미추홀을 택하고,
온조는 위례성을 택하여 백제를 세웠다고 한다.
전시실에는
한성의 옛 풍경을 보여주는
디오라마와 그림, 옛 지도,
한성의 북성과 남성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경질무문토기(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민무늬토기보다 단단하며 무늬가 없는 토기),
계란모양토기, 깊은 바리, 병 등 다양한 모양과 쓰임새의 토기와
뼈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발굴 조사 전인
1950년대 이후 촬영된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왕릉구역인 석촌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가락동 전경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옛 모습을
사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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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제사를 행한
'풍남토성 경당지구 44호 건물' 복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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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
백제인들의 복식을 일러스트로 재현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중국 역사서인 「남사」와 「북사」에서
‘백제의 옷은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백제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중국과 일본에는 당시 백제인을 묘사한
그림 자료가 남아 있다 하는데
그 하나가 '양직공도(梁職貢圖)'이다.
양직공도(梁職貢圖)는
중국 양나라의 원제 소역(508-554)이 왕자 시절에
조공 온 24개국 외국인 사절의 모습과
관련 풍습을 소개한 그림이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엔
옛 사람들의 모습을 전혀 알 수가 없기에
그림 등으로 남아있는 자료들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맨 오른쪽이 백제 사신의 모습인데
다른 나라의 사신들에 비해
복장히 단정하고 젊고 훤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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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직공도(梁職貢圖) | 중국 북송 11세기, 중국 국가박물관 소장
양직공도를 모사한 그림인 '당염립본왕회도'에서도
백제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복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신라사신은 화랑을 연상시키는 청년의 모습,
백제사신은 여기서도 단정한 선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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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염립본왕회도 | 중국 당 7세기,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신라사신(왼쪽에서 2번째), 고구려 사신(가운데), 왜국사신(왼쪽에서 5번째)
백제 사신(오른쪽에서 세 번째)
3~5세기에 백제는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는데
우리나라 곳곳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금동신발, 고리자루큰칼,
도자기, 장신구, 거울 등을 통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각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물건들은 새로 얻은 지역의 기득권 세력을 회유하는데
하사한 고급물품(위세품)이며,
금동신발은 무덤을 만들 때 죽은 사람의 발에 신겼던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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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람들의 주방 도구와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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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에서 나온 토우, 금동관음보살입상
무덤에 대한 내용도 빠트릴 수가 없다.
먼저 작성한 글(백제고분군을 찾아서)을 통해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에 대한
내용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에서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을 보았으나
내부의 모습은 알 수가 없었다.
글로 설명된 무덤 내부를 짐작해 볼 뿐이었다.
전시실에서 모형을 통해
무덤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한성백제박물관 제2전시실을 먼저 방문한 뒤
백제 고분군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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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식 돌무지무덤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전시 모형
(돌무지무덤은 왕릉인 석촌동 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
아래 사진의 무덤은
경기 화성 백곡리 5호분을 참고하여 제작한
'돌덧널 무덤' 모형이다.
긴 네모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돌로 덧널시설을 만든 다음
나무널을 넣고 돌을 덮는 구덩식 무덤으로
백제에서는 대개 3세기 이후에 확인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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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덧널 무덤
돌로 방을 만들고 한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출입시설인 널길을 만들어 추가장이 가능한 ‘돌방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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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방 무덤
중국, 일본의 여러 왕조와 활발히 교류한
글로벌 백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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