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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주일 [총명의 어두움과 마음의 굳어짐이 없는 교회]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리스도 교회의 참된 성도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기에 필요한 영적 감각이 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마음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잘 가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잘 알고, 교제할 수 있는 성도는 그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의 기업을 잘 이어갈 수 있는 합당한 삶을 잘 갈 수 있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주님은 빛을 비추신다.
[빛이 비추일 때]
누구에게든 주님은 빛을 비추신다.
그가 비추실 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해야 한다.
말씀을 순종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로서, 전체적인 그의 뜻을 아는 자로서, 그가 원하시는 일을 잘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단지 성경의 한두구절 말씀이 일컫는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하신 문맥을 알게 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빛을 잘 받은 자다.
사람이 그의 빛에 잘 순종할 떄, 그분도 그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은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그분과의 교제를 잘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매우 정상적이고, 온전케 이루어진 그리스도인의 경우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꼭 이렇게 되지 않는 영혼들도 많다.
애초에 빛을 비출 때, 그것을 잘 받고, 순종하는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거절하고, 빛이 비출 때, 무시한 자들이다.
빛이 비출 떄, 반응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반응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꿰어져, 점점 이상하게 발전할 수 있다.
겉으로는 다른사람은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은 경건한 체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서 자기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을 속이고 있고, 하나님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실 때, 그것을 거역하고, 내가 원하는 것으로 달리 해석하여, 달려왔기 때문에, 자신이 신자라고 하지만, 신자로 삼으신 하나님을 나쁘게 하고 있다.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라고 모두 완벽하진 않다.
우리도 많은 경험을 했지만, 악한 말로 선동해서, 이간하고, 남을 상처주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악행을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 한 것인데, 겉으로는 의로운 것처럼 주장한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나는 이렇게 한 것이고,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어느 선에서는 본인이 자신의 타락을 느끼지 못한다.
타락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한 사실에 대해서, 없는 것으로 스스로 여기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자기는 진짜 불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잘못된 것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양심이 있어서,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데, 어느덧 경고하는 힘이 너무 약해져서,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여기까지 오면, 굉장히 위험하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드물지 않다.
세상에서는 양심을 무시하고, 학대한 후에야 비로소 세상의 투쟁에서 이기기가 쉬울 수 있다.
세상은 자비로움으로 나누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양심이 거의 작동을 하지 않는데도, 만족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신자의 경우,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 와 있기 떄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사람과 얼마든지 함께 하시려고, 충실한 노력을 하셨는데, 자기의 양심이 눌릴 정도로 변화해 왔다면, 거기서는 더 이상 하나님은 그를 도우실 수 없다.
그런데도 본인은 타락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 것과 눈치채지 못한 것은 평행선으로 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 하면서, 자신도 스스로 속인다.
그러면서 마음은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의롭다, 내 책임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나는 잘하고 있다 가정해버린다.
그러는 동안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은 묻혀버린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새생명의 삶을 대실패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영광과 행복을 약속했던 것들이 그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된다.
이렇게 했는데, 벌받지 않았다, 괜찮다고 하면서, 그 마음이 진행된다.
결코 괜찮지 않다. 최종 결과는 나온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런 결과를 즉시 나타내시기도 하고, 조금 이후에 나타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든 마지막을 위해 그대로 있다.
자기 스스로 부인할지라도, 그 사실을 없앨 수는 없다.
반면, 하나님의 빛이 비출 때, 반응하는 자들이 있다.
특히 하나님 앞에 회개한 자.
자신의 미덥지 않은 진실을 알고, 하나님 앞에 더욱 아픈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 자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그 자들이 이 시기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 사람을 위한 긍휼.
그 사람이 이 땅에 왔다 간 목적이 이루어 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임재하시고, 긍휼을 베푸신다.
그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
그렇게 믿음의 선조들이 바라기만 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효력은 거기서 맹렬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빛이 비출 때, 반응해야 한다.
우리에게 먼저 두드리는 하나님의 빛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잘 이루어지는 영적감각이 활짝 열린 자들 되자.
[본문]
엡4:17에 이어서, 두번째, 특징.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의 특징이 나온다.
[총명이 어두어짐]
지난번에는 마음이 허망한 것을 말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허망한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니까, 허망한 것으로 달려가는 것은 전 우주적으로 불신자들의 특징이다.
타락 이후의 인류의 특징이다.
두번째 특징은 진리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다.
영적으로 아는 것이 없게 된다.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이것을 들을 때, 누구는 자기에게는 해당이 안된다고 한다.
자기는 영적 지식이 많다고 하지만, 정보로서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정말 알고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불교신자들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기본상식이 있다.
유럽에 가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죄다 말하면서, 교리를 줄줄 읊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에게는 지식이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영적 앎은 없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총명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생각하는 기능을 말한다.
사고, 이해.
총명은 지난주 우리가 나누었던 단어와 개념, 마음, 생각하는 본부와 나란히 교환할 수 있는 단어다.
하나님에 관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인지적 감각이다.
이런 것은 구약에도 확인된다.
구약이 헬라어로 번역될 때, 총명이나 마음이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을 담당하는 기능이 어두어진다.
문법적으로 어두운 상태가 계속 됨을 말한다. 완료분사다.
이것은 많은 면에서 인류의 타락한 원래 상태를 기억하게 한다.
인류가 타락해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때, 처벌로서 상실한 것이 있다.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이 접촉할 수 있는 기능이 상실되었다.
그것이 온 인류를 지금까지 어둠속에 두게 한 부분이다.
이런 부분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회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이 회복되어, 그와 교제하는 자가 있고, 여기까지 베풀어주셨음에도 거절하는 자도 있다.
[자신 안에 무지함이 확대됨]
하나님을 거절하고, 무지 상태에 있는 상황이 오늘 그리스도 교회가 회복하는 상황에서 극명하게 모양을 달리해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요즘은 무지하다고 하면, 화가 날 것이다.
오늘날 무식하다는 말은 죄인이라고 하는 말보다 기분 나쁘게 들린다.
지금 문명은 정말 기막힐 정도로 발달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 문명에 대해서 자신이 있다.
지난 십년에 쏟아진 기술과 거기에 맞는 문화적 발전, 사람의 마음이 가져온 결과를 보면, 인간 자신에 대해 엄청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대학졸업자도 많고, 문맹자도 굉장히 적다. 지금은 무식한 자들이 없다.
과거에 수년간 나올 정보가 하루만에도 쏟아진다.
무지무지한 정보가 나오고 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되게 무식하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는 묘하게 닫혀 있다.
딤후3: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그들은 이성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본문의 이방인은 마음의 이해하는 기능에서 빛이 사라졌기 때문에, 참 진리,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것은 이제 회복에 이르는 정상적인 모습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과는 반대쪽에 있는 부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고,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있다.
반대쪽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성경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독려하고, 경고하고 있다.
엡1:17-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 저들 속에 하나님을 아는 무능력이 장치가 되어있다고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뛰어나게 자기를 개발해서, 남들보다 뛰어난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꺠달을 수 있는 이 기능이 상실되었다.
애초에 죄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지함의 원인은 죄]
죄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무관하지 않다.
무지를 갖고 온 것은 결국 죄다.
애초에 하나님을 배척했던 행위가 있었던 사람에게는 어둠이 밀려오고 있음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가깝게 왔었는데도, 이 사람은 결국 어두움의 결과만 얻게 되었다.
여러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럴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자기가 자기 의지로 거절할 때, 하나님은 법적으로 결정하신다.
그가 거절할 때, 그 사람의 눈이 완전히 어두워 질 것을 결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결정하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영적 무지에 머물게 된다.
하나님이 확정하시면, 그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가 와도, 막아지게 된다.
롬1:21,22,24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나는 신자인데, 괜찮겠지. 아니다. 신자일지라도, 불신자와 똑같이 거절한다면, 달리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여, 자기가 좋은 것만 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기 쉽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 버린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삶을 여시는데, 이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십자가 은혜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모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더러움에 그냥 버려두신다.
어떻하든 누구든 하나님을 만날 길이 있다.
교회 옆을 지나가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롬1:19-2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모두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다음 특징이다.
[마음이 굳어짐]
마음이 굳어지면, 반응하지 않는다.
성경에 마음이 굳어진다는 표현이 많다.
막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완악함이 굳어짐이다.
요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고후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완고한 것은 마음의 의지와 결단과 연결하여 언급되고 있다.
출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시95:8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바로가 재앙이 올 때는 이스라엘을 보내려고 하다가도, 재앙이 그치면 말을 바꾸었다.
그의 마음이 강퍅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가 장착되고, 더욱 더 무섭게 마음이 굳어진다.
성경은 마음의 굳어짐을 엄청 경계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순종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결정이 그 사람의 영적 감각을 완전히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순종하지 않을 것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래서, 언젠가 진리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까지 오게 된다.
그런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여러곳에서 언급하고, 경고하고 있다.
이사야서를 보면, 어떤 사람이 나무로 불쏘시개도 하고, 가구도 만드는데, 신상을 새기고, 신이라고 한다.
나무로 봤어야 하는데, 감각이 허무맹랑하게 빗나간다.
사람이 죽어서 영안실에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들을 수 없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영적 증거를 들을 수 없다.
이것이 굳어짐이다.
굳어짐은 의학적 용어로도 쓰인다.
굳어짐은 무언가 단단한 상태를 말한다. 석회화.
사람이 다쳐서, 뼈가 부숴졌는데, 방치하면, 석회화를 가속시킨다.
그러면, 부러진 뼈가 더 강하게 굳어진다.
또, 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관절이 단단해 져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굳어지니까, 잘 움직이지 않는다.
죄는 결국 사람을 굳어지게 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자기 뜻을 따라, 계속 죄를 범하게 되면, 몇십년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한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은 굳어져서,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들을 수 없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적 진리에 대해 완전히 마비되고, 무감각해진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치 않는 습관과 연결된다.
[자신의 죄성을 인정치 않는 치명적 습관]
자기가 어떤 잘못을 하면,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데,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남이 잘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진짜 본인의 죄에 대한 책임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습관적으로 남탓을 하지만, 죄의 결과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자기를 합리화하려고 한다.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고, 죄를 부인하려고 한다. 이렇게 도덕도 완전히 무시한다.
그러나, 그가 범한 죄의 책임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남아서, 그를 집어삼킬 것이다.
사단이 가장 집중해서 하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는 일이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빛을 보지 못하게 무지 속에 가두어 놓는 것이 사단의 일이다.
빛을 보려고 하면, 사람에게 유혹하는 마음을 주어, 마음을 돌려 놓는다.
어떤 이는 자기가 영적 지식이 많다고 하면서, 정보는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신자들도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을 수도 있다.
왜 나에게 돈을 주지 않나요.
은혜의 복음을 무시하는 자는 그리스도가 나타나도, 육신의 욕심만 나타낼 것이다.
신앙생활 몇십년을 해도, 껍데기만 있다. 하나님과 교제는 외면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지만, 자기는 신자라고 믿기를 원했다.
하나님에 대한 배척의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이 사실은 사단에 의해서 확인되고, 사단에 의해서 배척하는 습관이 강화된다.
결국 자기의 몇번 이어진 선택들이 결국 사단에 의해서, 발견되어, 가속되고, 하나님에 의해서 확정된다.
확정되면, 마음이 굳어지고, 이제는 눈이 멀게 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요12:37,39,40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유대인들은 모세에게 배웠고, 선지자에게 배웠지만, 아버지와 똑같은 아들이 나타났어도, 의도적으로 믿지 않으려고 했다.
반복적으로 의도적으로 믿지 않으려고 하니까, 확정되었다.
계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사람들에게 빛이 비출 때, 무엇을 할까.
빛은 사람의 내면에 비추는 하나님의 의다.
그 빛은 내 상태와 너무 대조된다. 그래서, 아픈 반응이 일어난다.
요12:35-36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아프니까, 빛을 차단하면, 굳어져서, 석회화가 빠르게 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부터 그는 우리의 빛이시다.
우리가 그를 소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비추는 빛이시다.
그는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다.
사람들은 죄에 거할 때, 무감각해진다.
[양심이 기능을 잃게 됨]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게 된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방책을 쓰는 것이다.
이런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거절하는 자는 양심에 딱지가 생긴다.
딱지는 보통 피부보다 더 단단하지만, 감각도 별로 없다. 석회화 되는 것이다.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그래서, 몹시 더러운 상태가 되었어도, 느끼지 못한다.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고대 헬라 이야기가 있다.
어떤 청년이 다른 사람의 여우를 훔쳐서 가다가 주인을 만났다.
그는 다급하게 그 여우를 자기 품속에 숨겼다.
주인이 물어봐도, 부인했다. 여우는 답답하니까, 그 청년의 속을 파먹었다.
그는 자기가 훔쳤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속이 파먹혔다.
그것이 인간의 성품이다.
자기가 고백하지 않는 것이 자기를 찢고, 자기 생명을 빼앗아갔다.
애초에 주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욕망이 앞서서 이런 나쁜 일을 행하게 된다.
이런 일들은 양심을 불로 지져버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양심이 기능을 못하게 된다.
롬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의도적인 완고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감각하게 되는 결과를 갖는다.
엡4:19에는 이후 도덕적 파산을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게 됨]
총명이 어둡고, 굳어진 자는 하나님의 생명에게서 떠나있게 된다.
원래 인간이 타락해서, 하나님과 떨어졌다.
요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하나님과 떠나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되었다는 것이다.
엡2:1,5,1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 죽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떠나 있는 자는 육신이 남아있어도, 죽은 자와 같다.
그와 교제하고 인도받고, 사랑많이 받는 자들 되자.
선택의 기로가 올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다 잃더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의 빛을 받을 때, 회개를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그의 긍휼을 받기 바란다.
빛이 비출 때, 평생 그 빛을 반사하는 자가 되자.
그 빛이 아프더라도, 그 빛을 반사하자.
오늘 쓰러지더라도, 주를 의지하는 자들 되자.
세상사람처럼 교회에 와서 가증하게 하지 말자.
사람은 못볼지라도, 하나님은 보신다.
여기 교회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데려갈 분이 있는 것과 같다.
나 교회 사랑하리라.
세상은 모를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항상 죄송하고,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하며, 항상 회개하는 자가 되자.
우리 마음이 어두워지고, 아무런 지식을 가질 수 없게 되고, 굳어지면, 하나님의 생명에게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
우리의 미련함이 발생하지 않게 도우소서.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굳어짐이 없도록 충만히 임하시고, 당신의 빛이 임하실 때, 충만히 받아들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