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도마뱀을 위한 서곡
이영숙
매일 지각하는 달은
어제는 낮고 내일은 좀 더 높은 길을 가겠지만*
오늘은 앞 건물과 건물 사이
지상 5층의 높이로
6.5센티 허공을 건너간다
달이 빠져나온 왼쪽 건물의 오른쪽 옆구리와
달이 사라질 오른쪽 건물의 왼쪽 옆구리 그리고
창문을 연 채 2층의 책상 앞에 앉아
한쪽 눈을 감고 건물 간의 간격을 자로 재어보는 나는
거꾸로 길쭉한 이등변삼각형의 꼭짓점들이지만
시시각각 달의 궤도는 높아져
오른쪽 빗변의 길이가 늘어난다
사십여 분 만에
남은 빛을 싹 거두어 사라진 슈퍼문
건물과 건물 사이
직립의 계곡 실루엣도 전에 없던 일처럼 두루뭉술해진다
그러나 달은 건물 뒤로 사라진 게 아니라
여행객을 가득 태우고 사이판 같은 열대 야밤의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활강한다
도마뱀 승객들이 달에서 우르르 내린다
욕조 발치에 대형 목욕타올 서너 장이 개켜져 있는 호텔
만져질 듯 달 표면의 잿빛 얼룩을 뒤덮었던 거뭇한 도마뱀이
발코니에 가지를 댄 파파야를 타고 올라왔을 초록 도마뱀이
흰 도마뱀으로 변주된 몸을 싹 거두어
흰 욕조 흰 타올 곁을 지나 흰 창틀 밑 틈새로 사라진다
*달은 태양으로부터 동쪽으로 매일 12°씩 이동하기 때문에 매일 점점 늦게 뜨게 된다. 달의 공전 궤도면이 천구의 적도면으로 기울어져 있어 달의 적위가 변하기 때문에 달의 남중 고도도 매일 다르다.
―《시와문화》 202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