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시인 제37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수상작 「작약과 공터」, 시상식은 2025년 5월 17일 17시 정지용 생가 및 구읍 일원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이 주최하고 지용회가 주관하는 제37회 정지용문학상에 허연 시인이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작약과 공터」이다.
정지용문학상은 활발한 시작 활동을 전개한 중진·중견 시인을 대상으로 시인으로서 쌓아온 문학적 업적을 참조하면서, 지난 일 년간 작품 활동이 활발한 시인을 가려내어, 그중 특히 완성도와 예술성이 뛰어나고 낭송에도 적합한 작품을 선정한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심사위원으로는 이근배 시인, 나태주 시인, 신달자 시인, 이재무 시인, 홍용희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이근배 시인은 허연 시인의 「작약과 공터」가 “작약과 나의 관계를 그 깊은 생성과 소멸을 고요 속에 함몰시키면서 마침내 살아있음의 눈부신 실존을 발견해” 내고 있다고 평했고, 신달자 시인은 “꽃의 울먹거림을 알아듣는” 귀를 허연 시인이 가졌다며 그런 “귀를 귀하게 생각하는 의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은 “삶의 문제, 현실의 문제에 있어도 기존의 태도보다는 변화하는 세계를 지향”하고, “내면에 마그마 같은 힘을 숨기고” 있는 시인의 작품이라고 평했고, 이재무 시인은 시 속에 나타난 작약이 “현실적 욕망으로서의 삶(갈비집)과 죽음(사체)을 동시에 거느린 존재”인데, 화자가 “동양의 순환론적 시간관”을 가지고 “현실적 절망 속에서 이상향이나 진리를 탐구”해내고 있다고 평했다. 홍용희 문학평론가는 시 속 “작약의 슬프고 고요한 운명과 표정이” “먹먹하게 다가”온다며, 이것을 허연이 피워낸 “아름답고 경이로우면서도 슬픈 서정의 꽃이다”라고 평했다.
허연 시인은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을 발간했으며, 정지용문학상 현대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시작작품상 한국출판학술상 김종철문학상 한국출판평론상 등을 수상한 바가 있다.
한편, 지용제 및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은 2025년 5월 17일 오후 5시 정지용 생가 및 구읍 일원에서 열리고 상금은 2000만원이다.
<수상작>
작약과 공터 / 허연
진저리가 날 만큼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작약은 피었다
갈비집 뒤편 숨은 공터
죽은 참새 사체 옆
나는 살아서 작약을 본다
어떨 때 보면, 작약은
목 매 자살한 여자이거나
불가능한 목적지를 바라보는
슬픈 태도 같다.
아이의 허기 만큼이나 빠르게 왔다 사라지는 계절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에는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책임을 진다
공터 밖으로 전해지면 너무나 평범해져버리는 고요 때문에
작약과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여기 내려 놓았다
작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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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작약과 공터」는 꽃과 인간의 존재론적 관계를 극단적 감각과 철학적 고요로 직조한 시다.
1. 제목의 의미
**「작약과 공터」**는 하나의 정적인 식물(작약)과 공간적 비움(공터)을 병치하여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소 제목이다.
**‘작약’**은 일반적으로 풍성하고 화려한 봄꽃으로, 생명과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자살한 여자”, “울먹거림” 등 죽음과 슬픔의 메타포로 쓰인다.
**‘공터’**는 사회적 질서나 관습의 경계 바깥에 있는 공간으로, 존재가 비어 있는 곳, 혹은 기억과 상처의 방치된 장소를 의미한다.
결국 이 제목은 존재(작약)와 비존재(공터), 혹은 생의 감각과 죽음의 정적이 교차하는 내면 풍경의 압축적 기호로 작동한다.
2. 주제
슬픔과 고요 속에서 발견되는 살아 있음의 감각
존재의 잔혹성과 그것을 감각하는 시적 자아의 ‘귀’와 ‘책임’
삶과 죽음, 말과 침묵, 고요와 울음 사이의 감정적 경계 체험
이 시는 존재의 필연성과 덧없음, 슬픔과 책임, 죽음과 생의 역설을 꽃과 공터라는 상징으로 풀어낸다. 시적 자아는 작약을 통해 죽음의 기척을 ‘살아서’ 감지하는 자이며, 그것이 그의 고유한 감각적 재능이다.
3. 상징 분석
작약
자살한 여자 → 죽음의 메타포
슬픈 태도, 울먹거림 → 존재의 비명, 말로 되지 않는 감정
잔인 속의 고요 → 살아 있음의 실존적 아이러니
“한층 더 작약이었다” → 꽃 이상의 상징, 인간 존재의 정동(情動)
공터
갈비집 뒤편 → 일상과 무명의 경계, 도시적 방치의 장소
참새 사체 옆 → 생명의 퇴장과 방관된 현실
세상의 질서에서 밀려난 감정과 기억의 공백지
“나는 살아서 작약을 본다”
→ 생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로서의 자의식
→ 존재의 비극을 감각할 줄 아는 귀
→ 그 감각을 **“책임”**이라 부르는 윤리적 태도
울먹거림 =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 시적 언어 자체에 대한 메타포
→ 시가 의미하지 않으면서 의미하는 방식, 즉 ‘중의성’
4. 기승전결 구조 분석
기(起):
“진저리가 날 만큼 /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 존재의 필연적 잔혹함, 운명 같은 시간의 흐름
승(承):
“작약은 피었다 / 갈비집 뒤편 숨은 공터 / 죽은 참새 사체 옆”
“나는 살아서 작약을 본다”
→ 죽음 속에 선연히 피는 생명의 이미지
→ 시적 자아는 죽음과 고요 속에서 ‘살아 있음’을 감지한다
전(轉):
“작약은 / 울먹거림 /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책임을 진다”
→ 존재의 말 없는 언어에 반응하는 자아의 감각
→ 시인의 감수성과 존재 윤리가 드러나는 전환점
결(結):
“작약과 나는 / 가지고 있던 것들을 여기 내려 놓았다”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었다”
→ 감정과 언어, 기억을 공터에 내려놓는 정리의 순간
→ 작약이라는 존재를 ‘슬픔’과 ‘고요함’으로 재명명하며 끝맺음
4. 관련 철학자
1. 모리스 블랑쇼 (Maurice Blanchot)
핵심 개념: 죽음에 이르는 말, 말할 수 없음의 문학, 침묵의 윤리
연관성:
“울먹거림 /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은 블랑쇼의 ‘말할 수 없음(le non-dit)’ 개념과 깊이 맞닿아 있음.
“슬프고 수줍어서 한층 더 작약이었다”는 말은 존재가 말로 붙잡히지 않는, 언어 이전의 감정과 감각의 세계를 가리킴.
작약을 바라보며 감각하지만 완전히 설명하지 않는 태도는 블랑쇼가 강조한 문학의 윤리적 거리두기와 유사.
2.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핵심 개념: 존재론, 죽음에의 선-이해, 고요 속의 존재, 언어는 존재의 집
연관성:
“살아서 작약을 본다”, “작약과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는 대목은 존재를 마주하는 시적 ‘있음(Dasein)’의 자세와 유사.
하이데거는 ‘죽음을 직시할 때 진정한 존재로서 깨어난다’고 보았는데, 이 시의 화자도 죽음(참새, 자살한 여자) 옆에서 살아 있는 존재의 감각을 극대화함.
언어의 절제 속에 존재를 드러내려는 시의 방식은 하이데거의 **“시는 존재를 부르는 말”**이라는 사유를 떠올리게 함.
3.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핵심 개념: 타자의 얼굴, 윤리적 응답성, 침묵과 책임
연관성: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 책임을 진다”는 대목은 레비나스의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응답과 책임윤리를 직접적으로 환기시킴.
말 없는 고요, 죽은 참새, 작약의 울먹거림은 모두 타자의 고통이며, 화자는 그것을 감지하고 응답하는 주체임.
4.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핵심 개념: 되기(becoming), 차이와 반복, 비인간 주체성
연관성:
작약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자살한 여자, 울먹거림, 고요, 슬픔 등으로 계속 다른 정체성으로 ‘되기’ 하고 있음.
이는 들뢰즈가 말한 다층적 정체성의 흐름과 일치함.
또한 들뢰즈는 말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적 사유를 예술의 조건으로 보았는데, 이 시의 미세한 감정과 시적 고요는 들뢰즈적인 “비언어적 철학”이라 할 수 있음.
5. 시몬 베유 (Simone Weil)
핵심 개념: 고통과 주의(attention), 비움과 수용의 윤리
연관성:
시 전체가 고요히 존재를 주시하고 “내려놓는” 감각으로 흘러감.
“작약과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여기 내려 놓았다”는 구절은 베유가 강조한 **비움(emptiness)**과 **주의(attention)**의 영성적 윤리를 떠올리게 함.
요약 정리
블랑쇼: 말할 수 없음, 시적 침묵, 존재의 비가시성
하이데거: 존재의 고요, 죽음과 삶의 진정성, 언어의 존재론
레비나스: 타자의 울음에 대한 감지, 침묵 속의 책임 윤리
들뢰즈: 작약의 상징적 되기, 감각의 철학, 다중 정체성
베유: 내려놓기, 응시와 수용, 고요의 윤리
첫댓글 시가 참으로 실존적 깊이가 있습니다
작약은 원래 그곳에 있으나
나의 사색과 낯선 시선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존재자가 됩니다.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내적 성찰을 같이 이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