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바퀴 / 김석수
뭉게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보니 문득 자전거를 타고 싶다. 엄지손가락으로 바퀴를 눌러 보니 쑥 들어간다. 집 근처 자전거포에 갔더니 펑크가 난 것은 아니고 공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왼쪽 브레이크가 작동이 안 돼서 손봐 달라고 했다. 주인아저씨는 손으로 살짝 당겨 보더니 괜찮다고 한다. 튜브에 바람을 넣고 체인에 기름칠을 했다.
자전거를 점검한 뒤 큰도로 건너 광주천 광암교 아래로 나왔다. 예전에 여러 번 다녔지만 오랜만이라 길이 낯설다. 오른쪽 천변은 하천 보수 공사로 자전거 통행 금지 팻말이 있다. 20여 분쯤 상무지구 쪽으로 내려오다 자전거를 들고 징검다리를 건너서 왼쪽 천변으로 나왔다. 극락교 밑을 지나니 갈대가 흰 수염처럼 바람에 너울거리며 내게 인사를 한다.
오후에 햇살이 정면으로 다가온다. 코스모스와 백일홍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다. 갈대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한참 달리다 앞을 보니 중년 남녀가 양쪽 옆에 짐을 가득 싣고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다. 바퀴가 작아서 빨리 가지 못한다. 어디 여행하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 앞을 가로질러 10여 분쯤 지나니 쉼터가 나왔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자전거를 거치대에 세워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쉬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홍콩에서 왔다고 한다. 예전에 홍콩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반갑다며 중국 선전시에 가까운 홍콩 신계에서 산다고 한다. 발달 장애 어린이를 치료하는 의사 부부로 우리나라에 여러 번 와서 한강과 금강, 낙동강을 자전거 여행한 뒤 영산강에 왔다고 한다. 한국의 경치와 인심에 반해서 매년 오고 있다며 4 대 강 자전거 완주 스탬프 수첩을 보여 주며 자랑한다.
그들은 오늘은 나주에서 내일은 무안에서 자고 싶은데 숙소 예약을 하지 못 해서 알아 봐 달라고 했다. 관광 안내소에 전화를 걸어 모텔과 팬션을 알아보고 예약해 주었다. 도와주어서 고맙다며 홍콩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담양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홍콩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들과 헤어지고 승천보 쪽으로 내려 가는데 갑자기 앞바퀴에 바람이 빠져서 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되돌아와야 했다. 차가 지나가는 도로까지 가서 자전거를 놔두고 택시로 집에 가서 승용차를 타고와 가져가려고 했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고 20여 분 걸었다. 뒤에서 누군가 “아저씨, 바람 빠진 지 오래됐어요?”라고 물어서 뒤돌아보니 50대 초반의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멈추고 고쳐 주겠다고 했다.
그는 자전거 뒤에 연장 가방을 바닥에 내렸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튜브를 꺼내어 펌프로 바람을 넣으면서 공기가 나오는 곳이 어딘지 살펴본다. 여러 번 바람을 넣고 자세히 이곳저곳을 봤지만 바람 나오는 곳을 찾지 못했다. 튜브에 바람을 가득 넣고 인근 강가에 낚시터로 갔다. 낚시꾼에게 양해를 구하고 튜브를 강물에 넣어보았지만, 공기가 새는 곳을 찾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자전거포에서 바람을 넣고 공기 밸브를 꽉 잠그지 않았다. 밸브에서 공기가 빠져나간 것을 모르고 펑크가 난 것으로 착각했다. 그는 튜브에 바람을 넣고 꽉 잠그고 다시 타 보라고 했다. 그도 제주도에 자전거로 여행하다 펑크가 나서 세 시간이나 끌고 시내까지 가서 고친 일이 있다. 그 뒤로 사고가 날 것을 대비해 여분의 타이어와 도구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봐도 알려 주지 않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차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해도 손을 가로저으며 웃으면서 사라졌다. 낯선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내게 도움을 주어서 고마웠다. 하얀 갈대 사이로 사라져 가는 그를 보면서 나도 하루에 한 번은 누군가를 도와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전거 바퀴가 두 개 중 한 개가 고장이 나면 탈 수 없듯이 우리도 서로 도와 주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첫댓글 와! 큰 도움 받으셨네요. 아마 그분도 기분 좋으셨을거예요.
네, 그래요. 그 사람 도움이 없었으면 고생 좀 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됐을 텐데 애써 도와주는 마음이 요즘 사람은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만때면 가을을 담은 나주 승촌보로 가는 자전거길이 참 좋은데 돌발상황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두루두루 어울려 사는가 봅니다.
도움을 주고 또 받고, 아름답네요.
글 읽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남습니다.
직장에서 젊어서는 선배님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구나 매번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라고 안심하지요.
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썼답니다. 간결하게 정돈된 선생님의 문체기 좋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