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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769) - 코로나로 꺾인 어느 부부의 세계여행 꿈
지난주부터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이 부분 개관하여 3개월여 중단된 도서대출 업무를 재개하였다. 일과 중 새로 빌린 책 읽기가 추가되어 단조로운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 읽은 책에서 새긴 한 구절을 옮긴다. ‘위기를 의식하는 자는 자신의 자리를 편안히 유지할 수 있으며 멸망에 대비하는 자는 자신의 생존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기의 순간을 잊지 않고, 혼란을 걱정하는 자는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 편안히 생활할 때도 멸망의 화를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혼란을 잊지 않으니, 이로써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에서) 바야흐로 위기를 의식하고 혼란에 대비할 때, 이달 말부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21대 국회의원과 위정자를 비롯하여 범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를 제대로 익히고 실천하는 덕목을 키웠으면.
날마다 걷는 무심천변의 꽃물결이 화사하고 풀숲이 무성하다. 생기 감도는 산책길이어라.
해마다 두 세 차례 외국을 여행하곤 하는데 제7차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로 일본을 다녀온 지 만 1년, 언제 다시 외국 길에 나설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누구나 동경하는 해외여행의 꿈, 영국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평생의 꿈을 담아 나선 7개월 예정의 세계여행을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도하차한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그들의 좌절이 더 큰 보람과 기쁨으로 보상되기를 바라며 꽉 막힌 세계의 문이 하루 빨리 활짝 열리면 좋겠다. 흥미로운 체험기를 통하여 코로나 팬데믹 중 높아진 한국의 스마트 파워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음은 가외의 소득, 언론에 소개된 ‘코로나 오디세이…좌절된 부부의 7개월 여행 꿈’을 음미하며 외국여행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코로나 오디세이…좌절된 어느 부부의 7개월 세계여행 꿈
2018년 11월 마치 장맛비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오후, 한국인 아내와 영국인인 나는 부산 해운대 한 카페에서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오랫동안 둘만의 긴 여행을 꿈꿔왔던 터, 그 동안 번 돈을 몽땅 이 꿈의 여행에 투자하기로 의기투합했다. 22개 나라를 7개월 동안 여행하기. 2019년 12월부터 발리, 호주, 뉴질랜드, 쿡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3월 말부터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돌기로 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내는 회사에 사표를 냈고 나는 휴직을 신청했다. 항공권과 숙소 예약은 완벽했다. 문제는 딱 한 가지, 여행의 출발 일을 2019년 12월로 잡은 거였다.
우리가 한국을 떠난 2019년 12월 19일,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성 폐렴이 집단 발병해 9명이 신종 희귀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가 호주 시드니에서 2020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던 즈음 코로나19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됐다. 코로나19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던 2월 초 우리는 뉴질랜드에 있었다. 도보 여행을 하던 우리 귀에 뉴질랜드 정부가 중국에서 오는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2월 7일에 뉴질랜드를 떠나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쿡 아일랜드로 이동했다. 그 일주일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해변과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코로나 19는 미국과는 거리가 먼 일인 것 같았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우리가 한국에 없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멕시코 여행 기간 한국의 확진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여행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시기는 없을 거라며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3월 5일, 우리는 예정대로 코스타리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날 코스타리카 정부가 한국에서 오는 여행자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지만, 산호세공항 입국 심사에서 지난 3주간 멕시코에 있었다고 하자 별말 없이 입국을 허가했다. 그리고 3월 11일 우리가 몬테베르데 운무림에서 자연을 느끼고 있을 때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몬테베르데 남쪽 케포스에서 우리는 여행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질지 모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행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계획하고 준비한 것을 포기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아직 여행해야 할 나라가 15개국이나 남아 있었고, 20개가 넘는 항공권이 예매돼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다음 여행지인 쿠바에선 3월 11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계획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3월 15일 케포스에서 산호세를 거쳐 코스타리카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쿠바로 이동하기 전, 우리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여행을 완전히 중단하고 한국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일정을 조금씩 변경하며 여행을 이어나갈까,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계획한 대로 여행을 계속할까. 여전히 결론은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였다. 3월 16일 아침, 쿠바 아바나로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바나에서 3박 4일 지낸 후 파나마를 거쳐 뉴욕으로 가서 바로 런던 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영국에 좀 있다가 4월에 아이슬란드로 가자, 가서 다시 여행을 계속하자.
3월 16일 오후 6시 아바나에 도착했다. 쿠바가 국경을 봉쇄하기 나흘 전이었다. 3월의 아바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아바나를 즐길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고색창연한 건물도, 카리브 해안가에 늘어선 형형색색의 구형 자동차도 우리에겐 사치였다. 이곳에서 할 일은 뉴욕 행 비행기 표를 바꾸는 것, 그뿐이었다. 그런데 사무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건 길고 긴 줄이었다. 줄 서는 건 포기하고 가까운 호텔로 달려가 인터넷 카드를 사서 와이파이에 연결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날 밤 아바나에서 미국 마이애미로 가는 항공편이 있었다. 3월 18일 자정 조금 넘어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하루라도 빨리 런던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직항은 없었다. 뉴욕을 먼저 가야 했다. 50분 뒤 출발하는 뉴욕 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런던 행 비행기 표를 위해 버진애틀랜틱항공사 창구로 갔다. 그곳의 창구 앞에도 긴 줄이 있었다.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들은 말은 ‘출발 일자를 변경할 수 없는 항공권입니다’였다. 2박 3일 동안 우리는 코로나19가 한창 극성인 뉴욕에서 지내야 했다.
드디어 3월 20일 런던 행 비행기에 올랐다. 7시간 비행 후 런던에 도착했다. 비행기 기장은 안내 방송에서 언제 다시 비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직원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며 울먹였다. 마음이 먹먹했다. 런던 히스로공항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우리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거나 여행 경로를 묻지 않았다. 당시 영국 확진자 수는 거의 4000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사망자는 200명 가까이 됐다. 한국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였다. 우리가 영국에 도착한 지 사흘 후, 영국 정부가 국가 전체 봉쇄령을 내렸다. 우리는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세계여행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갔다. 안전한 피난처이자 천국일 것 같았던 영국 생활도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 안에 네 가족이 함께 지내야 했는데 장을 보러 자주 나갈 수가 없으니 음식을 먹을 때도, 집안의 물건을 함께 쓸 때도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하는 건 마치 전쟁 같았다. 언제 어느 항공사가 갑자기 비행 일정을 취소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직항이든 경유든 항공권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모든 항공권 예매 페이지를 검색했지만, 직항은 찾을 수 없었다. 2~3회 경유는 기본이었고 가격도 평소보다 몇 배 높았다. 겨우겨우 아부다비에서 15시간 경유하는 에티하드 항공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아랍 에미리트 정부는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모든 노선을 2주 동안 취소한다고 선포했다. 다시 다른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매일 각국의 국경 봉쇄 조치가 이어졌고, 그에 따라 항공사 티켓이 취소됐다. 우리가 과연 한국행 비행기 표를 살 수 있을까, 희망을 잃어가던 중 대한항공에서 추가 운항을 발표했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3월 28일 한국행 직항 티켓을(평소보다 훨씬 비싼 값을 내고)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영국 전체가 봉쇄돼 공항으로 이동할 때도 경찰의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했다.
드디어 우리는 여행을 떠난 지 103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우리가 경험한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위치추적이 가능한 자가격리 앱을 다운받아야 했다. 입국심사 전 체온측정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코로나19 기간 여행 중 체온 측정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대중교통 이용을 피해 택시로 집으로 가는데 아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금 자가격리지 이탈하셨다고 나오는데요, 집에 안 계시는가요?’ 관할 보건소 직원이었다. 조금 전 입국 후 앱을 다운받아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니 담당 공무원은 미안하다며, 우리가 집에 도착한 후 다시 전화했다.
귀국 바로 다음 날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검사받은 지 8시간 만에 문자로 결과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검사받은 날 기준으로 2주 동안 우리는 자가격리를 했다. 매일 2개 앱에 건강 상태와 증상을 보고해야 했고, 관할 구청과 보건소에서 거의 매일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하는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정중했고, 미안함이 묻어있었다. 2주 자가격리 기간, 여러 음식이 들어 있는 구호 박스와 지역 농산물 박스, 탈취제, 마스크, 손 소독 젤 등이 포함된 박스까지 무료로 받았다. 일주일에 3~4번은 담당 공무원이 직접 와서 자가격리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 내 쓰레기 처리를 위해 쓰레기봉투를 챙겨주는 섬세함도 보여줬다.
한국 정부의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인권침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그때마다 알아서 대처하고 스스로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던 우리에게 2주 동안 한국 정부의 도움은 정말 크게 안심됐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우리는 3개 대륙 6개국을 여행했고, 그중 미국 ‧ 영국 ‧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자가 격리와 봉쇄를 경험했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했지만 결국 가지 못한 국가들 대부분이 현재 국경을 닫거나 필수 검역 조치를 도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중이다. 우리가 계획했던 장기여행을 다시 갈 수 있으려면 아마 몇 년은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세계를 여행하는 계획을 하는 것조차 불가하겠지만, 우리의 세계여행 이야기에 잠시 책갈피를 끼워두고 기다리면 언젠가 아직 다 여행하지 못한 나라들을 여행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직 취소한 비행기 표 값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니까 말이다.(중앙선데이 2020년 5월 23일자에서)
*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6‧25 참전 용사에게 코로나 마스크 2만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식, 지난 24일 한국대사관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용사와 유가족 및 보훈병원에 감사의 표시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를 4월부터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프랑스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8만 명이 넘고 사망자가 3만 명에 육박하면서 마스크 등 방역장비가 부족해진 상황을 감안해 마스크를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해외로 입양된 한인들에게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보건용 마스크 37만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잘 하는 일이다.
첫댓글 친정이 잘 살면 든든한것같이
대한민국이 잘 사니까 외국나간
식구들까지 걱정하고 챙겨주니 어찌아니 기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