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never rains without pouring. But I'm OK.
올해 드디어 나는 우리 나이로 60이 되었다. 흐뭇하고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도 더 이상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는 소리는 안 듣겠지.
그런데 제목이 왜 영어냐고? 올해 내가 새로 세운 목표가 영어 정복이라서 그렇다. 1년 내로 Survival English, 즉, 생활영어, 혹은 생존영어를 정복하겠다고 연초에 마음먹었다. 뒤늦게 웬일이냐고? 조만간 세계무대에 진출하려 하기 때문이다. 60년이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며, 그간 나도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 좀 더 신나게 놀고 편하게 쉬려한다. 나도 그 정도의 자격과 권리는 있다고 믿는다. 더 나이 먹으면 다니고 싶어도 무릎 아파서 못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아직 걸을 만 할 때 당분간은 해외로 돌아다니며 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해외여행에 필요한 길 묻기, 차 타기, 숙소 예약, 음식 주문, 돈 계산 등의 기본적인 대화능력은 갖춰야 하겠기에 새로 영어 공부에 매진하기로 한 것이다. 조만간 해외에서 소식을 전할 테니 기대하시라.
그런데 제목의 뜻이 뭐냐고?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 공부한 사람은 다 알 텐데, 직역을 하자면 ‘비가 잘 안 오지만 한 번 왔다하면 폭우로 퍼 붓는다’는 것이고, 그 의미는 ‘불운은 혼자 오지 않고 한꺼번에 닥친다’는 뜻이다. 올해 들자마자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 별로 좋지도 않은 내용이니 순서에 따라 간략히 정리한다.
먼저 치통부터 시작했다. 갑자기 어금니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라면도 못 씹을 지경이 되었다. 치과에 가니 잇몸이 상한 것 같다며 치료를 했는데 전혀 차도가 없었다. 열흘 넘게 부실하게 먹고 소화도 잘 안 되니 아예 살 맛이 없어졌다. 나중에야 어금니에 금이 간 것 같다면서 신경 치료를 했는데, 그제서야 통증이 줄었다.
그 다음은 내장 문제다. 매달 한번 고혈압과 당뇨 약을 받으러 내과에 가는데, 13일(금)에 방문하니 의사가 이번에는 꼭 몇 가지 검사를 받으라고 강권한다. 벌써 몇 번 핑계를 대고 피했는데, 더 이상 그러기가 미안해서 할 수 없이 피를 뽑고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는데, 예전에 아내가 임신했을 때 봤던 것과 같은 흑백 사진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이게 많이 커졌네요.” 한다. 내 뱃속에 뭔가 자라고 있다니? 그렇다면 내가 임신을? ㅎ ㅎ, 하며 혼자 실없는 생각하고 있는데, 의사가 계속 말하기를 “어, 여기도 뭐가 있네요.” 한다. 게다가 쌍둥이를? 참으로 기가 막히구먼. 그제서야 내가 물었다. “뭐가 있습니까?”, “이게 쓸개의 돌이고, 또 이건 콩팥의 물혹입니다.”, “읔....”
그러나, 걱정 마시라. 나는 지금 아픈 곳 전혀 없고, feeling good! 이다.
세 번째는 지난 일요일(1.15)에 있었던 교통사고다. 얼마 전에 사촌 동생이 거창으로 전근 왔다기에 집안의 경남 터줏대감인 내가 환영하지 않을 수 없어 14일(토) 저녁에 거창으로 혼자 차를 몰고 갔다. 둘이 술을 마시며 집안일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새벽녁까지 지껄였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뜰 때 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거하고 먹고는 인근을 드라이브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사고가 났는데, 시각은 12시 10분경이고, 위치는 거창과 합천의 경계인 가천교 위였다.
상황은 이러하다. 나는 합천에서 거창 쪽으로 다리를 건너가는 중이었는데 거창 쪽 다리 입구가 많이 굽어 있어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 중간 쯤 오자 차 한 대가 과속을 하면서 내 차선으로 완전히 넘어왔다가 급하게 제 차선으로 빠져나갔는데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속으로 ‘아이고, 놀래라. 별 놈이 다 있네’ 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 바로 뒤에 또 한 대가 똑같은 코스로 오면서 바로 내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 차는 제 차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내 차 운전석을 꽝 박고 말았다. 나는 순식간에 깨진 차 유리를 온 몸에 뒤집어썼다. 왼쪽 귀에도 유리 조각이 들어갔다. 그때 느낌? 담담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고인가? 사고가 난 건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군! 하는 정도의 느낌과 생각이었던 같다.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은, ‘음, 안전유리가 안전하긴 하군. 이렇게 유리를 뒤집어썼는데 피 한 방울 안 나네.’ 하는 것. 조수석의 동생이 먼저 차에서 내리고 나도 내리려고 하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조수석으로 건너가 내렸다. 상대방 차도 멈추고 운전자가 나왔다. 70에 가까워 보이는 분이었으며, 차는 화물 운송용 소형 트럭이었다. 그가 먼저 우리에게 “어디 안 다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아저씨가 중앙선을 넘으셨죠?” 하고 물었다. 그는 순순히 “그렇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하고 인정했다. 그러니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각자의 보험사에 전화하고 견인차를 기다렸다. 그때 심정은 이랬다. '나도 이렇게 심란한데 사고를 낸 이 분 심정은 오죽할까? 형편도 좋아 보이지 않으신데...' 아저씨가 너무 안돼 보였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사고 난 곳이 마침 경치가 좋은 곳이라서 기다리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 한 가지 더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사고가 다리 위에서 났으므로 잘못 되었으면 차가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 차가 큰 트럭이었다면 꼼짝없이 그리 되었을 것이다. 혹 내가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급히 틀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그건 지금 생각해도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올 정도로 천운이었다. 그러니, I'm OK.이라고 할 밖에.
사고 현장 사진 몇 장 올린다.
이번에는 상대방 차량의 진행 방향에서 본 도로와 다리이다. 이렇게 휘어져 있으니 사고가 난 것이다. 참으로 위험한 길이다. (출처: 네이버 지도)
그 뒤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 차는 견인차에 끌려 거창의 자동차 정비센터로 갔다. 견인 기사는 바로 렌트카를 내주면서 “가십시오. 단, 이 차를 돌려주실 때는 꼭 이곳으로 오셔야 합니다.” 하는 한 마디 뿐이었다. 나와 동생은 좀 황당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이게 이렇게 간단한 일인가? 어쨌거나 가라 하니 가야지. 그런데 어디로 갈까? 내가 동생에게 말했다.
“차도 이게 내 차보다 더 좋은 것 같으니, 하던 드라이브가 계속 하자. 이 근처 어디가 좋니?”
“오도산 정상까지 길이 나 있거든. 거기가 경치가 좋아.”
“좋아, 가자. 출발!”
그곳에서 찍은 사진 올린다. (앞의 사진 출처: 네이버 지도)
끝으로, 또 한 가지 더 보너스로 다행스러운 점은 이 모든 것이 방학 기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약 학기 중이었다면 꽤나 성가셨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2017. 1.17.)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어머나 선생님, 이런 여러가지 일들이 있으셨군요. '별 일'인데, '별 일' 아닌 듯 얘기하고, 맞아 주셔서... 전 즐거운 마음으로만 다녀왔네요. 철 없이.
건강하셔야 해외로 진출하시지요! 저도 멀리서 응원할께요~ 선생님. 꼭 건강 잘 챙기세요!
Thank you, Sunkyung! Don't worry. I'm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