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산 / 김석수
광주 북구 운암동에 있는 산이야. 서영대학교 뒤에 있지. 주변에 아이파크, 하늘채, 금호, 한양, 로제비앙 아파트가 있어. 정상이 591미터이지만 맑은 날이면 무등산과 나주 금성산, 담양 추월산을 볼 수 있지. 밤이면 첨단 지구 야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안개 낀 아침이면 산동교 아래 영산강 경치도 장관이야. 밤낮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어.
먼동이 트기 전부터 사람들이 전짓불을 비추면서 찾아와. 그 노인네들 잠도 없는가 봐. 김 씨 할아버지는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오지. 혼자 조용히 들으면 좋겠는데 소리를 크게 틀고 다녀. 새벽부터 시끄러워 죽겠어. 할머니가 없는가 항상 고개를 숙이고 혼자 걸어 다녀. 멀리서 트로트 노랫소리가 나면 그 영감이 올라오는 것이 틀림없어. 내게는 그가 항상 첫 손님이지. 그 영감탱이는 가끔 중간쯤 올라와서 오줌을 누는 버릇이 있어. 집에서 일을 보고 나왔으면 좋을 텐데. 아침마다 산책해서 그런지 아직 오줌발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애.
서 씨 모녀는 맨발로 다녀. 요즘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이 낮이나 밤에도 맨발로 올라와. 어두컴컴한데 다칠까 봐서 걱정이야. 야자수 멍석이 깔린 곳이나 흙길은 괜찮지만 위험한 곳이 많거든. 뱀에게 물릴 수도 있어. 요즘 뱀은 독이 올라서 한 번 물리면 죽을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지난번에 어떤 젊은 여자가 뾰족구두를 양손에 들고 맨발로 걷더니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어. 발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더라고.
아침에는 부지런한 중년 남자가 많지. 경찰서에 다니는 이 씨는 오자마자 철봉에 매달려서 근육을 단련하지. 처음에는 턱걸이를 한 개도 못 했는데 이제는 다섯 개씩 네 번을 한데. 그는 늘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을 해. 아들이 철봉에 올라가는 고무줄과 헬스 끈을 사줘서 턱걸이할 수 있다고 자랑하더구먼.
오전에는 중년 여자들이 많이 와. 대부분 가정주부야. 남편이나 자식들이 직장에 나간 뒤 집 정리하고 오는가 봐.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 많아. 개가 대변을 보면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이 많아. 냄새가 나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나. 어떤 사람은 개에게 목걸이를 채우지 않고 데리고 다녀. 어이가 없어. 입마개를 하고 목걸이를 채운 뒤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것이 기본 아니야. 여자 둘이 걷다가 남편 흉을 보는 사람이 있어.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키기만 한다고 짜증을 내더라고.
오후에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남자나 퇴직한 사람이 대부분이야. 담배를 물고 오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이 무서워. 지난봄에 불이 나서 내 몸이 시커멓게 타졌거든. ‘산불 피해로 인한 등산로 응급 복구 공사를 조속히 완료하겠습니다.’란 팻말을 보면 한숨이 나와. 내 몸은 치료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 등산로만 복구한다니 참 어이가 없어.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지. 담배 피우는 사람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녁이면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들이 가끔 오지. 저녁 먹고 소화하려고 오는 것 같아. 귀에 리시버를 끼고 오는 사람이 많아. 정상에 있는 벤치에 앉아 야경을 보면서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도 있지. 무슨 음악을 듣는지 잘 모르겠어. 남녀가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 새나 다람쥐도 웅크리고 앉아서 잠을 청하는 시간인데 크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해.
그런데 이제 내게 문제가 생겼어. 엊그제 구청 사람이 와서 측량하더니만 구획을 지어서 개발한다고 하네. 몇 해 전에도 팔다리를 잘라서 빌딩을 세우더니만 이제는 내 등을 파헤치려고 해. 길을 넓히고 군데군데 밭을 만들려고 땅을 긁어 파서 뒤집어 놓았어. 봄이면 꽃으로 단장하고 여름이면 숲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지. 가을이면 단풍으로 눈을 즐겁게 해 주고 겨울이면 하얀 눈으로 설국을 만들기도 했지. 그런데 이제는 그 아름드리나무를 없애고 대지를 파헤쳐서 시멘트 건물을 앉히려고 해.
당신네는 욕심이 많고 무지하지 않은가. 우리와 함께 있는 동물, 나무, 풀, 샛강 심지어 바위와 공기조차도 한형제며 누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답답하네. 나는 당신이 지치고 힘들면 그늘이 되어 주었지. 당신네 부주의로 불이나 온몸이 타버려도 아무런 불평하지 않았어. 아파트를 지으려고 손과 발을 잘라도 그냥 넘어갔지. 이제 몸통까지 자르려고 하니 기가 막히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자식에게도 일어난다네. 당신이 한 행동은 반드시 그대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네.
첫댓글 정말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게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쓴 글이 맞나 다시 확인했습니다.
네, 내가 쓴 글입니다.
환경 보호 단체에 보내야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운암산을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등산할 때 이어폰 좀 끼고 돌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겐 음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음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그래도 안 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