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십자가도, 죄를 깨닫는 능력
10/10화(火)행 2:32-38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행 2:37).
주님을 체험한 사람이 꾸는 꿈이 비전입니다. 비전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십니다. 주님을 체험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어 보이지만 믿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깨닫기만 하면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 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예수 믿어도 성경의 약속이 내게 주신 약속으로 믿어지지 않고, 삶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인격적인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어지게 됩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면 샘솟는 기쁨이 생깁니다.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면 세상 물을 마실 때보다 만족함을 얻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누구나 수가성 여인처럼 충만한 체험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 인간의 힘으로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을 찾아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면 해결됩니다.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요 4:28-29)
주님을 만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만난 주님을 전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세상의 환란, 핍박,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롬 8:37). 주님과 인격적 만남은 십자가 도를 통해 체험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체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자가 도를 설명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달을 때 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달으면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죄란 종이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 생각하며 십자가를 보면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회개를 하게 됩니다(행 2:38).
▣사도바울은 율법으로 완전한 자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장 잘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오히려 자신이 주님을 핍박한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죽었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죽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 1:15).
▣베드로 사도는 어부 전문가입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어부로서 한계를 느꼈지만, 자신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터지도록 고기가 잡힙니다.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주님 없이 살아온 것이 죄입니다. 자신이 주인으로 살아온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 5:8).
십자가 도는 주님을 만나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게 하시고, 예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받아 회개하게 하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성령 받아 능력있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은 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어찌할꼬’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들을 죽여야 할 죄가 내 속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38).
And...
십자가를 보며 깨달아야 할 가장 큰 죄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죄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에 내가 달린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십자가에 달릴 만큼 큰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고,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은 주님이라는 것이 믿어집니다. 내가 회개할 죄는 주님을 떠나 살았던 죄,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죄, 그런 죄들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죄가 깨달아질 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주님의 은혜였다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요즘은 사단이 참 많이 역사합니다. 아마도 주님 응답의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은 도구일 뿐이고, 그 사람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든 사단이 역사하든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 사람을 통해 상처를 받게 되면 왜 그 사람이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주님 앞에 나가면 주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인간은 도구일 뿐이란다. 그 사람을 통해 사단에 역사하면 너에게 상처가 된단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가면 변명할 수 없습니다. 주님,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을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자녀야, 너무 기죽지 마라. 네가 높아 있단다. 너를 낮은 자리로 낮추어라’ 주님은 위로를 주십니다.
우리의 육신이 깨어지는 날까지 그놈의 자아와의 싸움입니다. 높아졌다는 것은 자아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앞섰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입니다. 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낮은 자리로 가게 하소서, 하고 죽음의 자리로 넘깁니다. 깨닫는 것만도 큰 은혜입니다. 깨달음을 주시면 종의 위치로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이런 면은 아닌 것 같아’라고 다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바로 내면의 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더는 판단하는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매 순간 주님을 인식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죄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 사도바울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죄는 스스로 자기 힘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직 내 삶이 억울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지금도 자신이 주인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면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가 나를 훈련하는 자리라 믿기에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 주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내가 주인으로 내 생각대로 살아온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주인의 위치에 모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의 삶이 단순해집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급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급해집니다. 모든 책임이 주인에게로 위임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내가 죽을 때, 온전히 나에게 하나님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가 살아나십니다. 그것이 우리 문제의 해결방법입니다.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의 전달자
https://youtu.be/Xe6M-y9HHc8?si=E2yM1ISvKQc3fUz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