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전설 - 애달픈 국토의 막내,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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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12. 22:14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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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전설
애달픈 국토의 막내, 울릉도
울릉도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기로는 신라 지증왕 때의 일이다. 지금의 강릉인 옛 하슬라주〔何瑟羅州〕의 영주인 ‘이사마루〔異斯夫〕’가 이 섬을 정벌한 데서 비롯된다. 당시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던 이 나라는 우해왕(于海王)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신라 장수 이사마루에게 항복하는 과정이 매우 극적이다. 이사마루 군사가 처음 울릉도에 상륙했을 때 이들은 이 작은 섬을 손쉽게 정벌할 수 있으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험준한 지형에서 거센 풍랑과 싸워 온 이곳 주민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예상외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이사마루는 기발한 술책을 쓰게 된다. 곧 이 섬에는 맹수가 없는 것에 착안하여 나무로 사자상을 만들어 섬사람들을 겁주게 한 것이다.
이사마루가 만든 목사자상은 예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자만도 놀라운데 거기다 입에서 유황불을 뿜어대는 통에 섬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만다. 단숨에 백기를 든 우해왕은 이 놀라운 목사자로 하여금 우산국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유언하고 자신은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사마루도 항복한 우해왕의 유언만은 들어 주기로 하고 그 목사자를 해변으로 던졌는데 그 사자상이 굳어 지금의 사자봉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이 투신할 때 벗어 둔 투구도 그대로 굳어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울릉도 해안, 그중에서도 서면 남양리 해안에 우뚝 솟은 사자암과 투구봉, 그리고 그 안쪽에 솟아 있는 비파산(琵琶山)은 이처럼 우산국 최후를 증언해 주는 전설의 현장이다. 비파산은 평소 비파를 즐겨 뜯던 우해왕의 왕비가 죽자 그 비파를 왕의 투구 곁에 놓아둔 흔적이라 한다. 이런 우산국 최후의 전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사자암 해변에서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의 모습은 한가롭기만 하다.
울릉도의 사자암
신라의 이사마루가 우산국을 정벌할 때 섬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 나무로 사자상을 만들어 던진 것이 이처럼 사자암이 되었다고 한다. 사자암 옆에 우산국 우해왕의 투구와 우해왕의 왕비가 쓰던 비파가 버려져 있다.
울릉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은 서북단에 위치한 태하리(台霞里)이다. 이 마을에는 성하신당(聖霞神堂)이라 불리는 성황당이 있어 울릉도에 얽힌 슬픈 전설을 얘기해 준다.
조선시대 태종 때의 일이다. 당시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하여 조정에서는 공도정책(空島政策), 즉 섬을 몽땅 비우게 되었는데 안무사 김인우를 보내 도민들을 모두 뭍으로 철수시키게 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단지 두 사람만을 남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전 도민을 배에 싣고 출항하기 전날 밤, 안무사의 꿈에 해신이 나타나 처녀와 총각 각각 한 사람씩만은 남겨 놓으라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태하리의 성하신당
왜구의 노략질로 섬을 비울 때 제물로 바쳐진 동남동녀의 혼을 모시는 사당이다. 이 사당 옆에 교회와 절까지 있어 섬사람들의 숙명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안무사는 해신의 명을 무시하고 다음날 출항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갑자기 큰 파도가 일어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거센 풍랑이 며칠 동안 계속되자 하는 수 없이 섬 사람 중 처녀와 총각을 골라 섬에 남게 하였다. 이들에게 숙소에 가서 담뱃대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킨 후 모든 배가 몰래 섬을 빠져나오고 만 것이다. 담뱃대를 가지고 태하리 해변으로 돌아온 동남동녀는 비로소 속은 줄을 알고 멀어져 가는 배를 보면서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아무도 이에 응하지 않았으니 섬에는 오로지 둘만 남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뒤 안무사는 다시 이 섬에 상륙할 기회가 있었는데 태하리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두 백골을 발견했다. 해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이 이름 모를 동남동녀, 안무사는 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백골이 있었던 그 자리에 사당을 짓고 정중히 제사를 지내 주었다 한다.
중국의 사서에서도 울릉도에는 매년 7월에 한 사람의 처녀를 골라 바다에 바치는 해신제(海神祭)가 거행된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옛날 옥저국 사람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이 섬에 표류했을 때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우리 고유의 성황당인 성하신당 곁에는 최근 신축한 교회당과 절이 세워져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동남동녀의 제물 전설에서 보듯 이런 외딴 섬, 그것도 험준한 지형에서 삶을 이어가는 섬사람들의 숙명을 보는 듯하여 숙연해진다. 저동항 앞바다에 솟아 있는 촛대바위에도 이와 유사한 전설이 전한다. 효녀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섬은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외동딸이 기다림에 지쳐 돌로 굳어진 형상이란다. 어쩌면 한국판 클레멘타인 노래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저동항의 촛대바위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의 혼이 깃들인 바위. 마치 한국판 클레멘타인 노래를 듣는 듯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달픈 국토의 막내, 울릉도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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