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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25년 계간 시와산문
신년 특별 대담
“한국을 대표하는 개념미술가
안규철을 만나다”
일시 2025년 1월 16일
장소 안규철 작가 작업실
주최 계간 『시와산문』
후원 장병환 시인 (본지 발행인·㈔시와산문문학회 이사장)
대담 안규철 작가·조형 예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역임. 1997-2020)
이은숙 시인·문화 칼럼니스트 (본지 편집주간)
협력 김창훈 시인 (본지 홍보위원) / 박 숲 시인 (본지 홍보위원)
안규철 미술가/화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7년 동안 『계간미술』에서 기자로 일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1992년에 첫 개인전을 열면서 미술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아홉 차례의 개인전과 여러 기획 전시회를 통해 일상적 사물과 공간 속에 내재된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발표해왔다. 199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를 역임했다. 서구 현대미술의 체험을 기록한 『그림 없는 미술관』, 사물에 관한 이야기 『그 남자의 가방』, 테이블에 관한 드로잉과 생각을 묶은 『43 tables』을 비롯해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첫 번째 이야기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두 번째 이야기 『사물의 뒷모습』, 세 번째 이야기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사유와 평론을 묶은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미술과 삶, 시대에 던지는 물음표 『안규철의 질문들』 등을 펴냈다. 역서로는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 히토 슈타이얼의 『진실의 색』 등이 있다. - 출처: 교보문고
: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선생님께서 평소 작업하시던 특별한 공간에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의미 깊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요즘 날도 부쩍 추워지고 있는데 연말·연초 지나면서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아울러 저희 『시와산문』 ‘에세이특집’ 지면에 이어서 이번에 신년 특집 대담으로 다시 이렇게 인사드리게 됐는데요, 저희 계간 『시와산문』에도 선생님 팬이 많이 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과 더불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제 작업실이 사실 조각가의 작업실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협소하고 어수선한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작년에는 일이 좀 많았어요. 개인전을 한번 하면 다음 전시까지 대개 한 2~3년씩 기간이 있었는데 작년에 개인전 2개가 겹치고 또 미술관 기획전이 2개가 겹친 데다가 책이 또 두 권이 나왔어요. 그래서 엄청 바쁘게 지냈는데 올해는 좀 천천히 숨 좀 돌리면서 지내볼까 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난 12월부터 시국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 올해는 좀 평온하게 한 해가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요.
: 감사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저희 홍보위원들이 계간 『시와산문』의 독자를 대표해서 드리는 질문 두 가지를 먼저 여쭙고 인터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특별히 선생님께서 한국을 대표하는 개념미술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물음인데요, 저희 독자들에게 ‘개념 미술’이라는 그 용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선생님께 따라다니는 ‘개념미술가’라는 그 수식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개념미술가라는 타이틀이 저한테는 그렇게 썩 내키는 타이틀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요, 우선 미술 전공이 아니신 분들한테는 ‘개념 미술’이라는 용어가 굉장히 생소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 그 당시에 현대미술의 한 미술 사조로 등장한 용어인데요, 미술 작업이라는 것은 시각적인 형태, 시각적인 조형 작업과 그것을 구성하게 된 작가의 의도, 그것을 이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두 가지를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보면 ‘개념 미술은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조형성보다는 후자의 개념 즉 생각, 의도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미술이다’ 이렇게 우선 간단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70년대에 유행했던 이 미술 경향은 그 이후에 경향으로서는 사라졌지만, 작가들의 작업 태도에 상당히 깊숙이 내면화된 상태로 유지되면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개념미술가라고 하는 꼬리표, 이것은 미술가 중에서 특히 이 ‘개념’을 강조한 사람들한테 붙여지는 타이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있어요. ‘그림 못 그리고, 그림 대신 말로 미술 하는 사람’ 이런 식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은 시각적인 매혹이나 감성적인 조형 이런 부분을 좀 결여하고 있는 그런 미술이라는 통념이 있고요, 또 이 말은 그런 미술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미술 작업이라는 것이 그냥 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머리와 눈과 손’이 같이 움직이는 것인데, 그러니까 결국은 생각하는 것과 감각 하는 것, 그리고 무언가 만드는 기술적인 것, 이 세 가지 요소가 같이 결합 되어 의미를 만드는 것이 미술인 것이죠. 그렇다면 ‘개념’은 미술에 당연히 포함된 것인데요, 원래 개념의 의미를 지닌 ‘미술’에 특별히 ‘개념적인 미술’이라고 형용사를 붙였다는 것은 결국 우리 미술에서 이제까지 머리는 빼놓고 눈하고 손만 강조해 왔다는 의미로 정리되는 결과를 자인하는 격이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좀 장황해졌네요.
: 명쾌한 설명 덕분에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후에 드릴 질문에도 그 ‘개념 미술’이라는 용어에 관한 질문이 있는데요. 그 물음에 대한 이해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홍보위원들이 대표로 뽑은 질문 두 번째는 그동안 선생님께서 전시해 오신 선생님의 작품들에 관한 질문인데요, 그동안 전시해 오신 작품 중에서 특별히 더 애착이 느껴지시는 작품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작품에 특별한 애착을 갖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한 장만 고른다면 2015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라는 전시에 내놓았던 「천명의 책」이라는 이 작품을 들고 싶어요.
: 아 「천명의 책」, 이렇게 포스트잇(Post-It™)으로 벽에 붙여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던가요?
: 그건 기억의 벽이고요.
: 아! 그러네요. 선생님. 그건 기억의 벽이네요.
: 「천명의 책」은 전시장 안에 필사할 수 있는 작은 방 하나를 만들어서……
: 아! 기억납니다.
: 관객들 신청을 받아서 정해진 시간에 그 공간에 와서 한 시간 동안 제가 준비해 놓은 근현대 소설, 책들을 릴레이로 필사하는 그런 작업이었어요. 지금은 전시가 끝나고 나서는 그 작품의 실체는 다 사라졌고요. 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인 형태는 없어졌지만, 전시의 결과물로서 관람객들이 써놓았던 필사 원고만 남았습니다. 1,300~1,400명 정도가 그 필사에 참여하셨는데, 그것을 인쇄하여 책으로 만들어서 필사하신 분들 댁으로 그걸 보내 드렸어요.
: 와~ 굉장히 의미 깊은 선물이었을 것 같네요.
: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돌이켜보면 그 작품은 이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그 사람들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으로 남았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고, 저한테는 그게 의미가 있는 것이 제가 계속 글과 그림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서 미술과 문학의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했던 작업인데요, 그 작업은 관객 참여형 작업으로 저한테는 제일 중요한 이정표가 됐던 작업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선생님께도 의미 깊은 작품이고, 또 관객들에게도 굉장히 의미 깊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참여 못 한 것이 못내 아쉽네요.
선생님, 최근 전시 관련해서도 여쭤보겠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굉장히 활발한 개인전 전시회를 이어오고 계시는데요.
작년 여름부터 스페이스 이수에서 이어진 〈안규철의 질문들, 지평선이 없는 풍경〉에 이어서 최근 12월 초부터 아마도 예술 공간에서 진행된 〈12명의 안규철〉 등 정말 성실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계시고 정말 부지런히 개인전을 이어오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간간이 수필집 출간도 하셨고요. 글쓰기와 미술 장르를 횡단하시는 종횡무진의 활동이 정말로 인상적인데요. 선생님의 전시를 보면 2015년에 있었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부터 대부분의 전시가 조금 전에도 얘기하셨지만, 그 설치된 공간과 그 공간을 넘나드는 관객의 참여 유도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규모가 큰 작업으로 보입니다. 전시가 끝나고 나면 정말로 지치셔서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다음 작품 전시까지 많은 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작업을 이어오고 계시는데요. 그럼에도 활발한 전시 활동과 저술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가실 수 있는 선생님만의 저력은 무엇인지, 그런 저력과 열정이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 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하고 종종 하는 이야기인데, ‘하루 종일 네가 무얼 해서, 무얼 했기 때문에 미술가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라, ‘내 경우는 하루에 30분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정도 앉아서 뭔가 글을 쓰거나 스케치를 끄적거리거나 이런 것이, 그 시간이 나한테는 예술가의 시간이다’라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30분짜리 예술가’ 이렇게 얘기를 했던 기억도 나는데요, 매일 조금씩 하는 것이 평소 제가 하는 일에 있어 제일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제 작품들은 또 비교적 큰 규모의 전시장에서 대규모로 전시가 되는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저의 의지라기보다는 미술 환경의 변화가 더 큰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미술가가 전시한다는 것은, 자기가 작업실에서 2~3년 정도 정진해서 작품을 만들고, 그중에서 몇 점을 선별한 다음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거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조금 철이 지난 이야기이고요, 지금의 대규모 전시로의 변화는 최근의 추세입니다. 아마 그렇게 변화한 시간이 20~30년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미술관들에서 하는 전시가 소장품을 계속 상설 전시하면서 어떤 미술의 큰 계보를 보여주는 그런 식의 전시는 지나가고 매번 새로운, 즉 일종의 이벤트로서의 전시로 바뀌게 된 거예요.
미술관을 박물관과 같이 박물관(museum)이라는 영어를 써서 지칭하는데 실제 박물관에 가서 보면 시대적인 순서에 따라서 어떤 사조의 흐름에 따라서 잘 배열된 상설 전시를 주로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미술관 전시 예를 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이다 그러면, 여기는 상설 전시가 아니라 계속 그 변화하는 한시적인 기획 전시로 이어져요.
공간은 이제 엄청나게 크고 거기에 작가를 초대해서 ‘이 공간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쇼’ 이렇게 제안을 받는 처지가 되는 거예요. 근래에 미술 그 환경이 바뀌면서 생겨난 현상이에요. 만약에 이런 미술관이나 이런 식의 미술관 환경이 없다면 제가 그렇게 대규모 작업을 계속하기는 어렵죠. 그런 점이 있습니다.
: 최근의 변화 추세가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빈번히 미술관의 대규모 전시 제안을 받으실 때마다 큰 작업을 하시고 나면 굉장히 체력적으로나 또 정신적으로 정말 큰 에너지가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 당연히 그런데 어쩌다 보니까 제가 일 중독자의 면모가 있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하긴 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또, ‘이런 일들을 계속하게 되는 근본적인 에너지, 열정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지를 주셨기에 제가 생각해 봤는데 그건 결국 기존 미술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에서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존의 미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것이 제 작업에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지금 미술에서 빠져있는 것, 미술이 다뤄야 할 텐데 다루지 않고 있는 것. 이런 것들을 미술로 구현하는 것을 통해 미술 전체를 바꾸고 또 관객의 생각을 바꾸고, 미술이 갖고 있는 그 고정된 틀을 확장하려는 그런 의지. 이런 것이 작업의 중요한 동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선생님의 작품 활동의 의미가 무엇이며 작품 활동의 동력이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작업의 중요한 동기는 무엇인지에 대한 핵심적인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최근에 진행하신 개인전 〈12명의 안규철〉 전시 서문에 보면 ‘안규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여러 개의 동시다발적이고 서로 상충하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작가’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있는데요. 작가 안규철과 안규철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시간 간격과 계절의 순서에 따라서 피면 지고, 또 어떤 온도에 적응하던 것들이 시들고 나면 다시 새로운 온도에 적응하는 생물이 피어나는 방식으로 동시 다발성과는 조금 어긋나는 방식으로 존재하잖아요, 사실 동시다발적인 것은 인위(人爲)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서문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술에는 한 작가의 일관된 개성에 대한 일종의 숭배가 있는 것 같아요. 평생 어떤 하나의 주제를 붙들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고 하는 것이 예술가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제 그런 믿음에 근거도 이해할 수는 있죠. 근데 그 결과로 작가가 자신의 경로를 끊임없이 스스로 검열하는 상태가 되는 것, 그거에 대해서 저는 좀 비판적인 생각이 있어요.
이를테면 작년에 내가 이런 전시를 했는데 금년과 작년에 했던 전시를 다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다른 것,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는데 그걸 스스로 조절하고 있는 거예요. 어제와는 다른 이걸 하되 어제와 연결되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거예요. 어제가 너무 다른 걸 하면 “왜 사람이 왔다 갔다 해.” 이렇게 되니까 그걸 피하려고 스스로 이 변화의 수위를 조절하게 되고 이것이 작가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되면 결국 자유롭고 자연발생적인 그 작가의 그 성장이랄까, 작가 작업의 전개가 차단되는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12명 아니면 여러 명의 작가적 정체성을 얘기한 것은 이러한 통념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크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누구나 그렇겠지만 몇 번씩 저의 정체성이 달라진단 말이죠. 아침에 일어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가 책상에 앉아서 아무도 시키지도 않고 아무도 기대하지도 않는 글을 쓴다고 붙들고 앉아 있는 작가로서의 내가 있고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거나 뉴스를 보면서 세상일에 대해서 반응하는, 또 다른 그야말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안규철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이것을 단일한 하나의 정체성 안에다가 구겨 넣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있는 겁니다.
: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결국 ‘질문하는 안규철’이라는 그 정체성을 통해서 무엇이 피었다가는 반문처럼 시들고, 지고 나면 또 새로운 질문 같은 다른 것이 피어나는 비(非) 인위적인 삶,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신다, 즉 자연 생태계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안규철을 추구하신다, 이런 의미로 이해해도 좋을까요?
: 글쎄요. 하하, 제가 자연에 대한 예찬이나 숭배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제도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갖고 있는 삶의 자세에 관한 규정이 자연스럽지 않다, 적절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 먼저일 것 같아요. 결국 뒤집어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자연에 대한 어떤 통찰로 인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예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질문하는 안규철’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이해가 되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작품 세계와 작가 안규철에 대한 이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미술과 문학의 장르를 넘나들면서 병행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인터뷰 시작할 때 독자들을 대표해서 홍보위원들이 드리는 두 가지 질문 외에 비록 선생님께 여쭐 질문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아까 사실은 저희 홍보위원이 뽑은 질문 중에도 제가 지금 드리는 질문과 같은 내용을 궁금해하는 물음이 있었어요. 바로《브릿지경제》 인터뷰에서 선생님 자신을 “글과 그림 사이에서 헤매는 사람”이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 여쭙는 내용이었습니다.
궁금해할 여러 독자를 위해서 선생님의 미술 작업에 쓰기가 병행되는 이유를 선생님의 최근 활동의 주요 변화상과 함께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미술 대학에서 제가 미술 공부할 때 선생님들은 글쓰기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관점이 있으셨어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좋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 그 옆에다가 토 달아서 설명하고 이런 거 안 한다’라는 거예요. 그림과 글이 완전히 다른 일처럼 분리한 거죠.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일은 아닌데,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의 기자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바로 직장을 찾아야만 하다 보니 그 잡지사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제 글과 그림의 이중생활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까요? 그 사건이 배경이 된 것 같아요. 대학에서 그림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직장에 다니면서 그림을 읽고 그것을 글로써 설명하는 방법을 배운 셈이죠.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글을 쓰려면 글을 쓰고 미술을 하려면 글을 쓰지 말아라.’ 이렇게 가르쳤단 말이에요. ‘미술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말들도 있었고요. 어쩔 수 없이 미술을 하면서 글을 쓰기도 하는 이런 길에 들어선 상태에서 저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걸 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글과 그림이 결국은 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고 그것을 비유하자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어떤 일을 하는 데에 협력할 수 있는 두 개의 각기 다른 도구다’라고 생각한다면 ‘학교에서 배웠던 그러한 관념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그림과 글, 미술 작업과 글쓰기를 병행하시는 선생님의 예술 활동에 대한 자세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주로 그 작품이 태어난 주 배경이 어떤 사물이나 풍경에 머문 작가의 시선 또는 관점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늘 작품을 감상할 때 우선해서 궁금했던 것이, 그 작가의 시선이 ‘그 그림 속 거기’에 머문 이유와 그것을 해석한 관점이 무엇인가였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고흐의 〈아를의 방〉이나 〈휴식〉과 같은 작품들이 탄생 된 고흐의 시선, 휴식에 대한 관점, 이런 게 궁금했던 것이죠.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작품을 통해서 사물들이 직접 말하게 하고 관객이 그것을 직접 읽게 만든다고 표현하셨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책에서 말씀하신 ‘사물이 말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선생님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작가가 일인칭 화자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미술에는 삼인칭 화자의 개념이 없어요. 누구든지 작품과 작가가 ‘1 대 1’로 대응하면서 어떤 일치점까지 도달해서 거기다 사인을 하면 그것으로 작가의 분신으로서 작품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걸 뒤집어 본 거죠. 왜 소설은 삼인칭의 주인공이 나와서 삼인칭의 시점으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작가가 복화술처럼 말할 수도 있는데 미술은 왜 그렇게 안 하느냐, 그런 게 왜 없느냐 하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 사례를 찾아보니 더러 있었어요. 르네 마그리트 같은 사람은 그 당시에 간판 화가들이나 상업적인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하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와서 마치 그 사람들이 그린 것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자기 스타일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그림이 아닌 거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남의 스타일 그림을 가져다가 그들의 스타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이제 르네 마그리트란 말이에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방식에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작가와 작품 사이의 관계에 제삼자를 개입시킨다는 것이, 제 첫 번째 생각이었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제가 만들어 낸 어떤 연극의 배우처럼 배치해서 그들이 말하게 하는 것, 그런 상태를 흥미롭다고 생각하게 되어 이런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드로잉을 예로 들자면 저는 아주 사실적인 데생도 할 수 있어요. 거친 붓으로 아주 표현적인, 표현주의적인 그런 드로잉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제 책에 삽화들을 보면 정말 소심하기 짝이 없는 그 간단한 연필 선으로 그렸다 지웠다 해가면서 아주 소박한 그림을 그려 놓거든요. 이것은 제가 선택한 제삼자를 그리는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을 이 스타일을 나를 동일시하는 것 그것은 고정된 관습인데 그걸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거예요.
평소에도 제가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제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거나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하거나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인데 ‘드로잉이 이렇게 표현적이고 거친 스타일이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거친 그림들 뺐고, 아주 사실적인 그림들도 ‘그건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나하고 맞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이런 소박한 드로잉을 하게 됐어요.
: 연결되는 질문이기도 한데요, 선생님 작품에는 말이 있고 또 사건과 이야기가 있고 선생님께서 선택하신 사물들이 마치 선생님의 대리인이 된 듯이 그것을 말함으로써 선생님께서 결국 하고 싶으셨지만, 하지 못하셨던 이야기들을 발화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서술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고 보여주기 방식을 통해서 말하는 소설 작품처럼 선생님의 작품들에는 따로 서술자가 있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행동하고 말하고 그 광경을 본 독자들이 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판단하게 하려는 듯 그렇게 보였는데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제가 선생님의 의도하신 바에 ‘아주 멀리 벗어나게 이해하진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웃음) 선생님의 작품으로 탄생한 사물들이 우리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우리는 그들이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느끼고 사유하는 거죠.
첨언하면 선생님께서는 소설가처럼 주인공들을 선택하고 캐릭터를 설정해서 그 캐릭터들의 연출을 통해 관객들이 메시지를 담아가도록 유도하는 ‘연출자와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출가로서 안규철의 작품전 기획 의도 그리고 이유 등을 최근 개인전에 〈12명의 안규철〉을 중심으로 선생님의 전시를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번 전시 〈12명의 안규철〉은 사실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 포르투갈의 시인)의…, 그 사람은 예명(藝名)이 아니라 이명(異名)이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여러 명의 다른 작가들을 만들어 내서 각각의 이름으로 시를 쓰고 그 사람들이 실재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시인들인 것처럼 서로 토론도 하고 비평도 하는 그런 세계를 구축했는데 굉장히 저한테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안규철〉의 배경은 그런 페소아의 ‘이명’과 같은 ‘다중의 작가’에서 아이디어가 왔고요. 또 전시장의 공간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전시장 공간이 사실 엄청나게 복잡하기도 하고 균일한 공간도 아니잖아요. 굉장히 어수선하고 뒤섞여 있는 그런 공간인데, 그 전시장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기획자들은 항상 이런 고민을 합니다. ‘이 다채로운 전체(공간)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어떤 끈이 있다면 무엇일까?’ 저도 그런 지점에서 이번 전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정말 생각지도 않게 이번에 30~40대 젊은 친구들이 주로 전시하는 장소에서 갑자기 전시하게 됐는데 이 공간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었어요.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걸 뒤집어서 이걸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12명쯤 되는 각각 다른 안규철이 그룹전으로 전시한다고 이렇게 뒤집어 본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 전시가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보시면 동영상과 애니메이션이 있는 방도 있고 그냥 글씨로 가득 찬 방도 있고 추상적인 점, 선, 면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방 움직이는 조각으로 이루어진 방. 여러 명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전시처럼 그렇게 전시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놓고 나서 혹시 그 안에서 각각 다른 작품과 각각 다른 이야기 중에서도 어떤 보이지 않는 연결점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전시를 기획하게 됐어요.
: “12명의 안규철이 그룹전을 한다”라는 말씀이 굉장히 재미있게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편성’과 ‘구체성’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보편성을 대중의 호응이나 공감이라고 보고 구체성을 작가의 개성이라고 본다면 선생님께서 찾아가고자 하시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보편성은, 선생님 작품의 오브제를 예로 들자면, ‘의자는 어디에서나 의자지만 그래서 누구나 앉을 수 있지만 그 의자가 놓이는 위치와 앉은 사람이 누군가에 따른 구체성이 따라올 때, 그 의자만의 특별한 개성을 소유하게 되는, 그래서 특정한 한 개의 의자만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그것을 의자로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또 누구나 자신만의 의자로 가져가 자신만의 특별성을 부여할 수도 있는 그런 보편적 의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 음, 지금 주신 질문이 제가 그 문제를 언급했을 때의 관심사하고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보편성과 구체성이 서로 상충하는 상황에 대한 저의 언급은 이 작업이 ‘보편성을 추구하다 보니까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라고 하는 어떤 지적에 대한 응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언급이었어요.
제가 구체적인 어떤 사회적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걸 작업으로 옮길 때 그것을 그 구체적 사건으로부터 좀 떼어내서 보편적인, 철학적 보편적인 문제의식으로 이걸 변환하려고 하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이것은 사실 제 개인적인 경험 탓이긴 한데 제가 유학을 가 있는 동안, 그러니까 저의 유학 경험하고 관계가 있어요. 제가 작업에서 보편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배경에는 80년대 말~90년대 전반에 있었던, 물론 지금은 그래도 그러한 콤플렉스가 상당히 해소된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 당시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하면 좀 해외에서 인정받고 우리의 존재를 평가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걸로 골몰하던 분위기였어요. 국제 영화제에 나가면 임권택 감독 같은 사람이 제일 중요한 감독이 되고 화가들은 모방색을 가지고 추상화를 그리면 그것을 한국적인 추상화라고 얘기하던 시절이었어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면서 남겨놓은 어떤 공동화된 흔적을 가져다가 현대적인 그 형식을 채워 넣는 일인데…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를 따져보면 저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거든요? 근데 이게 옳은 일인가 하고 따져봤어요.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요. 과연 우리 스스로에게도 낯선 이를테면 〈씨받이〉 같은 그 내용을 80년대~90년대에 그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어떤 것으로,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한 어떤 것으로 서구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그런 부분이죠. 그래서 저는 아시아에서 왔거나 혹은 변방에서 왔으니까, 너희는 항상 변방의 특수성만 얘기하라고 하는 것을 요구받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계속 우리 얘기만 하는 수밖에 없고 전 지구적 보편성과는 동떨어진 그런 존재로 머물 수밖에 없는 데다가,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하는 동안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속이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사실 서구문화를 그냥 어렸을 때부터 학습하면서 성장했고, 우리가 사는 사회도 더 이상 농경 사회가 아니고 자동차 만들고 컴퓨터 팔아서 먹고사는 사회인데 여기서 여전히 저런 영화, 저런 문화의 단편들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내세우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저는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도 너희가 말하는, 서양 철학자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할 발언권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좀 하게 됐고요,그러다 보니 이제 보편성이라는 얘기를 강조하게 됐는데, 지금 여기 와서 따져보니까 다시 또 그런 지적을 받게 되는 거예요.
: 국내에 들어와서 다시 또 그런 지적을 받으셨다는 말씀이군요.
: 네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과 작품이 너무 거리가 있다’라는 그런 지적을 받아서 거기에는 내가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면서 쓰게 된 것이 아마 이 책일 겁니다. 여기에..
:『안규철의 질문들』이군요 선생님.
: 네, 작가 노트에 메모했던 내용들이었는데요. 그 두 가지 구체성과 보편성은, 글과 그림처럼 분리할 수 없는 거로 생각해요. 구체성이 없는 보편성이라는 건 공허한 것이 된다고 보고요, 보편성만 가지고 그러니까 보편성에 도달하려면 구체적인 것들을 딛고 올라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옳지 않다,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확실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편성이 뭔지 깊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선생님처럼 전 세계적 화두나 담론들 그런 보편적인 문제의식들을 작품에 담아 보여주고자 하시는 선생님의 작품 세계와 치열한 노력에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제가 굉장히 협소한 이해로 드린 질문에 선생님의 깊은 고민과 본래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작가 안규철에게 있어서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사물의 뒷모습』에도 언급하셨던 내용인데요. 선생님께서 그 저서 『사물의 뒷모습』의 책 머리글에서 “내 안의 천사가 지나갈 때 사물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작품에 몰두하던 시간이 아닌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만이 내기는 예술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 우리가 일상 일상생활 속에서 대화가 오가고, 소음이 있고, 이런 상태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이렇게 딱 정적의 순간이 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이제 서구인들이죠. 기독교적인 표현일 텐데, 관용적으로 이 표현을 쓰는 거지요. “천사가 지나가는 거 같아” 근데 이게 사실은 일상에서 갑자기 정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어색하고 낯선 순간이에요. 우리는 계속 살아서 움직이고 있고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멈춘 것 같은 순간이잖아요. 당황스러운 그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의 당황스러움을 넘기는 방법으로 이런 관용 표현을 쓴다고 추측을 해 보는데요, 작업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하던 일을 계속 되풀이해서 해야 하는 작업이 있고 그러는 동안에는 아무런 새로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 일이 어떻게 하다가 갑자기 툭! 하고 멈추는 순간이 있고 그럴 때 갑자기 다른 생각들이 튀어나오고 글을 쓰든 작업을 하든 아이디어가 나오는 시점은 그런 순간인 것 같아요. 그냥 마냥 앉아서 기다린다고 해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요, 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느냐고 하고 그 초조해하기 시작하면 더 안 와요. 그런데 생각을 잠깐 놓치는 순간이 있고 그걸 놓치고 세상이 멈췄을 때, 갑자기 번쩍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요. 글 같으면 이제 한 개의 문장 같은 것이 툭 떠오르는 거죠. 그 순간이 없으면 작가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책의 서문에 그렇게 썼던 것 같습니다.
: 저는 그 말씀을 보면서 그 선생님께서 작업에, 몰입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사물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오히려 창작적 기량을 맘껏 펼치는 상태가 되었다는 그런 말씀으로 이해했었어요. 그래서 많은 작가가 작품 때문에 굉장히 초조함과 강박까지 느끼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선생님 나름의 아이러니한 여유를 가지고 계실까? 이런 놀라움도 조금 느꼈고요. 또 한편으로는 르로이 앤더슨의 〈나팔수의 휴일〉이라는 곡의 배경이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군악대 나팔수가 휴일을 맞아 어디 엉뚱한 곳에서 우연히 연주하게 되었는데 딱딱한 군악대 연습과 연주회에 몰두할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멋진 연주 기량을 펼치고 즐기면서 연주하게 되었다는, 그 곡의 서사적 배경이 된 이야기인데요. 선생님의 말씀이 마치 그 나팔수의 상황처럼 직업 정신의 몰두해서 벗어났을 때 오히려 작가의 기량을 펼치게 된다는 말씀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 비슷한 얘기인데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라고 하는 독일 작가죠. 미술가죠. 이 사람이 한 말이 있어요. “난 어차피 무릎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 아~ 무릎이요!
: 그러니까 걷는 거죠.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얘기인데 비슷한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서 백지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지 말고 걷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 그러다 문뜩 그 순간이 온다는 거죠. 내가 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한테 그렇게 많이 강조했어요. 산책을 많이 해라, 청계천 공구상들 같은 곳을 아무 계획 없이 산책하러 가라, 아이디어가 없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돌아다니다 보면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그걸 놓치지 않고 잘 가공해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런 얘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정말 공감이 되는 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에 발간하신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선생님의 저서 중에 그 선생님께서 “주변의 사물과 텍스트를 가지고 사소하고 어이없는 농담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걸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두하는 중요한 일들에 무관심하거나 이런 현실의 위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거꾸로 우리 삶을 그렇게 생존과 추락의 갈림길로 내모는 이 압도적 현실에 순순히 투항할 수 없으므로 이런 일을 생각한다”라고 덧붙여 주셨는데요.
전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반응과 해법에 안주하는 예술에 반대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또 다른 저서 『안규철의 질문들』에서 말씀하신 부조리한 산물로 부조리한 시대를 비우는 풍자적 작업이나 가장 슬픈 것을 가장 기쁜 것으로 만드는 해학적 농담과 같은 그런 작품들이 압도적 현실에 대한 선생님의 응전(應戰)으로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이해로 이어졌는데요.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이 인공지능 시대 나노 시대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적절한 해법이 선생님의 작업 방식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ChatGPT는 예측 가능한 방법과 해법에 대한 데이터를 종합해서 우리 인류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또 그에 따른 부작용도 양산되고 있다고 보거든요. 저희 『시와산문』 봄호 편집회의에서 편집위원 중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AI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인간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농담이나 유머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선생님의 작품에는 유머와 풍자가 있고 농담이 있잖아요. 선생님께서도 이런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그런 작품 활동을 하시는 측면도 있으신 건지 도 궁금합니다.
: 사실은 거기까지는 AI에 대한 대응이나 ChatGPT에 대한 대응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 농담이나 유머가 저한테 세상을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유학 시절에 저한테 선생님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거든요. 사람이 울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얘기였어요. 그게 제가 그 당시에 하고 있던 작품이 너무 침울하고 어두워서 그런 얘기를 하셨을 것으로 추측하게 됩니다. 그 당시가 어느 시절인가 하면 90년대 초예요. 몸은 독일이 있는데 한국 뉴스로 계속 아주 극단적인 상황들이 계속 전달이 되는 거예요. 대학생들의 연쇄 분신자살 사건, 저녁 뉴스를 틀어보면 뉴스 끄트머리에 한국에서 백골단이 학생들을 두들겨 패는, 시위대를 두들겨 패는 영상이 짧게 나오고…, 그러다 보니 굉장히 심리적으로 힘든 시절이었어요. 한국에선 저러고 있는데 내가 여기 와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러고 있지? 이런 자괴감이 항상 있었고 그게 이제 작업에 그대로 그냥 투사가 되는 것 같았어요. 좀 무겁고 우울하고 그래야 그나마 자책감 같은 것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강박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그 선생님이 정확히 지적하셨던 것 같아요.
: 아, 유학 시절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작업에 있어서 전환점을 갖게 되신 거군요.
: 네, 그 말씀이 제 작업 태도의 변화를 불러온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카프카(Franz Kafka)가 ‘유머는 흘리지 않은 눈물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그러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말씀해 주신 것, ‘요즘의 ChatGPT 환경에 대한 대응으로 어떤 농담을 해 볼 수 있을까?’ 이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지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제가 현 세태가 워낙 빠른 속도로 개편되고 있다 보니까 선생님의 작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는 훨씬 이전에 ‘울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라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현재의 작업 스타일을 가지게 되셨다는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당장의 현재 상황에 선생님의 작업을 끼워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선생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것을 읽은 적이 있어요. 『사물의 뒷모습』에서 세상의 부조리나 어두운 그림자 등에 너무 집중되지 않았나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한국 문학 작품들도 그런 비관주의 아까 좀 전에 작품이 어두우셨다고 하셨는데 그러한 페시미즘(pessimism)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저는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작가로서 사회의 어두움을 비추는 일도 중요하나 동시에 감춰져 있는 우리 사회의 빛, 더 나아가 인류가 만들어 가는 그 세상의 빛을 드러내는 일종의 해학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미술과 문학에서 현재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계시는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 질문에 대해 답변하실 때 이러한 부분이 조금은 언급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예술이 (아까 ‘개념 미술’이라는 용어에 조금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전하는 개념 미술에 조금 가깝다고 한다면 이것은 한편으로는 예술을 확장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상식과 예술을 전복시키는 재 창조적 파괴로 이중적인 생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 인류가 맞이해야 할 그런 변화의 변곡점에서 『사물의 뒷모습』의 발견과 관련해서 진정한 인간성의 발견과 기존 인간성의 파괴를 통한 회복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런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인류… 이렇게 가면 너무 거창해져서 제가 한 일로 인류라고 하는 그 거대한 개념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해서 좀 막막한데요. 사실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건 생각할 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물의 표피를 넘어서 그 뒤에 숨어 있는 텍스트를 찾아서 읽는 것. 이것이 제가 작업에서 제안하는 제일 중요한 활동인데요, 이렇게 계속 일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작업이 과도하게 어둡거나 건조하고 이런 상태가 되는 문제가 있더라고 하는 것을 나도 이제 자각을 하게 됐던 거예요.
그래서 이 상태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게 잘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뒷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면을 돌아본다는 것은 결국 사유를 한다는 거거든요. 사유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은 사실 공허한 삶일 수밖에 없죠. 그 예를 최근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내란 사태에서 보고 있죠. 국회 증인으로 나오는 그 장군들, 장관들을 보면 다 멀쩡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거예요. 최악의 재난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 들어가 버린거죠. 이것은 결국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승진이나 진급이나 이런 거밖에 눈앞에 없고, 다른 것은 생각을 안 하니까, 자기를 돌아보지 않으니까, 이런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바라는 거는 이런 거예요. 제 작업이 관객들에게 생각하는 삶을 위한 작은 안내판 같은 게 되면 좋겠다, 그 이상의 걸 기대할 수도 없고 그게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회적 참여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조금 무거워졌는데요. 분위기가. 요즘 문화에서 중심된 주제 중 하나가 장르 파괴인 것 같아요. 아까도 이제 개념 미술 설명해 주실 때 살짝 언급해 주셨는데 예를 들어서 소설의 희곡화, 대사화, 웹툰화나 시의 산문화인데요. 기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문장의 배열 속에 드러나는 긴장감과 갈등의 묘미가 약해졌고 기존 시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생각하는 압축성이나 운율성이 상당히 무너졌습니다. 지나친 작가중심주의로 작가가 ‘시라면 시’이고 ‘산문이라면 산문’이 되어버렸습니다.
개념 미술에서도 어떤 포스트모던적인 재질서 부여나 재창조가 강하고, 또 선생님께서 이전 질문에서 설명하셨다시피, 들뢰즈나 가타리도 개념미술이 예술의 근원적 원념인 감각과 개념에 대한 창작적 측면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도 있는데요. 그래서 개념 미술이 파괴에만 머물러서 예술이 아닌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한편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와 소설이 장르 파괴로 기존 시와 소설의 본연적 특성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문학계의 우려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재해석과 기존 상식의 파괴를 추구하면서도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신선한 감각을 제공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개념 미술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그렇게 새로운 길을 개척하시는, 그러한 개념 미술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시는 선생님만의 어떤 창작 동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미술과 문학 두 부분에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아까 제가 처음에 질문이 어려워서 답이 될지 모르겠다고 한 그 질문이네요. 저한테 개념 미술인 것은 기본적으로 ‘미술이 단순한 여흥이나 장식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의미 있는 질문이 되도록 하는 것’이죠. 말 그대로 예술로서 지적 노동이자 지적인 의사소통으로 미술이 기능하게 만들고자 한다는 그런 목표를 위해서 이러한 개념 정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네요. 만약에 미술에서 아주 감각적인, 어떤 황홀함과 같은 것들을 기대한다면 요즘은 미술이 아니라도 수없이 많은 다른 매체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대중문화 화려한 스펙터클 또는 아주 매끄러운 디자인 상품 이걸 그 소비하고 누리는 이것으로도 그런 욕구는 충족되고도 남아요. 그런데 거기 결여된 것이 있고 그 빈자리를 결국 채워야 하는 것이 예술의 일이다, 그리고 철학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을 고전적인 장르의 규범 안에서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게 더 바람직한 장르도 있는 것 같아요.
문학은 어쩌면 유일하게 언어의 체계라고 하는 근본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장르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미술은 문학하고 좀 다르게 모더니즘이 지배할 때, 그 70년, 80년 동안 일찌감치 기성의 조형 어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그것으로, 그 경험으로 지금에 이르렀거든요. 그래서 지금 미술 내에서 회화니, 조각이니, 영상이니 이런 장르 구분에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지경까지 온 거예요. 제가 학교에 있으면서 가르친 학생들이 저희 반에 한 12명이 있으면 그중에, 교수인 저는 명색이 조각 전공이고 입체 전공인데,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영상으로 작업을 해요. 그리고 거의 뭐 현대 무용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작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친구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 학생들을 어떤 한 사람의 선생이 지도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기술적으로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학생들의 의도, 개념과 그 결과 사이에 편차가 있느냐, 어떻게 일치하느냐, 그걸 무엇으로 메울 수 있느냐, 그 정도의 조언밖에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럴 정도로 미술은 완전히 장르가 해체된 상태에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형태지만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서 여전히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굉장히 희망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훨씬 더 영화보다도 영화 같은 미술이 있고, 또 건축 같은 미술이 있어요. 지금 작가들은 계속해서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이나 컴퓨터 공학이나 이런 것들을, 그러한 기술을, 미술로 끌어들이는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는 그런 시대가 됐어요. 사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저희처럼 지금까지 해온 일로 굳어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것이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한 2010년 정도에 한가지 결심을 했어요. 제가 그때 50대 중반이었는데, 그동안 작가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제 나름의 위치가 생겼을 때였어요. 근데 그때 ‘이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 작가적으로는 죽는 것이다’라고 생각이 난거에요. 그때 스스로 이런 다짐을 했는데 ‘지금부터 하게 되는 모든 전시는 신작만을 작업한다. 옛날 작품을 손봐서 틀만 바꿔서 전시하거나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전에 해 보지 못했던,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매체들을 시험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한다.’ 단순한 다짐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저한테는 중요한 작품 활동의 계기로 작용했어요.
제가 하지 않았거나 할 수 없는 매체에 대해서도, 계속 새롭게 공부하고 새롭게 배워서 그걸 거기에 도전하는 그런 태도로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왔고 그래서 “지금 그 사람이 아직 뭘 하고 있구나!”하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까 문학보다 미술은 훨씬 더 장르의 경계가 많이 사라져 가는 것 같습니다.
: 제가 전에 우연한 기회에 돌아가신 김현식 선생님하고 저녁을 같이 먹게 된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이 그 당시에 70세가 훨씬 넘은 그 연세인데 젊은 작가들이 발표하는 소설을 다 읽어요. 그래서 너무 놀랐고 또 한편으로는 부러웠어요. 미술에서는 변화의 속도는 엄청 빠르고 그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가 뭐 하는지를 모르는 지경까지 간 거예요. 그 아이들이 뭐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요. 그러니까 그 단절이라는 게 굉장히 커졌던 건데 ‘문학은 이럴 수 있구나’하는 생각. 이건 언어를 기반으로 해서 한국어를 떠나서는 한국 문학 이런 게 있을 수가 없으므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물론 그 안에서도 정말 뭐 그 틀을 해체하고 다양한 실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이 이제 전성기를 거치고 나서 현대 음악으로 넘어오면서 그야말로 클래식 음악의 그 화려했던 영향력을 지금 전혀 못 살리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문학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계속 사용하는 언어의 규칙이라는 게 있으니까요.제가 하는 말이 굉장히 양가적(兩價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정해진 틀 안에서의 다양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그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 미술에서처럼 천방지축으로 이것저것 건드리고 뒤섞이고 그런 식의 활동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말하다 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제일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 복잡한 질문인데 성심껏 답변해 주시고 재미있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미술과 문학이 각각 독특한 특성이 있다 보니까 그 진폭이 서로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또 문학에서도 미술과 같이 여러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면 재미있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좀 전에 변화의 속도 말씀하셨는데요. 미술도 그렇지만 문학도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의 변화에 불시착한 비행기처럼 거칠게 적응해 나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한때 러시아 구조주의가 주류였던 문학도 이제 탈구조와 해체를 말하더니 이젠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까지 말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모더니즘 속에 녹아있었고 그 중심을 이루던 휴머니즘이 포스트휴머니즘 혹은 트랜스휴머니즘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기존 미술과 더불어 문학이 가진 영역적 특성들이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듯한데요. 비단 AI가 아니더라도 창조의 의미부터 새롭게 정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까도 여러 번 말씀을 해 주셔서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작업과 재료의 다양성이 제가 생각할 때는 나름의 저항이나 선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비법이 무엇인지 사실 여쭙고 싶었는데 이미 말씀해 주신 것들은 그 비법이 충분히 들어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미술의 장르 경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시면서도 분명한 주제 의식이 나타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고 그런 작업의 아이디어와 설계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는지 그런 것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선생님의 작업의 아이디어, 설계도의 제작 과정, 이런 것들을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주간님! 먼저 지금 그 비법에 대해서는 제가 신통한 답이 떠오르는 게 없네요. 근데, 정확히 말하면 그러니까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로 시간과 노동을 낭비하는 것, 이것 만이 저의 비법이 아닌가 생각이 돼요. 그러니까 실패하고 또 실패해라. 그런데 더 낫게 실패해라, 이런 말을 사무엘 베케트가 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비법보다는 제가 요즘 하는 고민 얘기를 털어놓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년에 노벨문학상 위원회에서 한강 작가의 그 수상 이유를 발표했는데 그 얘기를 듣다가 뼈아프게 이 대목이 걸렸습니다. “한강 작가가 동시대의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했다.” 이런 대목이었어요. 이 시대 현실을, 저항에 관해서 말하는 시대 현실을 과연 내가 직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걸 외면 했던 것이 아닐지 하는 그런 생각이 하나의 고뇌로 느껴졌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다면 그럼 나의 시선은 어디에 가 있었는가. 역사를 관통하는 어떤 거대한 흐름을 내가 보고 있었는가 그런데 그것도 못 했다는 그런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 여파가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이제 제가 생각하는게 지금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눈을 들어서 저 태초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거대한 흐름을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면 뭘 보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즉, 제 시선이 급변하는 동시대 미술이라고 하는 그 작은 흐름 거기에만 쏠려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죠. 그러니까 그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슨 온갖 국제 전시들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보고 새로운 작가들에 대해서 자료가 나오면 열심히 찾아서 읽고 했습니다. 그걸 놓치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어쨌건 그러는 걸로 저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돌아와서 보니까 그것은 결국 동시대 미술,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라고 하는 감옥에 가두는 쇠고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너한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이런 게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더 이상 요즘 미술의 추세가 어떤 것이고 누가 앞으로 떠오를 스타인지 이런 걸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서 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고,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무엇인지,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시대 전체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가를 전망할 수 있는 그런 역사적 시점을 갖는 것, 이것이 중요한 저의 그런 과제가 아닐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곧 〈12명의 안규철〉 개인 전시회가 종료되고 나면 올 한 해는 조금 쉬실 계획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작가로서 앞으로 단기 또는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그리고 독자들과 앞으로의 관객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어 있으시다면 마무리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좀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고요. 책을 최대한 많이 읽고 혹시 기회가 되면, 독일어로 된 책들은 우리말로 번역된 것들이 잘 안되는데, 특히 미술과 관련된 독일어 서적이 있으면 공부 삼아서 번역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학생들 수업에 쓰느라고 번역했던 책들이 있는데, 아직은 독일어로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그 능력을 활용해서 조금 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요, 우리 미술 하는 후배들한테 미술에 대한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그런 책으로 번역해서 펴낼 수 있으면 그것도 또 하나의 제 역할이 아닐까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계간『시와산문』은 제가 짧은 글을 한번 발표하고 난 뒤에 정기구독도 안했는데 계속 책을 그냥 받아 보고 있어서 늘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으셨는데, 제가 앞에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고 문학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는 양식(糧食)을 제공하는 그야말로 끝이 없는 창고라고 생각해요. 문학은 우리에게 끝없이 물을 대주는 거대한 저수지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독자분이 문학 속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고 또 다른 사람이 쓴 시와 타인의 음악 속에서 구원을 얻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좋은 말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올 한 해도 건승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