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붑’이 되기까지
예수님은 결혼도 못한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고
부처님은 야소다라비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두었다지만
아직 달콤한 신혼이나 다름없는 29세에 집을 나왔다 하고
공자님 역시 외아들 鯉를 낳지만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상갓집 개처럼 세상을 떠돌았다*하니
일찍이 장가들어 생기는 대로 아이 낳아 키워내고
은혼 금혼을 넘어 회혼을 바라보는 나는 누군가
젊었을 때는 아옹다옹 티격태격 사랑싸움도 하면서
우려내는 퀴퀴하고 시금털털한 맛 묵혀왔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눈 흘김과 꽥 소리 지름
온갖 참견 그 많은 구박 다 받아가며 까닭 없이 들들 들볶이며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결혼생활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꿈꾸며 꿈으로 끝내고
모멸과 수치의 나날을 살아가는 나 왜 사는지
전지전능하고 대자대비하고 생이지지했다는 그들이 알까
다른 건 몰라도 애송이 예수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결혼초반에 가정을 버린 부처님도 마찬가지 나를 모를 것이고
가부장적 권위만을 앞세워 마나님을 쫓아낸 공자님도 다를 게 없어
쇠심줄같이 질기디 질긴 부부의 끈을 이어가며
부부夫婦가 부부婦夫로 어느새 자리바꿈하고
다시 부夫의 존재가 마모되어
부부는 일심동체 부부婦夫가 둘 아닌 붑이 되기까지
견디어온 아픔 정말 장하다할까
어리석다할까
21세기 대한민국의 남편들
실은 부처님 오신 날이면서 부부의 날인 오늘
몇 송이 꽃을 바쳐 볼까
맛있는 외식으로 유도해 볼까
몇 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일심동체一心同體는 결코 쉽지 않아
백방百方이 백방白放으로 끝날 수도 있어
붑의 꿈도 물 건너가고
말짱 도루묵 나무아미타불 아멘
나무관세음보살 아멘
*사마천의 사기 공자열전에서
눈물이 주르르
오늘 아침 아내가 포문을 엽니다
연속극에 푹 빠져있던 아내가
티브이도 함께 볼 수 없다면서
당신은, 당신이란 인간은 빵점 빵빵빵 빵의 빵점이라는군요
순간 내 귀를 의심하는 나는 왠지 눈물이 주르르
아내 말고 누가 나에게 빵점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고맙습니다 눈물 나게 빵을 많이 줘서
『희망의 나이』*라는 모시인의 시집이 있지요
지금 이 나이에도 나는 안내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오늘도 오늘보다 더한 괴로운 나날일지라도
지금부터가 바로 희망의 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왠지 나는 눈물이 핑 돌아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언제까지 져주는 전략에
속안으로 자꾸 눈물이 주르르…
그럼에도 불구학고
나는 절대 아내를 포기 못합니다
*『희망의 나이』 김정환 시집(창비 1992)
나, 나의 반성 나의 맹서
나, 나라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밴댕이 소갈머리에 쥐머리에 소견머리 소갈딱지 없고
방정맞고 게으르고 못 참고 못 하나 못 박는 무엇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
남을 배려 못하고 저만 아는, 저만 위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나는
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오며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봤을 내 아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니
맞겠지요 나는 정말 밥만 축내는 나쁜 남편입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아주 나쁜 놈입니다
남들은 나를 순한 사람 편한 사람 양보할 줄 아는 사람 넉그러운 사람 마음 넓고 이해심 많은 사람 적응 잘 하고 잘 참고 잘 견디는 사람 어쩌고저쩌고 말들 하는데
따 틀렸습니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
오랜 고향 친구들 오랫동안 같이했던 직장동료들 오랜 제자들
상당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 오다가다 한두 번 만난 사람들까지
남들은 남들일 뿐인데 날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다 틀렸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십 초반에 만나 팔십 넘도록 오랜 세월동안 시간과 공간을 같이 쓰고 나눈 내 아내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는 내 아내는 이 모두를 한꺼번에 다 부정합니다
모두 틀리고 그 반대입니다
아내의 소신은 오로지 그 반대말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나는 지금 아주 슬픕니다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우선적으로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습니다
만인에게 인정받기보다
단 한 사람 내 아내가 눈곱만치라도 긍정해 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애처가인가요 공처가인가요
아, 이 시각부터 애처가요 공처가
나를 오롯이 비우고 오로지 아내에게 올인, 어린 양같이 순종만 하겠습니다
2017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