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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예수의 길을 따라간 이세종 선생의 삶과 영성
하 동 안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1. 이세종 선생의 삶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승천하려고 하실 때 거기 모여 예수님을 하늘 로 올려 보내는 마지막 송별 모임에 참석한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주권회복을 열망하는 애국자들이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예수님은 공생애의 첫 말씀도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에 합 당한 회개를 선포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시작과 더불어 말씀 하신 하나님 나라를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것과 똑 같이 제자들도 알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지상의 삶을 마감하는 승천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는 알 수 없고 단지 아는 은 이스라엘의 식민지배 하의 비참한 삶과 죄악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묻는 것이다.(행 1:6) 제자들의 이러한 질문은 승천시의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문제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 속에서 기독교 믿음을 질문하고 이해하며 삶에 적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와 부활 승천 이후 기독교의 역사 진행은 지상에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마태는 “이때 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 라"(마 4:17) 라고 적으며 또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때)라고 적고 있다. 마가는 또한 “요한 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 되 때가 갔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 더라"(막 1:14-15) 라고 말하며 세례요한도 주님의 길을 예비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1) 고 쓰고 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선포된 이후 모든 성도는 의식하였던 의식하지 못했던 모두 함께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서 진력하였다.
이세 종 선생의 삶을 조명하는 것은 그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하나님 나라의 올바른 실현의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세종 선생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진실된 믿음과 구원이 무엇이며 구원받은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말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이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며, 평강은 하나님과 나 사이, 나와 이웃관계, 나와 물질관계, 나의 나됨이 바로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이 이루어질 때 거기에는 언제나 기쁨이 넘칠 수 있는 희락의 삶이 영위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인이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은 회개이다. 회개는 마음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몸까지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세종 선생은 식혜 한 그릇을 마시면서도 이것을 못 먹는 자를 위해서 울었고 좋아하시는 묵을 잡수시면서도 먹지 못하는 이웃을 생각하면서 우시고 부끄러워하셨다. 거지 앞 에서도 낮아지셨고 그래서 거지와 함께 먹을 것을 나누고 입을 것을 나누었다. 그것은 절제나 금욕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이었으며 그러한 사랑은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까지 미쳤다. 그는 침녕 쿨을 발로 밟지 못하고 옮겨놓고야 건너갔으며 사람 몸을 문 지네를 살려 주었다. 마음과 함께 몸으로 회개된 믿음의 역사는 이성을 초월한 인지력과 능력을 갖는데 이세종 선생의 생활 속에서 이러한 초능력의 삶이 역사 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되며 이러한 믿음이 신비주의로 빠지지 않은 것은 육체적인 노동을 중시하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건강한 역사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모든 믿음의 역사는 수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세종 선생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고난이었으나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도 고난의 삶인 것을 볼 수 있다 이세종 선생은 개인적으로 조실부모 (早失父母)하고, 남의 집 머슴을 살았으며,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경험한 수난의 삶 이었다 어떠한 인물의 삶을 조명할 때 우리는 그의 개인적인 삶과 시대적인 상황을 관계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이세종 선생이 나셨던 시대적인 배경 은 어떠했던가? 그가 나셨던 세기는 제국주의의 침략시대였다.
2. 시대적 배경
인류의 역사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원년으로 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의미를 실현하여 완성해 가는 역사이다. 예수님이 선포하셨 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진행은 예수님의 뜻에 난 죄악의 역사 진행이었다.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서 지진과 기근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고 하셨다. 승천 시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피지배 식민민족의 주권 회복에 대한 문제는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주권회복이 절실한 식민지 백성의 지주독립에 대한 요구는 제국주의의 악행이 정의의 탈을 쓰고 횡행하고 있는 한 지속될 것이다. 이세종 선생이 나셨던 1880년대의 19세기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전 이 최고에 이르렀던 때이다. 역사적으로 동서를 막론하고 제국주의의 식 민지배는 지속되었다.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을 통한 왕권 체제가 무너 지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재민 사상이 정착되어가는 시대는 피압박 약소민 족에게 외부의 제국주의와 내부의 왕권 체제와 이중으로 싸우는 수난의 시대였다. 이세종 선생 (1880 -1942) 이 살아계실 때의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은 흔란과 격동의 시대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외적으로는 서양세력이 동양을 침범하는 서세동점(西勢東漸) 의 시대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 세력이 시장 확보를 위해 침략전쟁을 벌이는 시대였다.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서구세력인 영국에 패배하여 남경조약이 굴욕적으로 맺어지고 (1840-1942년) , 영불연합군에 의한 북경이 함락되어 북경 조약이 맺어지므로 강제적인 개방이 이루어졌다.(1860년) . 국내외적으로 위기의 반복이었다. 이세종 선생의 탄생은 고종황제의 재위 55년 중에서 15년이 지난 때이며 동학이 일어나 그 혁명의 지도자인 최제우 선생이 사형되는 시대였다. 영국의 인도 지배가 이루어지고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게 되었다. 영국 런던에서 르크스의 제1 인터내셔날이 조직되는 때이며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흑인해방이 이루어지는 시대였다.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나폴레옹 황제의 등극 시대이며, 프랑스혁명 이후의 공화파와 왕당파가 싸우는 시대였다. 서구세력에 의한 중국의 패배는 중국사대주의적인 조선의 민중에게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거치면서 일본과 수교하고(1876년) 한미, 한영조약이 체결되었다(1884년).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거치면서 마침내 나라가 멸망하였다 (1910년) . 내부적으로는 홍경래 민란을 시작으로(1811 년) 계급분화적인 민란이 계속되었다. 주권 재민의 민주공화국인 근대국가를 세워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개화당 의 갑신정변이 일어난 것은 이세종 선생이 태어나신 년 후인 æ4년이다. 19 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대는 죽어가는 국가를 살리려는 여러 가지 운동과 정변이 있었으나 결국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당하고야 말았 다 한마디로 이세종 선생이 사셨던 시대상은 첫째, 주권재민에 의한 사회적 싸움과 외부의 식민지배의 제국주의와 싸우는 이중고(二重苦)를 당하는 시대였다. 식민지배는 인류역사에서 보여 지는 큰 죄악으로 죄악의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밝게 빛나는 것이다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한 식민지배의 (1000)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세종 선생의 영혼의 깨침도 식민지배의 고난의 삶 속에서 닦여진 금강석이요 다이아몬드인 것이다. 둘째는, 문명의 만남으로 문명 충돌이 이루어지며 여기서 새로운 문명이 생성되는 때이다 유대주의와 헬라주의 만남으로 기독교문명이 생성되듯 이 한국적인 종교 토양 속에 기독교의 새로운 알갱이가 속살이 되어 차오른 것이 이세종 선생의 신앙이요 이것은 반성과 성찰을 지향한 신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학사상이 외래 문명에 대한 한국 사상과 종교의 토착적인 반응이었다면 이세종 선생의 영성은 기독교 중에 서도 장로교 신앙을 바탕한 기독교 영성의 역사적인 반응이었다. 셋째로 영향을 미친 시대상은 전쟁이었다 식민지배는 그 원인과 결과가 전쟁으로 연결되듯이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상은 계속되는 전쟁이었다 (요세푸스의 유대인 전쟁사.!l ). 이세종 선생은 만주사변(1931 년)과 중일 전쟁 (1937년), 태평양전쟁(1942-1945년)의 시대에 사셨고, 태평양전쟁 중 인 1942년에 별세하셨다. 이세종 선생은 고난 중에 꽃핀 영혼이었으며 , 고난은 영혼을 단련시키는 용광로가 될 수도 있고 인간을 파멸시키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전자는 고난이 축복이요 은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제의 치욕적인 식민지배와 그 식민 지배를 완수하기까지 이 땅에서 벌 어진 청일, 노일전쟁의 비참함도 이세종 선생의 영성을 보는 순간 신앙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와 경륜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3. 성자적 영성
이세종 선생의 기독교 영성은 성자적 영성이라고 칭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성자되기를 바라며 성자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어 한다. 우리가 성자를 보기를 원한다면 이 사람을 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세종 선생과 그의 제자인 이현필 선생은 후대의 전기 작가가 다 같이 성자로 호칭하고 있다. 이세종 선생은 사랑의 성자인 호세아를 비유해서 호세아를 닮은 성자라고 불리어지고, 이현필 선생은 맨발의 성자라 호칭되는데 우리는 두 분에게 붙여진 성자란 호칭 을 인정한다. 정경옥 목사는 감리교단의 목사로 감리교신학대학 교수였다. 그는 미국의 게렛신학교에서 최첨단신학을 공부한 신학자였다. 그는 1937년도 새 사람 7집에서 “숨은 성자를 찾어” 라는 제목으로 이세종 선생을 방문해 서 만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한국 신학의 대 광맥으로 박형룡 목사의 근본주의 신학, 김재준 목사의 진보주의 신학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한국 신학계의 거목이다. 근본주의가 교회신앙의 교리를 세웠고, 진보주의는 신학의 사회적 관계를 논하고, 자유주의는 신앙을 인간성에 알맞게 해석하여 조화시켜 안착되게 하는 작업을 이루었다. 그는 그 글에서 현대의 위기와 함께 기독교의 위기를 쾌락주의와 유물사상에서 찾았다. 이것은 르네상스의 인간중심주의에 기초한 현대문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나님 중심주의의 중세 천년의 역사에 대한 역사적인 반동이 르네상스라 한다면 솔제니친의 주장과 같이 다시 이 문명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경옥은 이세종 선생을 만남으로 그 빛과 길잡이를 발견한다. 과연 성자는 누구인가? 정경옥은 이세종 선생의 모습 서 성자의 구도자적 삶을 발견한다 이에 종교를 논하는 자 많거니와 참으로 도(道)를 구하고 즐기는 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도(道)는 마음을 수행하는 것이고 몸을 수행하는 것이다. 바울은 대속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의 실천적 삶을 강조하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라고 하면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 -2) 고 말씀하신다. 몸을 쳐서 진리 이신 하나님께 복종케 하는 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들의 구도자적 삶이다.
둘째로, 정경옥은 이세종 선생의 삶 가운데 사랑의 사도인 것을 발견한다 . 두 번이나 가정을 파괴하고 가출한 부인을 다시 영접하고 사랑한다. 이러한 삶이 창부와 같이 살았던 호세아에 비견해서 호세아를 닮은 성자 라고 불 리어졌다. 문중사람들의 비난과 마을사람들의 조롱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옹호하고 영접했다. 도리어 그녀의 잘못이 자기 자신의 책임 이라고 주장하고 그녀의 죄와 허물을 자신이 대신 감당하는 십자가의 삶을사셨다.
셋째로, 정경옥은 이세종 선생의 삶 속에서 물욕과 개인적인 사사로운 욕심을 이긴 성자의 삶을 발견한다. 이세종 선생은 자기 재산을 조선장로 회 전남노회에 기부했다. 그리고 거지와 같은 삶을 사셨다. 사계절 홑바지 저고리에 구멍 난 모자를 쓰셨다. 그것은 오장치를 짊어진 삶으로 가난과 겸손의 기독교인의 삶을 상징한다. 성자는 누구인가? 순결과 청빈을 몸으로 실천한 구도자가 성자이다. 우리는 이세종 선생의 삶 속에서 이러한 성자의 삶을 발견한다 이러한 이세종 선생의 삶은 여러 기독교 영성 중에 서도 우리는 성자적 영성이라 칭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는 이러한 성자적 영성이 요구되는 시점에 달했다.
4.이세종선생의 삶과 영성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지구상에 200여개가 넘는 국가 중에서 유일무이(唯 一無二)하게 분단의 비극을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기독교인들이 이세종 선생의 삶과 그의 기독교적인 영성을 성찰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제자인 이현필 선생의 말씀과 같이 신앙 안에서 개인이 바르게 되는 개체 완성이 곧 전체가 완성되는 우주 완성이다. 개인과 전체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로서의 통로는 인간의 역사적인 삶이다 . 역사의 완성 없이 개체 완성과 우주 완성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신앙 안에서 진리이다,
이세종 선생이 사셨던 삶과 기독교적인 영성이 분단의 아픔 속에서 자주독립국의 통일을 바라는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 인가? 한반도의 기독교인의 반응은 예수님이 승천 시에 감람산에 모였던 당시의 제자들과 같은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이까?"(행 1:6) 가 승천시의 제자들의 질문이라면 현재의 우리는 주께서 인류역사의 죄악인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 조국통일의 주권회복이 이루어지는 때가 이때이니이까?"라고 묻는 것이다. 지금도 한반도에 오신 예수님은 그때와 똑같은 메시지를 던지실 것이라 고 우리는 믿는다. “때와 시기는 아버 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 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 리라" 행 1:7-8). 예수님의 승천시의 이 말씀을 오늘 우리 역사에 비추어서 해석하 여 적용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희락의 삶을 한반도 에 사회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며 통일된 조국을 중심 해서 이웃나라와 평화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희락의 삶이 나라의 국혼 속에 회개를 통해 이루어 질 때 민족 에 싸움과 국가 간의 전쟁이 종식되 고 하나님 아버지의 구윈이 인류 역사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이 땅에는 예수님에 대한 증인 공동체로서 교회가 존재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 공동체로서 인류 구원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구현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 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며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서 어떻게 해야 하는개 여기에 해석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성자의 삶을 통해서 그 실현 방법과 길을 찾자는 것이다. 성서언어인 하나님 나라는 언어의 한계와 특성상 그 표현하는 매체가 있고 매체가 의미하는 실체가 있다. 그것이 언어의 비유적인 특성이며 우리는 표현 수단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그 매체가 의미하는 하나님 나라 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성서언어는 교리적인 해석과 함께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새롭게 해석될 수 있으며 해석된 그 의미를 찾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찾는 자아 탐구자들이다. 나의 개인적인 실체는 개인 속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실존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라여야 한다는 당위에서 나와 국가가 하나가 될 때 나의 개인적 실존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인식과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첫 마디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 지”는 지상의 아버지를 알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신 아버지를 바로 고백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보통명사로서 민족을 단위로 한 생활 공동체인 국가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관은 하나님의 이스라 엘 민족구원을 통한 세계 구원의 경륜을 말하고 있다. 나라는 개인보다 큰 생명체로 개인이 영혼을 갖는 것과 같이 국가는 국혼을 가지며 개인의 인격과 똑같이 국격을 가진다. ‘ 회개는 개인 단위의 회개와 함께 국가혼의 인격 속에서 회개될 때 하나님의 계획된 역사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자기 죄를 회개할 때 국가 간의 평화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고, 예수님의 성령이 나라 속에 구현될 때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이루 어지는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서 우리는 이세종선생의 삶과 영성을 성찰 해 보아야 한다. 이세종 선생의 제자인 이현필 선생의 가르침 같이 우리는 공산주의보다 앞서야 한다. 이세종 선생의 제자들인 동광원 수도공동체 사람들은 6. 25 때 탁발하여 밥을 얻어서 전쟁 고아들을 돌보고 함께 생활했다. 그 일을 위해 그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가정을 이루지 아니하였다. 교회를 사찰하기 위해서 조사 나온 인민보안대 책임자는 이러한 사실을 목격하고 교회를 칭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러한 교회는 하시오. 우리가 도와주겠소. 당신들은 우리보다 앞서 있소. 우리는 말로만 주장하는 것들을 당신들은 몸으로 실천하고 있소" 여기서 우리는 이세종선생의 기독교 영성과 공산주의 이념이 갈등 없이 하나가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이념의 통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져서 분단의 극복이 성취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이것이 이세종 선생의 삶과 영성이 보여주는 기독교 영성의 진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