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가을이네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날이 추워져 있었다. 사람의 체온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기온은 놀라울 정도로 뚝 떨어져, 다른 때였으면 충분히 따뜻하고 더웠을 온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춥다며 덜덜 떨고 있었다. 어깨를 가리는 거라곤 걸쳐진 끈 하나 뿐인, 소매가 없던 내 상의에는 어느새 선선한 바람에 펄럭이는 소매가 붙었다. 머리 끈 두 개로, 혹은 U자 비녀로 뒷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올려 묶었던 머리카락은, 차가운 공기로부터 내 맨살을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 위로 흘러 내렸다.
마치 열병을 앓는 것만 같았던 힘든 여름은 그렇게 한 순간에 끝이 났다.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항상 있었던 일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해 왔고, 그렇게 말해왔는데 이제와 ‘견딜 수 없다’고 느꼈다면 넌 충분히 한 거야. 그만큼 지친거야.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일사병과 열사병의 위험이 있으니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라고 경고하는 문자가 내 핸드폰을 울릴 정도로 더운 날들이었다. 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드러난 팔과 다리,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라고는 최소한의 것들뿐인데도 그것마저 벗어 던지고 싶었다. 조금만 밖에 나가 서 있으면 등줄기를 타고 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노란 햇빛이 그대로 닿는 살갗이 점점 그 온도를 올려 화끈거리고 결국엔 따끔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기록적인 폭염이라고는 했지만, 견딜만한 햇살이었다.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에어컨을 틀어 놓은 채로 있다가, 학교에 가봐야 할 시간이 되면 슬금슬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분명 밖은 더웠지만 몇 걸음 걷지도 않아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시원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원함을 넘어서 추운 내부에 슬쩍 에어컨을 껐다가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또 바로 앞에 학교 건물이 있었다. 로비나 동아리 활동실이나 필요 이상으로 에어컨이 켜져 있어서 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 그 잠깐에 화끈 거리는 맨살을 에어컨 아래서 찬바람에 식히다보면 어느새 밖이 얼마나 더웠는지 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두 달 만에 겨우 얻었던 휴가, 모르는 척 외면했던 더위를 깨닫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오랜만에 전신 거울 앞에 서니 피부 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물기를 다 닦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줄기를 따라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땀이겠지. 가장 세게 틀어 놓은 선풍기 앞에 앉아 있어도 불어오는 건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한껏 데워진 바람이었다. 축 몸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핸드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왜 전화했어? 귀찮다, 정말.’ 항상 있던 일에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라. 여름은 항상 더웠다. 작년도, 그 전 년도에도. 나는 민소매에 짧은 바지를 입고 선풍기 앞에 앉아서 이렇게 축 늘어진 채로 방학을 보내고는 했는데. 지금이나 작년이나 그 전 년도나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분명 올해가 유난히 덥기는 했지만, 이렇게 더우나 저렇게 더우나 더운 건 똑같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는 왜 이럴까. 이번엔 왜 그럴까. 너는 내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멍해진 정신으로, 뒤죽박죽 뒤틀린 머리로, 울렁이는 속과 아득해지는 시선과 둔하게 떨리는 고막으로 널 향했다. 나는 그저 헛웃음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날이 추워지는 건 한 순간이더라, 정말. 하룻밤 자고 일어났던 것뿐인데 너무 추워서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창문을 닫고, 방문을 닫고, 온갖 잡동사니와 책과 종이로 엉망인 방의 구석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이불을 몸에 휘감았다. 그래도 아직은 짧은 옷에 드러난 맨살이 부드러운 이불에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