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구리 료헤이(栗良平,1954년 북해도 생)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은
당시 일본열도를 눈물로 강타하며 국회에서까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고...
해마다 섣달그믐날이 가까워지면, 북해도의 찬바람같이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마치, 한 그릇 우동국물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김처럼,
나눔과 배려와 사랑, 용기와 감동을 안겨주기에~, 눈시울 적셔가며 뜨겁게 읽었다고 합니다.
(길어서 연재합니다^)
우동 한 그릇
해마다 섣달그믐날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 년 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 정>도 이날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 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 여자는
"이제 두 시간도 안 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 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 머뭇 말했습니다.
"저…우동…1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갑작스러운 주문을 받은 주인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에 우동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한화 약 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 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12월 31일 섣달그믐날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지나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의 반코트를 본 순간,
일 년 전 섣달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자는 그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말했습니다.
"저…우동…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 본 주인아저씨는 "네엣! 우동 1인분!"
그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우동 하나 반을 더 넣어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머리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아…맛있어요…"
동생이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올해에도 이 가게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동생의 먹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형이 말했습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인 내외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번에도, 우동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그날 내내 되풀이한 인사였지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크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의 섣달그믐날 밤은
<북해 정>의 주인 내외는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밤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벽에 붙어 있던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습니다.
금년 여름부터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가
150엔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번 식탁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졌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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