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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지금은 토요일 오후 4 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너무니 쾌청한 22도의 날씨에 부활절 주일의 토요일이다. 어제는 성 금요일 여기에선 Good Friday 즉 2000 여년 전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였단다. 믿거나 말거나 (카톨릭 신자인 나는 나는 믿을려고 노력을 하여 지금은 믿고 있지만) 내일 부활절은 그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부활절 여기에선 Easter Sunday 이란다. 오늘 내 공장은 토요일이라 아침 8 시에서 오후 3 시까지 근무하고 직원들 주급을 주고 퇴근시키고 나서 나 혼자 남아 한주를 정리하고 창규가 중영회에 올려 놓은 70 년대 80 년대의 좋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단다. 오늘 오후 7 시에 부산 중앙고등학교 뉴욕 모임이 내 공장 바로 옆에 있는 '첨벙' 이라는 식당에서 있는지라 집에 갔다오기도 어중간하여 홀로 하이네켄 맥주를 홀짝이다가 사우나나 갔다가 모임에 가야지 하는 마음이였는데 기분좋게 취기가 오르길래 이 기분을 유지하고져 맥주 한잔에, 추억 하나에, 아픈 기억들 하나에, 그리고 지금의 행복에 취해 이글을 적어면서 감히 '나의 이야기' 라는 제목을 달아 보았단다. 너희들은 세상을 떠난 천표, 병완이, 동식이, 용식이, 작은 준현이, 종덕이, 기룡이, 승철이, 말태, 강두, 수일이, 조승호,,.........벌써 10 명이상의 친구들 (삼가,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들의 명복을 빕니다) 제외하곤 기억나는 모두가 아니면 또한 기억나지 않은 친구들일지라 하더라도 모두가 나의 추억이고 나의 기쁨이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부산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늘 '훈장' 처럼 가슴에 간직하고 산단다. 너희들이 "왜?" 라고 묻는다면 나는 "거저" 라는 대답 밖에는 달리 말할 대답이 없단다. 내가슴속에서 내 심장이 그렇게 대답을 하니깐. 그렇게 너희들과 함께한 1974년 3 월 5 일부터 1977 년 1 월 어느날 졸업식 하던 그 날까지의 3 년의 세월이 늘 내 심장속에서 맥박질하고 있기에 너희들만 생각하면 나는 늘 10 대의 남원이가 되고 너희들을 그리워 하다보면 너희들과 함께 할 60 대와 70대의 남원이를 상상해 본단다. 그래서 너희들은 늘 좋기만하고 항상 그립기만 그런 존재들이란다. 나는 늘 '꿈'을 꾸며 정말 열심히 살았단다. 적어도 미국에서의 28 년만큼은 말이다. 1982년 8 월 2 일에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았단다. 그때만 해도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던 부모님 덕으로 '미국 유학' 이라는 미명아래.. 부족한 영어로 인해 미국 대학생활이 스트레스 그 자체이던 일년후에 나는 송금되던 돈이 딱 끊기면서 그때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단다. 부모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은 1983 년에 우리집이 쫄딱 망했다는 것이란다. 만약 그렇게 망하지 않았더라면 어쩜 나는 너희들에게 욕만 얻어 먹고 사는 남원이가 될 수 있을 수도 있었겠지. 적당히 호기 부리면서 경제적으로는 풍요하면서 멋대로 사는 그렇고 그런 놈으로...? 그 해인 1983 년에 부산을 갔더니 모든 것을 정리하였는데 내가 오면 타라고 포니 차 하나는 남겨 두었었단다. 나는 그 차를 타고 한달 동안 미국의 대학교에서 아르바이트 해서 번돈 $1000 을 가지고 김해, 마산, 진주...등지의 허름한 술집, 찻집을 찾아 다니면서 아침부터 그곳의 한많은 늙은 잡부들과 대선 소주를 댓병으로 마시면서 인생공부를 하곤 했었단다. 아~ 이런 삶들도 있는데... 아침부터 좀 팔아주고 자식같은 사람이 살값게 대하니 작부들부터 주인 아줌마들 까지 얼마나 재밌어 하던지....(슬픈 추억들) 그리고 한달후에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단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자. 적어도 내가 스스로 행복해 질 때까지라도 라는 다짐을 비행기 속에서 수도 없이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84 년도 부모님을 모셔오고 여동생 둘도 데리고 왔단다. 불법체류자인 모든 가족들 한푼도 없는 돈, 26 살의 나이에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버린 나는 바로 그 때 부터 진정으로 참맛나는 보람된 내 인생을 꾸려 가기 시작했단다. 서울에서는 부모가 사준 내 명의의 아파트도 한채 있었는데..(점곤이도 봉관이도 가끔씩 왔던 동부 이촌동의 공무원 아파트 17 동 308 호) 늘 미국에 안 왔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프로스트 시인의 '가지 않는 길' 을 되새기곤 했었단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도 살아도 펴지지 않던 형편이 마침내 1995 년 겨울에는 깊은 계곡에 빠지고 말았단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1995년 12 월에 부산을 방문하였었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들에게 구걸하는 심정으로 몇푼 돈이라도 융통해 보자는 심정으로.. 미국에서 친구가 왔다고 반겨 주던 30대 중반의 활기가 넘치던 친구들.. 특히 중동회 친구들은 부부동반으로 모여서 나를 해운대의 그랜드 호텔의 중식집에서 주인장을 불러 특별한 술을 대접하게 하고 그 다음은 호프 집으로 또 밤새 노래방으로 그리고 아침에 해운대 시장의 해장국 집까지... 완전히 풀 코스로 나를 대접해 주었단다. 봉관이 부부, 병완이 부부, 천표부부, 영국이 부부, 태열이 , 태식이....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았단다.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Wife, 그리고 6 살, 4 살, 2 살 짜리 내 딸들... 기분좋게 어울리는 척했지만서도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미국에서 잘 나가는 척 (?) 했지만서도 가슴속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단다. 해운대 시장에서 해장국을 마시고는 잠시 혼자 바닷가로 나가 정말로 펑펑 울었었단다. 앞으로 앞으로 내가 한국에서 돈을 쓸 형편이 안 되면 절대로 고국을 찾지 말자고.... 잘살고 여유있던 친구들에게 신기하게도 단 1 원의 돈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그 다음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단다. (얼마나 내가 현명했던지. 단 하나의 친구들도 잃지 않았었으니...친구간에 돈 이야기 하는 순간에 우정이..?) 슬프지만 늘 나에게는 용기와 스스로 다짐을 하게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였단다. 지금 이렇게 한잔 술에 이야기 할 수 있는 15 년전의 나의 이야기이기에. 이제 그 15 년이 지나 늘 꿈꾸던 아버님과의 여행을 다음 주부터 시작한단다. 아버님을 미국에 모시고 온 1984 년 후에 실로 26 년만에 말이다. 아버님은 미국에서의 노후 생활이 별 재미가 없어이신지 술로 세월을 달래면서 살고 계셨는데 그래서 나는 술 좀 줄이시라고 아버님께 잔소리도 많이 하고 늘 불효만 했었는데 새털처럼 가벼워지신 아버님이 안타까워 두달전에 흑염소탕을 해드리고 한국같이 가자고 이제 술 좀 그만 드시고 기운 차리시라고 한달동안 날마다 점심을 함께 하다보니 체중도 5 키로가 늘어나시고 이제는 내보다도 더 한국을 그리워 하고 계시는구나. 다음 주 이시간에는 나랑 아버님은 한국에 도착한단다. 서울 친구들도, 부산 친구들도, 울산 친구들도 만날 계획을 잡아 놓았단다. 아버님께 늘 불효만 하다가 이렇게 계획을 잡아 놓으니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기쁘단다. 이렇게 아들이랑 오붓한 여행도 해 보시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다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을 터인데 살아 생전에 아들이랑 함께 하시고 나면 적어도 그런 후회는 하지 않겠다 싶으니 말이다. 드시고 싶어 하시던 보신탕도 드시게 할 것이고 장생포의 고래 고기도 맛보게 하실거고 산성에도 갈 것이고 밤새 온천장 거리도 함께 거닐 작정이란다. "아부지, 저가 우리가 살던 집이고 여가 아부지랑 같이 가서 보신탕 묵던 집이고 전포동 여가 아부지 사무실이 있던 곳이고 내가 태어난 황령산아래 남천동이 이렇게 변했고 그 황룡산 아래 굴이 뚫려 범내골 로타리로 가고 광안리 해수욕장 바다로 저래 광안대교가 생겼소. 다 기억 나는교? 아부지요" 하면서 온천시장, 동래 시장, 수영 팔도 시장에 모시고 가서 맛난 돼지 국밥도 함깨 묵을 작정이란다. 온천장 녹천탕에 모시고 가서 야위신 등어리의 때도 밀어 드릴 것이고 해운대 온천에도 모시고 갈 것이고 해운대 암소 갈비에서 암소 갈비도 맛나게 드시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늘 하루하루가 감사한단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천주님께, 성모님께 그리고 예수님께도. 또한 울 아부지가 믿는 부처님께도 부활주일을 맞아 여러 친구들에게 항상 천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소서! |
박경철 2010-04-05 11:09 | 살면서 시련을 겪은만큼 인생이 깊어진다는 것이 확 느껴지는구나! 열심히 잘 살자! | |
변동수 2010-04-05 12:54 | 기다려 지는구나...고맙다 칭구야~ | |
김점곤 2010-04-05 13:52 | 아버님과의 멋진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며~ 반가운 얼굴 볼 수 있음 좋겠다~~ | |
류석관 2010-04-05 22:58 | 나도 ** 할려고 열씨미 성당 다니고 있다. 성경쓰기도 열씨미...좋은 글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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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원이 왔을 째
박봉관부부랑 기현이 부부랑 우리 부부랑
아버님 모시고 해운대 어느 횟집에서
회를 먹고있는데
남원이가 옛날에 망했던 이야기를 또 하니까~
아버님 웃으시면서 "그만하라 너는 또 그 이야기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