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정(旅程)과 은율(隱律)의 길 위에서, 참 사람으로 머물다
글 / 은율 장기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는 이 아름답고 아득한 세상에 그저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 중 하나가 지상에 내려앉듯,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숨을 쉬고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눈부신 축복 속에서 시작된 존재들입니다.
이 짧고도 긴 삶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고귀한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저 사람답게 살다 가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참 다정한 일인지 모릅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 서로의 시린 손을 잡아주고, 타인의 슬픔에 가만히 어깨를 내어주며, 내게 허락된 하루의 햇살에 조용히 감사할 줄 아는 것. 그저 맑은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보며 온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람으로서 피워낼 수 있는 가장 은은한 향기입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우리는 무엇을 그리 더 갖겠다고 이토록 아프게 헤매며 살아온 걸까요.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신기루 같은 물질을 위해, 영원히 머물지 않을 찰나의 명예를 위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마음의 평화와 사랑하는 이들의 눈빛을 외면한 채 달려왔는지 모릅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안고 밤새 뒤척이던 날들, 더 가지지 못해 스스로를 다그치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남겼을까요.
문득 멈춰 서서 바라본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고 덧없어 눈물이 납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러지듯, 우리가 움켜쥐려 버둥거렸던 그 모든 것들은 흐르는 세월의 강물 속에 부서지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올 때도 가벼운 바람처럼 빈손으로 왔듯이, 떠날 때 역시 우리는 단 하나의 그림자도 기억 외에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무겁게 어깨를 누르던 욕심의 짐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여정(旅程)'이라는 이 서정적인 길목 위에서,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맑은 가락, '은율(隱律)'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남들보다 앞서 가지 않아도, 무언가를 가득 채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천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의 다정함을 알아채고, 스쳐 가는 바람의 위로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조금 부족하고 비어 보일지라도, 내 영혼만큼은 가장 사람다운 온기로 가득 차 있기를 소망합니다. 훗날 이 여정이 끝나는 날, 비록 두 손은 텅 비어 있을지라도 "참 사람답게, 따뜻하게 살다 간다"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시(詩)가 될 것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